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마음
자란 환경이 같아도 아이들은 다르게 컸다. 똑같은 부모에게 자란 형제자매 중 남동생과 나만 몸과 마음에 공을 들인다. 엄마는 건강한 집밥과 간식으로 우리를 키웠다. 지금은 차 타고 5분 거리에 밭을 구해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 닭의 알을 드시고, 챙겨서 보내주신다.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도 엄마를 닮았다. 때가 됐었나 보다.
피부에 닿는 옷이나 침구의 소재, 사용하는 물건을 살 때 따지는 조건을 음식에도 적용했다. 출신 땅이 어딘지, 뭘 먹고 자랐는지, 성분은 뭔지,내 몸에 들어올 만큼 자격을 갖췄는지 살펴보겠다!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나 재료 선택은 이제 자연스럽다. 물불 안 가리고 불량한 과자를 입안에 집어넣고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신 있는 상태에서 몸의 반응에 귀 기울이며 재료에 대해, 요리에 대해 생각한다. 먹고 난 뒤에는 양이 적당한가, 과식했나, 어떤 느낌인지 살핀다. 이게 식습관의 기준이다.
예민하다고도 하고, 똥칠할 때까지 살려고 그러냐고도 한다. 깐깐하게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고르다 보면 관계 속에서 오는 불편함이 느껴진다. 내 몸과 관련된 환경, 먹을거리, 옷의 재료 등에 대한 주관이 드러나면 시선이 변한다. 호기심이든 한심한 눈빛이든 조금씩 변화를 같이하는 친구도 있고, 여전히 빈정대는 사람도 있다. 예전처럼 나를 설명하려고 애쓰거나 내 취향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러네, 저러네, 말에 흔들리며 나를 바꾸려고 애쓰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숙련되었다. 조금은 맞추고, 대부분은 내 식대로 산다.
좋은 재료로 쿠킹을 하면 선물용을 함께 만든다. 친구가 좋아하면 뿌듯하다. 요리하고, 함께 먹고, 속 깊은 이야기로 이해가 깊어진다. 어떤 모습이어도 보기에 좋다. 교감. 공간을 꿈꾸게 된 계기다.
나의 공간은,
혈액순환의 아궁이 역할을 하는 복부이자. 분위기 좋은 환경에서 식사할 수 있게 꾸민 거실이자. 관계를 통해 너와 나,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꿈꾸는 장소다.
나의 도도함은,
‘싸가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도도함이 어쩌다 드러날 수 있지만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신중하고 싶은 몸짓이다.
나의 식탁은,
내 몸의 반응과 마음의 연관성을 관찰하며, 좋다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재료를 찾는 요리의 집이다. 내가 느끼는 의식의 흐름이 몸을 순환하며 데우듯, '나'들과의 따뜻한 교감을 꿈꾼다.
<공간, 도도한 식탁>은 철학적 명상을 통해 만들어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