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전 세계가 나를 주목했다. 400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인간. 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자, 구시대의 현신이었다. 그들은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100년이 4번 지나갈 동안 개벽한 세상을 보고 놀라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물론, 당시 나는 지난한 회복 과정 (심지어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속에서 다시 잠들 방법 만을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을 알 수는 없었다.
의식이 돌아온 후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두 눈을 뜰 수 있었다. 직접 소변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이미 노화와 죽음이 정복된 세상에서도, 책장 사이에 끼인 나뭇잎처럼 앙상하게 말라붙은 신체에 수분을 돌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이 명확해져 갔다. 나는 이제 선희를 만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400년 동안 보았던 것은 뇌 속에 한 올 남아있던 기억의 잔향이었고, 그림자였다.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이 완벽히 사라진 것이다. 먼지 하나까지도.
손가락을 움직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났다’는 것 밖에 없었다. 그 사실만큼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들의 외모와 표정, 심지어 걸음걸이에서도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친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그나마 그들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연장선에서 내가 눈을 뜬 것임을 짐작케 해 주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모두들 흠칫 놀라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언제고, 여기가 어디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들은 내게 미소를 보냈고, 내가 불편한 점을 말하면 바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었지만, 내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기구에 의지하지 않고 걸음을 뗄 수 있게 될 때쯤, 나는 나에게 배정된 회복실과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복도 쪽에서 볼 때는 작은 방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내부가 넓고 높았다. 불투명 유리로 된 자동문을 통과하자, 잔디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카펫이 깔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문이 있는 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은 모두 거대한 유리창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너머로 수풀의 윗부분이 보였다. 그리고 방 중앙에 일인용 소파 8개가 완벽한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나는 창 밖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몇 분 뒤, 정확히 일곱 명의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흰 가운을 걸치고 있지 않았다. 헤어 스타일도 어색하지 않았다. 심지어 두 명은 2023년에 유행했던 박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들 갓 스무 살이 넘은 정도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앞으로 모든 질문은 저희에게 해주세요.”
리더로 보이는 금발의 여성이 내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이질적인 느낌은 하나도 없는 유창한 20세기 한국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의식을 회복한 후 처음으로 해보는 악수였다. 상대방의 손과 팔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진행 된 첫 상담 세션에서, 나는 내가 의식을 잃은 지 400년 넘는 시간이 흘렀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나는, 나에게 아이작 뉴턴보다도 더 먼 과거의 인물인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실제 숫자를 직접 듣게 되니 몸이 땅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7인의 상담가 중 몇 명이 나를 부축하여 회복실로 데려다주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쯤에는 베갯잇이 흠뻑 젖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