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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산 Aug 20. 2024

사랑의 기쁨

말이 조금 늦는 것 외에는 하얀 찹쌀떡처럼 몽글몽글 귀엽고 “아~~~”하며 180° 폴더형 인사를 하는, 타인의 눈에는 예쁘고 내 눈에는 지극히 사랑스러웠던 훈이 두 돌 무렵 둘째 사랑이가 찾아왔다. 입덧을 제외하면 비교적 순탄했던 첫째의 임긴 기간과는 달리 고비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긴 시간 입원도 해보았고, 7~8개월을 누워서만 지내며 아이를 기다리는 산모들이 있음을 알았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위대한 어머니들이었다. 

쉬려고 누워 있는 것과 누워 있어야만 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나 역시 2주가량을 극단적인 눕힘 속에서 태아의 안전을 수시로 확인했고, 퇴원 후에도 자주 병원을 방문했다. 예고 없이 그날이 왔다. 아기의 혈류(피의 흐름)가 좋지 않은 편이라며 병원에서 재입원을 권유했다. 입원하고 불과 이틀 후 사랑이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훈과는 달리 태동이 거의 없었던 사랑이는 그렇게 29주에 710g의 작은 몸으로 나왔다.

  

멀리서 들리는 듯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잠깐 들은 기억뿐, 세상에 나온 첫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일주일 가까이 시간이 지나서야 보조 기구에 의지해 아이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이목구비가 누구를 닮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작은 얼굴. 간호사가 한쪽 귀가 작다며 인큐베이터 안에서 아이의 몸을 들어 보여주었다. 너무 작아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몸무게가 늘어남에 따라 귀 크기와 형태의 차이는 더 분명해졌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눈에는 작은 귀가 귀엽게만 보인다. 

소이증이 있는 아기의 엄마 중에 귀만 보고 한 달 내내 밤새 울었다는 엄마들이 많던데. 그래서 더 수술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양쪽 귀의 균형을 맞춰주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했는데, 난 더 기다리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수술을 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귀만 보고 울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 다가올 예정이라 신이 내 눈에 몰래 렌즈를 끼웠던 것 같다.

사랑이 100일 기념 촬영

100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친 사랑이는 ‘찬’이 되어 집으로 왔다. 아직 3kg이 못 되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보다 어마어마하게 커진 찬은 바뀐 환경에 불편함을 호소할 때가 많았다. 아빠 품에서 잠드는 것도 싫어해서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모유를 유축기로 계속 짜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모유 먹이기를 그만두었다. 분유에 병원에서 준 영양제들을 타서 먹이며 그저 잘 먹고, 잘 크기만을 바랬다. 찬은 또렷한 이목구비에 웃는 모습이 하회탈 같아서 ‘회탈이’라고 불렸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다. 걱정했던 문제들이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안정되고, 찬은 무럭무럭 자랐다.


찬이 첫 돌이 지나고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고 한시름 놓았을 무렵, 훈은 동요와 자장가를 술술 부를 수 있음에도 여전히 대화가 어려웠다. 복지관에서 언어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엄마의 입원으로 치료를 지속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계속했어야 했다. 

발달 지연이 있는 아이들은 일반적인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달이 나타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에 적극적인 촉진이 필요하다. 아이의 발달 단계와 특징을 세심히 관찰한 후 그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꾸준한 자극을 제공했을 때 놀랄 만큼 성장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한 자극이 치료실뿐 아니라 아동의 생활 환경에서 일관성 있게 제공되어야 하고, 주 양육자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이 협력할 때 이 일이 가능해진다.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속도를 맞춰 걸어가려면 주 양육자를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 자원이 많을수록 좋다.

훈이 본격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한 치료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치료 분야가 있다는 것도, 주변에 발달 센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소이증과 외이도 폐쇄로 한쪽 귀는 들을 수 없고 다른 귀도 난청이 있었던 찬 역시 치료적 개입이 필요했다.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치료실을 오가고 청각 전문학교를 찾아다니던 시절. 지식도 부족했고 미래는 너무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문제에 대한 답이 분명하지 않고, 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밖에 없던 때였다. 그 시도조차 경제적 이유로 충분히 해볼 수 없었다.


“지금 그 정도 치료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무표정하게 담담한 어투로 말하는 대학 병원 의사에게 “돈이 없어요.”라고 나 또한 담담하게 대답했었다. 사람에 따라 ‘빚이라도 내야지, 부모가 돈 없다고 가만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난 나와 환경을 원망하기도 했고, 돈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결론은 돈이 매우 필요하지만 무리하게 애쓸 필요는 없다는 거다. 내 탓, 네 탓, 탓, 탓을 하다 보면 지금 내 앞에서 미소 짓는 아이의 모습을 놓친다. 미소 짓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함께 웃을 기운이 있어야 의사소통을 위한 상호작용도 시작된다. 

흐르는 시간의 물결에 여러 시행착오와 오만가지 감정들, 내가 미처 몰랐던 고정관념들이 씻겨 내려갔다. 강바닥에 모래가 쌓이며 새로운 자갈들이 생겨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오늘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미뤄도 된다.

나도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도 부족할 수 있다.

내 아이만 ‘약하다.’라는 편견을 버려라. 다른 아이도 서툴다. 모두 도움이 필요하다.

안 되는 건 억지로 하려고 들지 말고 신에게 패스!

함께해서 행복하지만 나는 나고, 너는 너야.


아직 시행착오 중일 수도 있고, 앞으로도 무수한 감정과 생각들이 흘러갈 것이다.

어느새 한 걸음 나아간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남보다 몇 배로 큰 기쁨이다. 아이들로 인해 더 단단해지려 노력하다 보니 몰랐던 나의 모습을 새롭게 알아갔다.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여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의 가치를 느끼니 지나간 인연도 다시 새겨보게 되고, 사람 귀한 줄 알게 되었다. 버겁고 힘들 텐데 잘 웃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본다.


비록 다시 구덩이에 빠질지라도, 

사랑하면 결국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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