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심어 보세요

by 곰작가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는 정남향이다. 아파트가 언덕 꼭대기에 있고 앞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한낮이면 빛이 거실 끝까지 들어온다. 그래서 그런지 거실에 놓인 화분들이 지나치게 잘 자란다.


꽃 피우기 힘들다는 난은 매년 고운 빛깔의 꽃을 피운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올 때 목이 꺾여 썩어 들어가던 선인장은 거실 천장에 닿을 것 같아 잘라서 옮겨 심고, 옮겨 심은 것이 또 천장에 닿을 것 같아 막내 고모가 잘라가고 그렇게 10년을 넘게 세포 분열 중이다.


먹다 남은 참외 씨를 거름이나 할 겸 뿌리면 싹이 났고 화분에 고추씨를 심었더니 고추가 열렸고 호박을 심었더니 호박꽃이 만발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아파트 거실에서 그것도 화분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느덧 거실은 힐링을 위한 관상용 화분이 진화하여 새 생명이 탄생하는 신비한 공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집에 들렀는데 아니다 다를까 선물 받은 커피 화분에 꽃이 피었다며 엄마의 자랑이 시작됐다.

엄마: “추석 때 작은 엄마가 사 온 커피 화분에 꽃이 피었어. 너무 예쁘지?”

나: “신기하네, 이 집은 뭐가 있나 봐. 식물도 사람도 잘 자라네”

(사람은 대부분 옆으로 자라서 문제지만)

엄마: “그러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거 있지. 다음에는 뭐 심을까?’

나: “이 정도 생명력이면 돈을 심어 보는 건 어때?


너무나도 이국적인 ‘커피’가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걸 보니 살짝 흥분을 했나 보다. 그래도 나와는 다르게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는 그대들이니 어떻게 한번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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