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au hier! Genau jetzt!
Bad Soden, Bad Homburg 햇살이 갑자기 훅 들어올 때가 있다. Niederhöchstadt 하늘, 창문에 비치는 오후의 분위기, 바람까지도.
계절을 알 수 있는 꽃집이 바로 앞에 있었다. 꽃집 이름은 Weingart. 그 꽃집에서 새롭게 분위기를 바꾸면, 그건 여름 옷을 꺼내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넓고 빨간 잎사귀가 강렬한 크리스마스 화분이 특히 좋았고, 나중에서야 그 식물의 이름이 포인세티아라는 걸 알았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나는 늘 Bad Soden, Eschborn으로 출근을 했다. 눈 앞의 새로운 하루를 그 시간들만큼 놓친 채.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놓친 하루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었을까. 과거에 갇히고, 과거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까지 오늘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고, 지금이 잊혀지고 있었다.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었다. 그 곳에서 오래도록 살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주어지는 당연한 것들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공기처럼, 햇빛처럼.
살다보면, 삶이 갑자기 파도처럼 나를 덮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사는 걸까, 아니면 삶이 나를 살게 만들고 있는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상태로 내 삶이 내 눈 앞에서 흘러가는 걸 보고만 있는 상태는 살아있는 게 맞을까. 내가 스스로 살고 있는 건지, 삶이 나를 살게 만드는 건지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그리고 사는 것 또한 억지로 살아질 때는 인생에서 어떠한 답도 구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늘 가던 길을 걷다가 만나는, 이를테면 지하철 환승을 하면서 매일 만나게 되는 화살표들이 있다. 안내일까, 강요일까, 불현듯 화살표가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여전히 세상은 내게 녹록치 않다.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져서 감당할 수가 없을 때도 있었다. 철이 드는 것이 두려워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덤덤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삼십 대를 살고 있었고, 전혀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면서 앞으로 겪어야 할 모든 것들이 두려워서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한 일상에서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차분하게, 그리고 덤덤하게 그렇게 세상 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내 자신이 두려워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Exactitude is not truth.
피카소의 Cubism 전시회에 갔을 때였다. 모든 것을 조각내어 배경에 흩어버린 것들이 많았다. '자화상'이란 그림도 그렇게 배경에 숨겨져 있었다. 나도 주위 사물에 묻혀버리고 싶던 때가 있어서 오히려 그림 속 사람의 얼굴이 더 잘 보였다. 어떻게 숨는지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도 여전히 지나간 일들을 생생히 적고 있는 나를 보면서 도대체 나는 언제 오늘을 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Vergangenheit. 이미 흘러가서 어딘가에 쌓여 있을 시간들을 반추하는 버릇을 없애야겠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나의 삼십 대.
독일 뉴스를 읽다가 '나이-Jährige'라는 표현이 참 많이 나왔다. 독일어는 숫자를 뒤에서부터 읽는다. '왜 이 사람들은 뒤에서부터 읽을까'라는 궁금증이 '와, 이 사람들 통 크네'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몇 십 대의 스펙트럼에 있는지가 내가 정확히 몇 살, 몇 개월인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뒤의 나이를 잘 못 들어도, 앞의 십 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In her 30s인지, 40s인지처럼 말이다. 괜히 조급해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5-Jährige이다. 초, 중, 후반으로 나뉘는 것에 더 익숙해서 소심해지고,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내린 결론은, 서른 하나면 과감히 도전했을 일들을 서른 다섯이라고 포기하지 말자는 거다. 아인운트드라이씨히나 퓐푸운트드라이씨히나, 다 같은 드라이씨히!이므로.
잃어버렸던 시간들이 내게 선물처럼 쏟아질 날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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