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외며느리의 명절 산책
올해도 구정(舊正)이 지났습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구정이 진짜 설이죠. 저는 시댁이 멀어요. 명절 연휴마다 시댁에서 사흘 밤 자고 오는 일이 사십대로 접어든 후 체력적으로 조금 버거웠습니다. 더욱이 이번 명절엔 무릎 연골판 수술 예정이었다가 취소하면서 가게 되었어요. 두 달 가까이 허리와 무릎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중이라 수술이 아니어도 이번엔 쉬겠다고 하고 남편과 아이들만 보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하지만 통증이 최고점을 찍은 후 내림세를 보이는 데다가, 명절 연휴가 아니면 가족이라고 얼굴 맞댈 기회도 거의 없기에 그냥 가기로 했습니다. 최근 남편의 회사에서 빌려준 차의 승차감이 좋은 것도 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죠. 세상을 창조하듯 허리의 편안함을 창조하는 이름값 하는 승차감! 5시간가량 제 허리를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녀석입니다.
아이를 낳은 후 처음 시댁에 내려갔던 날이 떠오릅니다. 큰아들 훈이 백일이 갓 지난 무렵이었어요. 아이도 어리고 짐도 너무 많아 무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예쁜 손주, 조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내려가기로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심사숙고하고 내렸어야 할 결정이었어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귀향길에 저는 가는 내내 불편함을 호소하며 급기야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섭섭한 일로 마음에 남게 되었고요. 내가 너무 힘든 일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아직 어리고 서툰 부부였죠.
시댁에서도 제 몸 상태를 대략 아시기에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명절 전 여유 있게 내려가 어머니께서 추천하신 온천에 갔더니 아주 개운하고 좋더군요. 물속에 앉아있는 건 생각보다 편안했습니다. 집 안에 있으면 바닥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현재 저는 바닥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있는 자세가 가장 힘들거든요.
시어머니의 명절 공식이 있어요. 여자들이 직접 장만한 음식을 식구들이 둘러앉아 나눠 먹어야만 제대로 명절을 지내는 것이고 그게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라 여기시죠. 명절 연휴에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문화도 원칙에 어긋난다고 못마땅해하신답니다.
명절 전날 전과 튀김 장만 외에는 요리는 어머니께서 다 하십니다. 남편, 형님들, 저는 대부분 조수 역할이나 설거지 담당이에요. 어머니는 9남매의 맏며느리로 배다른 시동생들까지 뒷바라지하시며 오랜 세월 대식구 음식 장만에 익숙한 분이랍니다. 방문한 친척들이 돌아갈 때 나눠줄 약밥까지 수많은 명절 음식들과 그 양은 제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어요. 세월이 지나며 스스로 힘에 부치시기도 하고, 자식들의 꾸준한 잔소리에 지금은 양이 많이 줄기는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마도, 식구 많은 집 큰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하시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음식이 귀하던 시절 명절에 여인네들이 둘러앉아 전 부치고 아이들은 오며 가며 하나씩 집어먹고, 이웃들과도 나누었던 음식을 통한 정이 가슴 깊이 아로새겨져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행복을 끝없이 재현하고 싶으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고 명절에 할머니나 엄마가 음식 준비하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까지는 아니거든요. 그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추억들이 많으니까요. 시어머니의 로망이 이해되기는 합니다.
명절이라고 구태여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고, 번거로운 일거리를 만들고 싶지도 않은 어머니의 아들과 두 따님이 그만하자고~그만하자고~ 노래를 불러도 결국 매년 유지되어 온 일. 드디어 전과 튀김 제조가 시작되었어요. 남편이 전을 부치기 시작했고 저는 반죽을 떠서 팬에 올리는 역할을 했죠. 어머니는 저를 배려해 바퀴 달린 의자를 주셨지만 결과적으로 허리와 무릎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했어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많이 줄인 반죽의 양이 거의 줄어들었을 때쯤, 저는 큰아들에게 자전거 타러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추워서 나가기 싫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아들 녀석이 장단을 맞춰주지 못하네요. 남편에게 '산책 좀 하고 올게.' 한 마디 건네고 나와 동네를 찬찬히 돌아보았습니다. 걸어 다녀야 몸이 그나마 가뿐해지니까요.
