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배 책 읽기
시작은 ‘먼바다’였다. 오랜만에, 그리고 ‘가볍게’ 공선배 책을 읽고 싶었다. 내가 공선배 책을 읽기 전에 이렇게 뜸을 들이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이유는,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에, 나아가 삶에 파도가 쳤기 때문이다.
그녀를 ‘선배’라고 부르고 싶어서, 나는 잘 다니던 대학교 2학년 때, 그녀가 다닌 대학으로 학교를 옮겼다. 그게 평생 나를 따라다닐 꼬리표가 될지도 모르고. 그녀가 썼던 책에 나온 캠퍼스를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나이가 되어 누빈다는 데 행복에 겨워서 다녔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은 전공서적에다 스펙 준비, 토익 공부를 할 때, 나는 구중도 먼지 냄새나는 서고에서 그녀의 소설책만 읽었다. ‘착한 여자’,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고등어’ 등등 그녀의 책 제목을 줄줄 외우는 게 무슨 스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그녀의 책만 파면서 살았다. ‘별들의 들판’에 나오는 ‘베를린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전공과 관련된 배경이 반가웠고, ‘열쇠’에서는 방 안팎에서 문을 열고 잠글 때, 모두 열쇠가 필요한 독일 방을 떠올리게 했다. 밤사이 창 밖으로 똑같이 던져진 열쇠는 결국 그들의 마음이었으니까.
‘수도원 기행일기 2’는 독일에 가져갔었다. 욕심부려 가져 갔던 어학책들 중 유일하게 섞여 있던 공선배 책이었다. 엄마가 잠깐 나를 만나러 왔다 한국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공항에서 엄마가 탄 비행기가 뜰 때까지 기다리다가 이런 글귀를 적은 적이 있다. ‘독일에 와서 엄마를 만나고, 글엄마 책을 읽고 있다. 이따가는 독일엄마를 만날 예정이다.’라고. 독일엄마는 내가 묵었던 하숙집 이모님이다. 실제로 ‘엄마’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내 전화기에는 ‘독일엄마’로 저장해 뒀었다.
다시 공선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나에게 ‘글엄마’였다. 대학생 때는 그녀가 Teekanne 같은 작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우물우물 생각만 하고 입 밖에 꺼낼 수 없던 문장을, 그녀는 내가 딱 생각했던 그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 문장이라는 생명을 부여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하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먼바다’는 마음에 바닷바람처럼 살랑살랑 불어오는 첫사랑 찾기 이야기였다. 하지만, 공선배 특유의 ‘무거움 한 스푼’이 들어있는 사랑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서 ‘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게 되었다.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도서 검색에서 재미로 공선배 이름을 검색하고 해당 위치로 갔었다. 약간의 ‘복습?’ 겸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갈 생각이었다. 공 작가 코너에서 ‘높고 푸른 사다리’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세련된 책 디자인과 흰색 책 등 때문이었다. ‘이것도 읽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쯤은 소장용으로 집에 둘 생각으로 책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한 두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읽은 게 맞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출간 연도를 봤는데, 2013년. 내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책이랑은 담을 쌓기 시작한 해였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라는 공선배 책 제목이 생각났다. 이십 대 중반도 훨씬 넘어 겪은 사춘기 시절에 나온 책이라 난 관심도 없었겠구나 하면서.
다시 각을 잡고 읽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 공선배 책은 가볍게 읽을 수가 없다. 마음 비우고 읽어도, 꼭 그 페이지에서 몇 분 동안 못 넘어가게 하는 문장들이 있다. 성경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을 때, 공선배 책에 나온 이야기들에 마음이 움직여 기도를 한 적도 있다. 며칠 동안 비가 퍼붓듯이 내렸고, 창가에서 책을 읽다가 집 앞 성당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꽤 가까운 거리의 십자가인데 하늘에 구름처럼 늘 당연하게 보고 지나갔었다.
‘왜! 대체 왜?!’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 그분께 다가갔던 첫마디였다. 물론, 그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나의 ‘왜?!’는 먼지 같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물어보는 걸 잊었던 나에게 작게나마 ‘왜… 그러셨어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기회는 되었다.
무언가의 간극을 메우기에 나뭇잎 하나라도 의미가 있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면, 나는 이 책이 나의 ‘높고 푸른 사다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기도하는 걸 잊었었는데 적어도 그분에게 말을 걸 시작은 되었으니까.
공선배 책 마지막에는 우리가 존경했던 사랑 많은 한 시인의 시구가 나온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어라’
그 말을 빌려 공선배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거기 남아 있어라’라고 한다.
나는 욕심이 조금 많으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아 그때의 젊음, 그때의 사랑은 오래 거기 남아 있어라. 회상만으로도 나에게 앞으로 살아갈 위로와 힘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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