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장비에서 아이콘이 된 의자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한 기업, 동아알루미늄은 오랫동안 텐트의 기둥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쓰이는 초경량 알루미늄 폴대, 그 대부분은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기술은 쌓여 있었지만,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연이었습니다.
2011년, 이 기술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텐트의 폴대를 의자에 응용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헬리녹스 체어원이었습니다. 조립은 폴대처럼 직관적이었고, 수납 크기는 가방 한쪽에 들어갈 만큼 작았습니다. 무게는 가볍지만 앉으면 안정적이었습니다. 캠핑장에서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의자를 빼앗듯 앉아보곤 했습니다. 그만큼 낯설고, 동시에 설득력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체어원의 등장은 곧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캠핑장 또는 야외는 접이식 낚시 의자나 부피가 크고 무거운 접철식 의자가 지배하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체어원이 나온 이후, 캠핑장과 야외에서 보이는 의자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서둘러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지만, 체어원만큼의 경량성과 안정성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누가 먼저 완성도 있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느냐의 싸움이었고, 충분한 역량을 축적한 헬리녹스가 그 대답을 처음 완벽하게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체어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웃도어 현장을 제패한 뒤, 체어원은 의외의 무대를 향했습니다.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의 협업은 체어원을 단번에 패션의 언어로 끌어올렸고, 베이프와의 만남은 의자가 문화적 상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웃도어와 관계없을 법한 브랜드까지 가세하면서, 체어원은 단순한 캠핑 장비에서 예술적 오브제로 변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콜라보는 단순히 색과 로고를 얹은 변주가 아니었습니다. 체어원의 구조적 완성도가 있었기에 어떤 브랜드와 만나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웃도어에서 출발한 체어원은 어느새 거실과 카페, 갤러리 전시장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인도어로 들어온 아웃도어, 이 역행의 흐름 중심에 체어원이 있었습니다.
헬리녹스는 이후 체어제로, 체어투 등 다양한 모델을 내놓았지만, 그 근간은 언제나 체어원이었습니다. 2011년 출시 이후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체어원을 능가하는 새로운 표준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모방과 변주가 있었지만, 원조의 자리를 위협하지는 못했습니다.
체어원의 성공은 한국 기업이 세계를 선도하는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상품의 성취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시장을 열고 그 시장을 문화적 아이콘으로 확장시킨 이야기입니다. 의자 하나가 이렇게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헬리녹스 체어원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