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4일 월요일

Pension Paradise

by Soyun

그렇게 빨리 다시 짐을 쌀 수가 있을까? 독일 법인에 첫 출근을 하고, 새로운 펜션을 볼 기회가 생겨 보자마자 옮기겠다고 말을 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그 호텔로 돌아가 캐리어에 옷이며, 화장품이며, 모든 내 짐을 쓸어담아 새롭게 간 곳이 바로 Pension Paradise. 그 때, 거실을 통해 보이는 마당에서는 이모님과 준이가 무언가를 말리고 있었다. 하숙집 아들인줄만 알았던 준이, 그리고 내가 펜션에 머무르는 반 년 동안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조언자이자, 독일엄마였던 우리 이모님을 만나게 된 곳이다. 이 곳에서 나는 옥탑방에서 지냈는데, 옥탑방 같지 않은 넓은 방에 위로 여는 창문은 시시각각 변하는 독일 날씨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나만의 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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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바보같은 파리가 들어와서 창문을 열어 놓아도 나갈 줄을 모르길래, 그 멍청한 파리와 며칠동안 동거를 결심한 적도 있었다. 파리만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모기인지 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말 큰 곤충이 들어와 할 수 없이 아랫방 준이에게 잡아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고 – 이 때도 준이는 죽이지 않고, 잡아서 밖으로 다시 날려 주었다. 이유는 하얀 벽이 schmutzig, 더러워진다고. – 번개가 들어온 적도 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고, 천둥 번개도 많이 치는 날, 잠이 와서 침대에 누워있는데, 순간 창문으로 뭔가 감당 못 할 빛줄기가 하나 들어오더니 펑!하는 소리가 났다. 내 눈으로 번개를 본 것이다. 번개를 맞은 집은 모든 전기가 나갔고, 다행히 옆집은 불이 들어와서 맥주 하나 에코백에 넣어서 옆집에 천연덕스럽게 놀러간 적도 있다.


하숙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들은 이모님, 준이, 김부장과 함께 한 삼겹살 파티였다. 반은 일본사람인 준이는 “누나 밥 먹었어?”말고는 한국말을 할 줄 몰랐고, 한국분인 엄마께 또 무슨 말을 배웠냐고 물어보자, “이노무시키”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준이에게 한국말을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준이는 삼겹살을 Jeden Tag(매일) 먹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펜션에서 한국 냉면, 삼겹살, 명이나물, 김밥, 라면 등 참 많이도 함께 먹었다. 모든 그릇을 마당으로 갖고 나와 삼겹살 파티가 한 번 끝나면 다같이 우르르 그릇을 주방으로 옮겨 그 많은 설거지를 함께 하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아침 출근 전에는 항상 이모님이 갓 나온 빵을 사와 아침을 차려 주셨고, 따듯한 커피를 내려주셨다. 식탁 옆에는 큰 네모난 창문이 있었는데 그 창문을 통해 체리나무를 보면서 밥을 먹곤 했다. 그 체리나무는 80년도 넘는 나무여서 우리가 체리나무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번개가 쳤을 때, 가지가 부러져서 결국 나중에 그 나무 전체가 베여 없어지기도 했지만, 다행인 것은 체리 할머니의 마지막 체리를 내가 맛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영사 부인이 하숙집 벨을 눌렀고, 우리는 소쿠리를 갖고 나가 체리를 부지런히 따왔다. - 이 영사 부인은 나중에 내가 말 할 정말 기가 막힐 경험을 제공한 분이므로 나중에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 체리 할머니의 체리는 농약을 치지 않아서 항상 반을 갈라 먹어야 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체리 한 알 당, 흰색 벌레 하나씩은 꼭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리를 반을 갈라, 체리 꼭지로 벌레를 파서 버린 후에 먹으면, 입 속에는 체리가 그 시큼한 맛으로 터지고, 손끝과 흰 옷에도 온통 체리 물이 들어서 나도 벌레처럼 체리 안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마당에서 한 일이 많다. 명이나물, 고사리 말리기, 준이와 이모님 몰래 담배 피기, 비 오는 날 처마에서 혼자 서러워서 울기 등. 마당은 우리만 썼던 것은 아니고, 가끔 일주일 단위로 오는 독일 arbeiter(말 그대로 노동일을 하는 아저씨들)들도 함께 썼는데, 그들은 일이 끝나면 소시지를 굽고, 맥주를 한 짝씩 마셨다. 내가 밥 같지도 않은 밥을 혼자 먹고 있으면 소시지와 맥주를 하나씩 주곤 했다. 한 명이 계속 Scheiße를 남발하길래, 왜 자꾸 욕을 하냐고 했더니 aus dem Land, 시골 출신이어서 그렇단다. 그렇게 몇 주씩 자주 만나는 노동자 아저씨들과 부엌을 공유하고, 욕실을 공유하는데, 서로 일어나서 욕실 사용하는 시간을 정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새벽 5시4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늦게 씻는 것보다 빨리 씻는게 더 불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 문은 열쇠를 꽂아도 공간이 남아서 방안이 다 들여다 보이기 때문에 늘 수건이나 옷가지를 열쇠 위에 덮어 원천 봉쇄를 하고 샤워를 했다. 물론 선량한 아저씨들이라 파렴치한 짓을 하진 않았을 테지만. 내가 욕실에서 나와 내 방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면 6번 방 아저씨들은 욕실로 들어갔다. 며칠 지나니 하숙집의 규칙이 명확해졌다.


