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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작가 Mar 31. 2020

검은 눈동자의 이방인

골목 초입에 들어섰을 때부터 아기의 울음소리가 왕왕 울렸다.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뭐가 그리 서러워 저리 우는 걸까? 호기심을 담아 마주 오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역시 외국 아기들은 참 인형 같구나. 생각하는 찰나, 아기의 울음이 멈췄다. 정확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우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스쳐 지나갈 때까지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아기는 지나치고 나서도 유모차에서 몸을 빼 나를 끝까지 쳐다보았다.


민박집은 매일 만 실이고 구시가지에는 한국인들이 넘쳐 나고, 지금은 21세기이며 글로벌 시대지만 나 같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동양 여자애를 아직도 신기해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뭐, 주요 관광지를 벗어나서 생활을 하기도 했고 그곳에서 나를 눈여겨본 것은 대부분 어르신들과 어린 아기들이었지만 처음에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익숙한 건 ‘China?’(중국사람)라고 묻는 것이었다. _어쩌면 중국인 같이 생겼는데 중국말을 안 쓰는 내가 신기했는지도 모르겠다. _ 빛의 속도로 “Coreano”라 정정을 해주면서도 왜 이렇게 중국인이냐고 묻는 것에 해명을 하고 싶은 건지. 어찌하여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고 싶지 않은 건지. 정확히 그 카테고리는 무엇인지. 희미하지만 이상하게 꼬인 스크류바 같은 마음이 늘 내재되어 있어서 여행을 할 때면 의도적으로 중국사람들을 피하기도 했었다. 




스페인은 편의점 개념의 잡화점을 찾기 힘들다. 신발만, 모자만, 아이 옷만, 칼만, 한 가지만 파는 가게. 전문화 세분화되어 있어 스카치테이프를 사거나 자물쇠를 사려면 당최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기 일 수였다. 좀 지나서 알게 되었는데 편의점과 비슷한 형태의 가게는 대부분 중국인들이 운영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대뜸 “China?”라고 묻는 것은 이들의 영향일 테다.


세비야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동네 구경을 하다가 우연히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을 알게 되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못 알아들어요.’, ‘난 한국 사람이에요’를 (예전에 중국 여행할 때 배워 두었던) 다급하게 뱉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늘 그랬던 것처럼 중국인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찰나, 등 뒤로 ‘너 지금 그거 중국말이야. 그런데 한국사람이라는 거지.’ 하며 도망가는 나를 따라 나와 끝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착각이었을까 무척이나 반기는 눈치였다.


첫 만남을 시작으로 그곳은 풀을 사고 작은 액자를 사고 예쁜 노트를 사기도 했으며 아이스크림도 사 먹는 단골 가게가 되었다. 분명히 나는 중국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저씨와의 대화는 중국말로 시작해서 스페인어로 끝났다. 가끔 ‘덤’이라며 아기들 장난감 같은 선물을 챙겨줬고 동전이 모자랐던 어떤 날은 흔쾌히 할인을 해주기도 했다. 중국인, 한국인 국적은 달랐지만 지구 반대편 스페인에서 우리는 검은 눈동자의 이방인이라는 동질감으로 서로의 이웃이 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여기서 삶의 터전을 잡고 오랜 시간을 보냈음이라. 관광객이 드문 그 골목에 참으로 오랜만에 같은 눈동자 색의 이방인이 방문했음이라. 자신의 조국과 가까운 곳에서 왔다는 것으로만 반겨줬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간 같은 동양인이라서 멀리하고 중국인이라 은연중에 무시했던 편협하고 쪼잔 했던 과거의 나와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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