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분리가 필요한 때

분가 (分家) 이유

by 곰작가

38살 겨울, 집을 나왔다. 혼자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모아 놓은 돈이 너무 소박하여 둘째 동생과 함께 나왔다. 결혼을 해서 나가는 출가도 아니고 오롯이 내 힘으로 혼자 하는 독립도 아니고 해서, 나는 부모님 집에서 방 빼는 행위를 분가(分家)라 칭하기로 했다. 마치 못살게 구는 시부모님 집에서 탈출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분가’가 제일 걸맞은 타이틀인 것 같다.


이쯤 되면 노처녀가 결혼의 압박을 못 이겨 집을 뛰쳐나온 그림을 상상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 부모님은 내 눈치 본다. 그래서 아주 가끔 스쳐 지나가듯이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흘리는 편이다. 늦은 밤 귀가 확인 전화를 하면서 ‘집에 들어오는 오니?’라고 묻는 개방적인 분이다. 물론 확인 전화도 어쩌다 한 번이고 나의 귀가시간은 오로지 내가 결정하며 압박과 타협 및 회유는 전혀 없었다. 부모님의 잔소리에 모진 말로 받아치고 30대에도 중2처럼 굴었던 노력의 산물이다.


부모와 자식이 너무 오래 같이 살아도 문제라는 것을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느꼈다. 동창회를 다녀온 부모님은 사위와 손주들 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딸만 보유하고 있는 본인들의 처지를 망각했다. 레일 바이크를 타자는 둥, 철쭉동산에 놀러 가자는 둥, 도자기 체험을 가자는 둥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그리고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었다. 등산도 찜질방도 하다 못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것도 모두 ‘나’에게 (딸이 셋이지만 내가 제일 효녀 코스프레를 한 결과) 말을 했다. 매번 거절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고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집에서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날들이 지속되었다.


나도 문제였다. 여전히 10대처럼 보호받기를 원했고 20대처럼 부모님의 경제 능력을 원망했다. 30대 후반이지만 철딱서니가 없었다.


하여 나의 분가는 자유를 꿈꾸는 해방의 의미가 아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수년간 기대어온 마음을 똑바로 세우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정서적 분리를 위함이다.


집을 나오면서 거액의 빚을 진 나는, 부모님의 빚을 이해하게 되었고 자식을 셋이나 키우면서 그 돈을 갚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길 바랬지만…

각 방을 쓰며 1인 1 TV, 1인 1 침대의 자유를 알게 되신 것 같다. 점차 나아지리라 믿는다. 암만.


그리고 분가의 최대 장점을 요즘 만끽하는 중이다. 무엇인가 하면… 나의 퇴사는 아직 부모님께 비밀이다. 죄송해요. 이러려고 분가한 건 아니어요. 부모님 마음 불편하실 까 봐 그러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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