가끔 그 규칙이 깨질 때가 있었는데, 처음 혹은 지나가다 단발성으로 방문하는 투숙객들 때문이었다. 욕실에 둔 내 목욕 용품을 하숙집에서 제공하는 것들인 줄 알고 마음대로 써버린 너무 귀여운 흑인 여자애도 있었고, 하숙집을 러브호텔인 줄 알고 왔던 부부인지, 불륜 커플인지도 있었다. 하필이면 내 바로 옆방에서 너무도 격렬하게 사랑을 나눠서 하루 종일 귀를 막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소리가 너무 커서 혹시 나는 아랫방 김부장과 준이가 내가 야동을 보는 걸로 오해할까봐 억울하기도 하고 조마조마 했었다. 그 다음부터 이모님은 펜션에 투숙객들을 좀 더 깐깐하게 보게 되셨다. 앞서 말한 내 목욕 용품을 쓴 흑인 여자애는 가족들과 함께 왔는데 독일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어 참석한 가족이었다. 예약은 한 8명 정도라고 들어서 아침 준비를 하시는 이모님을 도우러 1층에 내려갔는데, 이모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보기에도 8명은 이미 넘어 보이는 아프리카 사람들-결혼식이라서 그런지 얼굴에 우리는 알 수 없는 아프리카 전통 문양을 잔뜩 칠한 할머니가 계셨다-이 식탁에서 쇼파에서 아침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8명에 맞춰 사 온 아침빵은 이미 모자랐고, 나는 하숙집 딸처럼 이미 이모님과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하루 전에 남았던 빵을 데우면 대충 해결은 가능할 것 같았는데, 지하 하숙방에서도 자꾸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올라왔다. 8명 예약을 하고, 밤 사이 그 많은 사람들을 각자의 방으로 불렀던 것이다. 한 스무 명 넘는 사람들 사이에 갓난 아기도 있었고, 아이가 마실 우유를 달라고-독일어도, 영어도 통하지 않았다. 도대체 예약은 어떻게 했을까-하는 아이 엄마와 계속 울어대는 아기를 보고 정신이 너무 없어서 우선 우유를 데우기 시작했다. 우유를 데워줬더니 너무 뜨겁다, 또 식혀줬더니 너무 차갑다, 그렇게 그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은 나와 이모님 혼을 쏙 빼놓고 그렇게 체크 아웃을 하고 나갔다. 주말이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하루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력을 넘는,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못 한 많은 일상들이 그 집에서 있었고, 이모님과 함께 한 산책길, 혼자 많이 울기도 하고, 곰돌이 인형 앉혀 놓고 혼맥을 했던 시간들, 아무도 없는지도 모르고 속 편하게 혼자 빈 3층 집에서 이틀을 지냈던 날도 있었다. 회사 김부장이 있는 2층에서는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숨바꼭질을 했던 기억도 있다. 나중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마당이 예쁜, 옥탑방 창문이 있는 그 집, Pension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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