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1년에 큰 아들을 낳았고, 2014년에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2013년에 '언어치료'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봤으며, 2022년에 언어재활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였고 언어치료사가 되었죠. 발달 면에서 세심한 관찰과 개입이 요구되는 아이들을 키우며,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민 가지 않고(못 가고?) 살아가는 한 엄마의 시간과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개인이 경험하는 일은 곧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이 나라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엄마는 극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 삶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늘 고민하고 일궈나가야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뿐인데, 누구나 누리는 권리를 부단한 노력으로 얻을까 말까 한 사람. 아이가 가진 장애의 특성이나 중증도(심한 정도)에 따라 부딪히는 지점이 다르고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언젠가부터 애 셋을 키우는 기분이었어요. 큰 아이, 작은 아이, '사회'라는 아이. 막내가 제일 키우기 까다롭고 힘들죠. 두 아이의 느림보다, 사회의 느림이 더 어렵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화도, 억울함도 덜했어요. 앞서 일구고 노력한 이들 덕에 조금 자란 사회를, 저도 더 키워볼까 싶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해 기껏 자란 아이가 퇴행할까 두렵기도 하고요!
세상에는 함께 성장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힘이 여기저기서 보태지고, 저와 아이들도 제 몫을 다해 제가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아이들이 살기에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발달장애라는 말보다는 신경다양성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독특하고 더디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진 고유한 장점과 매력도 존재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만 느끼는 신경다양성의 세계, 그리고 주변 사람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이것은 비단 소수 집단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느린 아이'를 돌보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조금 독특하고, 느리고, 특별한 개입 속에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기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 사회에서는 우리 마음속 느린 아이도 숨통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요?
'나도 있는 그대로 소중해. 내 속도대로 자랄 수 있어.'
무언의 속삭임을 반기며 겉만 훌쩍 커버린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을 향한 당당한 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겠죠? 그런 사회라면 여러 골칫거리 사회 현상들도 조금은 더 수월하게 매듭이 풀리지 않을까, 소망을 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