십 년 넘게 오가면서도 잘 느끼지 못했는데, 동네가 구석구석 정겹고 낭만이 살아있더군요. 과연 영화 촬영지로 선택받을 만합니다. 이 동네가 영화 '소원(설경구, 엄지원 주연)'의 배경이었어요.
남편이 아동기를 보냈던 학교의 운동장은 지금 봐도 넓습니다. 도시와 달리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흉흉한 사건들과 코로나를 거치며 대부분 학교가 외부인에게 폐쇄적인데 아직 여유를 잃지 않았네요. 학교의 동물, 사람 조형물들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가끔 칠만 다시 한다고요.
이건 칠을 다시 할 때가 된 것 같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설치 당시 정부의 인구 정책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조형물입니다.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가리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정의 지휘권, 결정권이 아버지에게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네요.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다소곳이 서 있고요. 또 건강한 아이들의 밝은 모습. 그 시절 이상적인 가족상인가 봅니다. 산뜻하게 칠해주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군요. 어머니 동상에 스모키 화장을 해주면 웃기겠죠?
여유로운 산책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와 보니, 남편이 새우튀김 과업을 막 끝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네요. "네가 할 일을 너그 신랑이 다 했으니 고맙다고 한마디 해라."
앗! 어머니! 이번 명절 거의 완벽했거든요. 붙이지 않아도 될 한 마디로 완벽함에 기어코 흠집을 내고 마시는 우리 귀여우신 어머니….
"어, 가서 쉬어." 시크하게 한 마디 던지는 며느리와 결혼한 여자는 시집에서 전을 부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시는 어머니의 기묘한 동거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로망을 이해하고 몸이 허락하는 한 어느 정도 맞춰드릴 의향이 있어요. 단, 제 몸이 우선순위입니다. 저의 몸과 정신 건강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서요.
사실 어머니도 저한테 많이 맞춰주고 계시는 걸 압니다. 너그럽고 손이 커 인심이 좋으신 어머니는 당신의 방식이 확고하신 편이시죠. 하고 싶은 말씀을 삼키실 때도 많으실 거예요. 그렇게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게 가족이겠죠.
어머니, 저도 로망이 있답니다. 추석이나 설 한 번은 같이 여행을 가는 겁니다. 음식은 있는 국물에 떡국 떡 넣고 김 가루와 파만 뿌려도 충분하니,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산책도 하고 빨간 날 문 연 카페에도 들어가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거예요. 멀리 사니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걸 전 부치면서 해도 되지 않냐고 하신다면, 바닥에 무릎 접고 앉아 오래 이야기 나누는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무리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저는 양가 부모님들의 추억 앨범을 간직하고 물려줄 예정입니다. 제사는 가끔 앨범을 들춰보며 아이들이 모르는 조상들의 옛 모습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갈음하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기리고 가족이 모이는 게 좋으실 뿐, 어차피 절도 안 하는 제사니까요.
저의 로망을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되겠죠? 하늘이 두 쪽 나도 명절의 완성은 전과 튀김이라는 로망을 실현하고 계신 어머니처럼, 저도 나름의 방법으로 실현해 나가려 합니다.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는 미래의 며느리와 타협도 해야겠지요.
자식들 일 년에 두 번이라도 맛있는 거 실컷 해 먹이고 싶으신 어머니 사랑 덕분에 잘 먹고 잘 쉬다 왔습니다. 온천의 효과인지 지금까지 다녀온 명절 중 가장 피로도가 덜하네요. 아! 산책 효과인가요?
모두 행복한 연휴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