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병뚜껑
가끔 시원한 맥주가 당기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보통 캔맥주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날은 냉장고에 칭다오 병맥주가 하나 있었다. 아빠가 사다 놓은 것 같았다. 캔맥주를 사러 나갈 정도는 아니었고, 대신 집에 있는 그 칭다오 맥주가 매우 시원하게 보였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병따개가 없다. 단 한 개도 없다. 생기면 버리고, 가져오면 버리는 우리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 엄마 vs 애주가인 우리 아빠의 대결구도 덕분에 병맥주는 잘 마시지 않는다.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병맥주를 사다 놓은 걸까. 병따개를 어디 숨겨 놓았나 보다.
그날은 집에 혼자 있었고, 꼭 그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왜 그런 때 있지 않은가. 안 되면 더 갖고 싶어질 때. 유튜브를 켜고 병따개 없이 맥주 따는 법에 대해 독학을 했다. 숟가락, 문손잡이 옆 캐치 박스, 라이터, 삽 등등 참 여러 가지로도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스피드와 힘!이었다.
우선 숟가락. 숟가락이 필요했다. 망가져도 상관없는 숟가락을 하나 골랐다. 왼손으로 병뚜껑 부분을 꽉 잡은 후, 단번에 시도해야 했다. 실패! 다시 포지셔닝을 하고, 두 번째 도전 실패! 손에 자국만 나고 아팠다. 숟가락 포기.
다음, 문손잡이 옆에 있는 캐치 박스. 이건 병따개랑 비슷하게 생겨서 옆으로 잘만 힘을 들이면 쉬워 보였다. 도전! 그리고 실패! 힘 조절을 잘못하면 병 째 깨져 위험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한 번의 도전 후 포기. 실패!
다음 가위 손잡이 부분. 손잡이 안쪽 부분이 아치형이라 지그재그로 몇 번 시도하면 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위험해 보였다. 몇 번 해보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다시 포기. 실패!
이때부터는 약간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지렛대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집안의 모든 사물에 나는 칭다오 맥주병을 대어 보면서 다녔다. 현관문 잠금쇠 부분, 문고리, 경칩, 창틀, 다시 숟가락, 그리고 다시 가위 손잡이 아치 부분. 뻥! 드디어 뻥!
물론 피식 에 가까운 개봉이었지만, 손에 느껴지는 쾌감은 뻥!이었다. 드디어 내가 이걸 열다니! 드디어 이걸 내가 해내다니! 역시 가위 손잡이였어!라는 생각은 곧 내가 시도했던 모든 도구들에 대한 감사로 끝났다. 거의 열릴 타이밍에 그 도구를 사용했을 뿐이다.
만약 내가 단 한 가지 도구에만 집착했다면, 그날 칭다오 병뚜껑을 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시도한 후, 포기하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을 때, 예기치 않게, 우연히 성공했다.
그날부터 나는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칭다오 병뚜껑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때의 그 마음자세로 모든 길을,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본다면, 또 누가 알까. 내가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뻥! 하고 터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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