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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7일.

외할아버지

by Soyun

외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흘 전 할아버지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통화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이 메어온다는 핑계로 할아버지를 부르지 못했다. 그걸 뚫고서 할아버지를 불렀어야 했다. 이제 내가 '할아버지'하고 불러도 허공에 떠돌 뿐이다. 살아있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즉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혹시 하늘나라에서 할아버지가 내 목소리를 듣는다해도, 내가 할아버지에게 내 목소리가 닿았다는 걸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슬픈거다.



오늘 아침 할아버지를 뵙고 온 엄마는 할아버지가 의식도 없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고 했다. 숨만 간간히 쉬신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할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날 거란 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일상을 이어가면서, 걸으면서, 혼잣말로 할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할아버지, 예전에 역촌동 할아버지 집 다시 지어준다고 한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나 이렇게 잘 키워줘서 고마워. 사랑해. 이제 할아버지 자유로워졌으니까,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던 종로3가도 가고, 병원 투어도 하고, 자유롭게 가고 싶던 곳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거야.'




문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할아버지가 의식이 없었을 때, 혹시 몸은 병원 침대에 있지만, 영혼은 잠시 빠져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각각 작별 인사를 하는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모든 여행이 다 끝나고서 할아버지는 마음 편히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생각이 맞다면, 적어도 할아버지가 내가 마지막에 한 말을 듣지 않았을까...




엄마와 아빠는 병원으로 달려갔고, 나는 혼자 있는 할머니와 단 둘이 집에 있었다. 마음이 허전해서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는 '우리 밥 좀 먹자'라고 하셨다. 평생 해로한 남편이 떠난 걸 직감적으로 알지만, 치매 초기인 할머니는 마음의 허기를 미역국, 계란반찬으로 잘 달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를 보면서 눈물을 감추고 상을 차리는 게 제일 힘들었다. 가족들은 할머니께는 이따가 저녁에 병원에 모시고 가면서 말씀 드린다고 했다. 이따 할머니는 세상 한쪽이 무너져 내릴텐데......그런 할머니가 더 안쓰러웠다.




'띠롱, 띠롱, 띠리링' 우리 할머니 핸드폰 폴더 여는 소리다. 오늘은 더 불안했는지 오지 않을 할아버지 전화를 마냥 기다리느라 핸드폰을 수시로 열어보신다. 할머니도 안다. 가족들이 다 쉬쉬하고, 아무리 내가 우는 걸 숨겨도, 마음으로 안다. 가족들이 어줍잖게 할머니를 속인다고 해도, 할머니는 이미 마음으로 모든 불안과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고 있을 거다. 벽을 보고 돌아누워 내쉬는 한숨이 마치 할머니가 모든 걸 알고 상심한 듯 보인다.




할머니의 세상이 무너질 때, 우리는 무슨 말로 할머니를 위로할 수 있을까.




사흘 전 통화에서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 목소리에 '내가, 내일, 그리로 건너갈게. 잘 자라. 잘 자라.'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너무 상심하지 않도록, 쓰러지지 않도록.



할아버지가 다음에 꼭 내 꿈에 나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잠꼬대라도 또박또박 '할아버지!'라고 부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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