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 군, 오늘 오후에 비 소식 있던데 축구 취소되건 아니겠지?”
“에이 누나 취소는 절대 있어서 안 될 일이에요!”
여름 방학을 맞아 오로지 ‘축구 직관’이 목표인 여행자 민석 군. 축구 무식자인 나에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 찍어온 전유물을 연신 보여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오늘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메시’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민석 군은 사뭇 비장했다. 평소보다 아침을 더 든든히 먹었고 결연하게 카메라 메모리 공간을 확보했다. FC 바르셀로나 유니폼으로 한 것 고조된 어깨에 카메라를 동여매고 집을 나섰다. 훗. 귀여운 녀석.
어느새 창밖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 손에 꼽히는 세비야인데 하필 민석 군이 메시 영접하는 날 비가 오다니. 야속하구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녀왔습니다’ 우렁찬 인사와 함께 민석 군이 귀가를 했다.
‘축구 봤어? 메시 봤어?’ 미처 신발도 못 갈아 신은 민석 군을 보챘다. 씨익. 환희의 미소를 발사하더니 거실 테이블에 앉아 카메라를 들이 민다. 축구는 몰라도 다행히 메시가 누군지 아는 민박집 누나와 메시 광팬은 머리를 맞대고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니까 민석 군 카메라 안의 메시는 액정을 확대하고 확대해서 등번호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직관의 감동과 울림까지 공유하기에는, 메시의 천재적 축구 실력을 눈치채기에는 메시는 참 조그마했다.
“누나, 이게 메시예요. 진짜 너무너무너무 멋있었어요.”
진심이 꾹꾹 눌러 담긴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저 카메라 액정 너머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훗날 민석 군 인생에 손꼽힐 명장면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메시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희미하다. 하지만 카메라를 응시하던 민석군의 눈빛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찬 청춘의 눈빛.
그러고 보면 여행의 이유를 말할 때도, 비싼 축구표를 위해 빡센 알바를 회상할 때도, 스페인에 살면서 어떻게 축구 경기를 한 번도 보지 않았냐고 깜짝 놀라며 물을 때도 민석 군은 항상 생동감이 넘쳤다.
민박집에서 만난 또 다른 민석 군들은 고생해서 모은 아르바이트비를 몽땅 털어서 명품백을 지르거나, 성당이나 박물관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 밥값을 포기하고 민박집에서 1일 1식을 하거나, 인생 사진을 위해 하루에 2번씩 옷을 갈아입는 열정을 불사르거나. 각자의 방식대로 청춘을 유랑하고 있었다.
80년대생인 나에게 90년대생 그들은 부럽기도 대견하기도 때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여행은 라떼도, 지금의 그들에게도 '가슴 뛰게 하는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