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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산 Aug 14. 2024

폭풍 전야

평화로운 일상의 끝자락

2011. 6. 10 금, 흐림


어느덧 직장을 그만 둔지도 2주가 되어간다. 

직장을 그만두면 피곤에서 해방되고 조금 차분히 내 생활이 정리되리라 생각했었는데, 역시 어떤 선택에나 일장일단이 있다. 대학원, 직장생활, 결혼준비, 신혼생활, 임신 등이 한꺼번에 맞물려 돌아갈 때에는 비록 마음이 지치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울망정 잘 짜인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끼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끼니 걱정이라니…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임산부가 되니 더더욱 내 손으로 무엇을 찾아먹는 일조차 버겁고 귀찮기만 하다. 어쨌거나 직장에 다닐 때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뭐라도 찾아먹고 출근을 했으며, 정확한 시간에 정갈하게 차려진 급식을 먹을 양만큼 퍼먹고, 저녁이 되면 신랑과 함께 밥을 챙겨 먹거나 밖에서 동료와 무엇이라도 시켜 먹곤 했다. 그리고 늘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먹을 것도 사방에 널려있기 일쑤였다. 조금 출출하다 싶을 때면 그저 지나가다가 구미가 당기는 것에 손을 대기만 하면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챙겨 먹는 것이 일이다. 뱃속의 아기도 일용할 양식을 꼬박꼬박 먹어줘야 하니, 이젠 나와 아기의 먹을거리를 함께 챙기는 것이다. 비록 소리 없이 뱃속에서 조용히 양수만 삼키고 있는 아기지만, 엄마가 밥을 제 때 먹느냐 안 먹느냐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끼니 문제 말고도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지만 현재 내게는 이것이 가장 큰 이슈이다. 역시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크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밥 먹을 시간이 또 다가온다. 과제, 보고서 작업을 하다가도 밥 먹을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가장 긴장된다. 숙연한 마음으로 애써 끼니를 챙겨 먹고 나면 혼자만의 뿌듯한 성취감에 젖어든다. 오늘도 해냈다! 오늘 저녁에는 남편도 늦게 들어온다. 나는 두 번의 거사를 홀로 치러야 한다. 아니구나, 아기와 함께 치르는구나.



큰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임신 5개월 무렵에 썼던 일기다. 나는 입덧이 무척 심했기에, 이 일기는 어느 정도 입덧이 가라앉은 후에 썼던 것으로 보인다. 끼니 걱정할 정도의 여유를 찾은 걸 보면. 지금 보면 폭풍 전야다. 폭풍이 다가오기 전, 일상의 부대낌과 평화. 다가오는 폭풍의 존재와 위력은 전혀 예상 못한 채로 소소한 일상의 불편과 외로움, 즐거움 등등을 누렸던 시기.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은 맞다. 물론 임신 중 입덧이나 몸 상태를 생각하면 편하다는 말도 다소 오류가 있다. 나를 잊어버릴 만큼 정신없이 휩쓸려버린다는 점에서,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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