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 보니 글을 썼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그 기간이 16주나 됐다.
어림잡아 두 달 반, 매주 새로운 글을, 사고 없이(?) 써낸 데에 우선 칭찬의 말을 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하다 보니'라는 말이 딱 맞다.
그간에는 N사 블로그가 주 창구였다. 때에 따라 B5 규격에 맞춰 헌 글을 다듬고 새 글을 썼다.
그렇게 모은 글이 백 쪽이 넘어가면 (공식 또는
비공식) 출간물 형태로서 묶어내는 방식으로 나름의 마무리를 했다.
이렇게 계속 쓰긴 해왔으나 이번과 같이 마감이 있는 글은 사실상 처음이다.
그 마감이 매주 있다? 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 해서 모아 놓은 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두 편 정도 미리 써둔 글이 있었으나 이후에는 거의 생방송하듯 매주 새 글을 썼다.
(미리 써둔 두 편은 비상시(?) 사용하기 위함인데,
이때 비상이란 다른 사적 과업이 많아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때를 의미한다.)
이렇게 쉽지 않은 도전을 '어떻게 하다 보니' 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바로 '시험'이다.
언젠가, 아주아주 먼 미래에는 글을 쓰는 일을 주 업(業)으로 삼고 싶은,
아주아주아주 큰 꿈이 있는 까닭인데, 그에 앞서 과연 나는 매일매주매달 새 글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스스로 시험을 해본 것이었다.
시험 결과, 그럭저럭 할 수는 있겠으나 솜씨를 더욱 키워야 한다,라는 결론이다.
더 많이 읽고 쓰고 다듬어야겠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중간하게, 20주도 아니고 16주 차에 그만두냐?
큰 이유라기 보단 당장 쓰고 싶은 글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처음 이와 같은 큰 제목을 구상하고 첫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 대충 적어 두었던 목록이 있었는데
그 안에 있던 주제는 얼추 다 썼다.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 나, 나를 구성하는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나의 얼굴과 몸, 성격, 꿈, 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또 어머니.
이즈음 하면 일단 1부는 마무리해도 좋을 듯싶어 짧은 고민 끝에 작은 마침표를 동그랗게 그려 넣는다.
지난 16주 간 내리 같은 주제를 놓고 쓰긴 썼다마는, 그렇다 해서 이전보다 나와 나를 구성하는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다던가, 미움이 옅어졌다던가, 그렇진 않다.
아주 똑같다, 는 아니지만 바탕이 되는 마음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잠시잠깐 또는 꽤 오랜 시간 '미워'했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차라리 그냥 사랑하면 좋을 텐데, 사랑'만' 하면 좋을 텐데, 아님
아주 미워해서 앞으로 볼 일 없이 살면 좋을 텐데, 미워'만'하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지난 16주간 이와 같은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특히, '미움'의 완결이 나지 않은 대상에 대해 쓸 때 더더욱 그랬다.
나의 일부이며, 때론 나의 전부였던 두 사람을 놓고 쓸 땐 더없이 괴롭고 힘들고, 슬펐다.
너무 다른 두 가지 마음이 싸움박질을 해대는 탓에 '내가 괜한 짓을 시작했나'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두 사람에 대한 아주 오랜 미움부터 끄집어내어 이 두 손으로 또박또박 빈 화면에 새겨 넣고 나니
정말 '미움'이 됐다.
이전에는 다른 말로 대신했다. 불편하다, 싫다, 짜증 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 저렇게 안 할 거야,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다.
그게 사실은 '미움'이었다. 두 사람을 세상 누구보다 미워했다.
그 미움은 완결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일부이며, 때론 나의 전부였던 두 사람과 그 두 사람을 미워하는 나를, 나는 아직 미워한다.
그럼에도 썼다. 그러므로 썼다. 그렇게 쓰고 지우고, 매만져가다 보니 예상치 못한 한마디가 손끝에 닿았다.
미워해도 괜찮아.
모두 다 쓰고 나니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 그렇게 끙끙 앓던 지난 몇 달간이 사실은, 이 한마디를 찾아내기 위한 시간이었음을.
미워해도 괜찮아. 사랑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과 미움과 사랑이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어.
어느 하나가 끝이 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아니야, 같은 말이 지난 모든 문장을 압도했다.
아, 그렇구나.
미워해도 괜찮구나, 꼭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맞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간 나는 '결국에는' 사랑하게 된다,라는 틀을 저 끄트머리 어디 즈음에 두고서는
나와 주변과 여러 과업과 관계를 그에 끼워 맞추기 위해 무지 애를 썼다.
중간에 한참 헤매고, 주저앉고 다른 데로 갔다 다시 유턴하고, 아무튼 그 난리를 치더라도
끝은 이미 지정해 놓은 그곳에서 마무리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나의 주변 사람을, 여러 과업과 이에 얽히고설켜있는
모든 관계를 '사랑'했다,라는 듣기 좋은 말이 필요했나 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물론 아니지만, 피로의 문제는 맞다.
나와 나 아닌 모든 걸 다 이렇게 통제통솔하려 드니, 이 얼마나 피로하고 피곤한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걸, 굳이 그렇게 하려 스스로 들들 볶았구나.
쓰고 나니 한결 낫다.
물론 지난 글과 조금 대치되는 결론이긴 한데,
그래서 이와 같은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상황이 약간은 당황(?)스럽긴 한데, 그래도 결론은 이렇다.
미워하고 사랑했고, 미워해도 된다.
사랑하고 미워했고, 또 미워해도 된다.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면? 더 좋고.
앞으로 계획이 있긴 한데, 우선 몇 주 정도는 그냥 쉬고 싶다.
충분히 다 쉬고 나서, 그다음에 쓸 글은 대충 이렇다.
먼저 그간 잠시 벗어두고 멀리했던 '사회사업가'란 이름으로 다시 쓰고 싶다.
주 업(業)을 빼고서는 나란 사람을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이미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이 일 한 가지에 꽤나 몰두, 심취해서 살고 있다.
내년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사업과 새로운 만남,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글을 쓰려한다.
그다음은 역시 직업인으로서 말고 생활인으로서의 글, 제목은 '(가제) 거의 매일 쓴다'라고 지어놨다.
너무 길지 않게, 대신 매일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해 쓰려한다.
일일이 적어놓진 않았지만 몇 개의 쓸 거리 목록은 있다.
조만간 정리해서 목차가 절반 이상 들어차면 그때부터 다시 써보려 한다.
또 한 가지가 있긴 한데, 사실 가능성이 반반이다.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 시즌 2?
사랑하고 미워했고, 미워하는'으로 가야 하나? 아무튼, 아직 못다 쓴 주제가 몇 개 있긴 하다.
주제는 있는데 쓸 내용일 빈약하여 정식으로 다루진 않았다.
예를 들면, 작은 눈이라든가, 성질머리라든가….
역시 때가 되고 글이 차면 그때 쓰겠습니다.
이제 정말 마무리해야겠다.
그간 크게 영양가 없고, 딱히 재미없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 주절대는 이 공간에 찾아와 준 여러분, 고맙습니다.
16주 간 매주 글을 써낸 나 자신, 너도 고생했다.
조만간, 다시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