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같은 삶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행복은 단순히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인생을 마무리할 때 돌아보며 “행복한 삶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즉, 행복은 삶 전체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짧은 순간의 기쁨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여행에서 잠깐의 즐거움이나 좋은 식사를 하는 순간은 행복의 일부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내 삶 전체를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만족은 무엇일까? 만족은 행복보다 더 현재적인 판단과 관련이 있다. 나는 만족을 질적 기준과 양적 기준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
먼저 질적 기준은 미적 탁월성이다. 삶의 순간순간, 그리고 나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화와 균형, 세련됨을 추구한다. 나는 삶을 하나의 작품처럼 생각한다. 이 작품 안에서 각 행동, 말, 선택은 서로 어울려야 하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조화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사람을 만날 때 말의 톤, 행동의 방식, 상대방의 반응과 나의 행동이 서로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도록 신경 쓰는 것 역시 미적 탁월성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양적 기준은 경험의 누적, 즉 삶의 전체적인 면적과 같다. 삶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행복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최고점(peak)과 같고, 만족은 그래프 아래 전체 면적에 해당한다. 양적 경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쌓이지만, 단순히 경험이 많다고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낮은 질의 경험은 높은 질의 경험을 선택할 기회를 줄이기 때문에, 나는 질적 기준을 우선시한다.
경험을 쌓는 양적 측면은 시간에 맡기고, 중요한 순간의 선택과 집중에서는 질을 우선한다.
나는 삶을 조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극단적 과잉이나 파열을 피하고, 균형과 비례, 절제를 통해 삶을 설계한다. 이 조화는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삶의 미적 탁월성은 나 자신 안에서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도 드러나야 한다. 이는 삶을 하나의 사회적·개인적 예술작품으로 보는 시각이다.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것은 진리이며, 사람마다 진폭과 크기가 다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찾아오는 행복은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삶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 예상치 못한 사건과 만남, 기쁨과 좌절 모두가 삶의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를 불청객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로 본다.
그렇기에 나는 삶의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확실성과 변화 속에서 삶의 적분량과 밀도를 다지려 한다. 순간순간의 경험을 질적으로 선택하며, 전체적인 삶의 구조 속에서 만족과 조화를 유지한다.
나는 지금 내 삶이 만족스러운 상태임을 느낀다. 매일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질적 기준에 맞게 살아가고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내 삶은 단순히 경험을 쌓는 양적 과정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경험이 서로 어울려 조화로운 형태를 만드는 구조로 짜여 있다. 조화 속에서 삶을 살아가며, 나는 현재의 만족을 실현하고 있다.
결국 내 삶의 철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행복은 최종적 판단으로 삶 전체의 평가를 의미하고, 만족은 현재적 판단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조율하는 기준이다. 미적 탁월성은 삶의 질을 결정하며, 양적 경험은 자연스럽게 쌓이도록 둔다. 나는 자신과 타인, 경험과 행동을 모두 조화롭게 연결하며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삶 속에서 순간순간의 기쁨도 허용되지만, 전체적인 균형과 비례가 유지될 때 만족은 더욱 단단해진다. 그리고 삶의 불확실성과 변화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윤택해지고 행복의 순간들은 더 달콤하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조화를 기준으로 한 삶 속에서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삶의 구조 속에서, 행복은 결국 삶을 돌아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최종적 결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