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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만화가 Oct 26. 2024

400년 후의 너에게 (4)

매일 진행되는 지루한 재활과 별개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명의 상담가들과의 세션이 진행되었다. 나에게 악수를 건네었던 금발의 여성을 포함한 몇 명은 정신과 전문의였는데, 그들이 대화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했다. 나머지는 대화를 보조할 수 있게 특별히 선발된 전문가들이었다. (K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상담은 대부분 나의 질문과 그들의 대답으로 채워졌다.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와 다른 점이라면, 나의 질문은 짧고 추상적이었으며 그들의 대답은 길고 구체적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내게 2023년부터 시작된 400년 간의 ‘근대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션은 절대 1시간을 넘기지는 않았다.


네 번 정도 세션이 추가로 진행되었을 무렵, 나는 그동안 진행되는 이야기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마치 거대한 기류에 휩쓸려 흩날리다가도 결국 자동차의 보닛 위에 안착하는 송진가루처럼, 이리저리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나의 질문과 그들의 대답,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역사 강의가 무언가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 ‘무언가’가 두려웠고,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느낀 위화감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었다. 서로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뒤, 리더인 제니 포울링 (내게 악수를 건넨 금발의 여성)이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200여 년 전, 몇몇 과학자들의 인상 깊은 연구와 행운의 도움으로, 인류는 죽음과 노화를 극복하게 되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짐작했던 부분이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앳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선이 젊은이의 그것이 아님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들은 눈빛만 늙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50년 뒤, 세 주체의 대합의를 통해… 죽음이 법적으로 금지되었고요.”


이 부분에서는 이해에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죽음이 금지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일까? 나는 또다시 깊고 끈적한 늪 속으로 침전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그들이 나를 부축해 주었다. 그날도 밤새 잠들지 못했다. 나는 선희를 400년 전의 세계, 그러니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남겨두고 떠나왔다. 그리고 내 여행길은 말 그대로 ‘무한하게’ 확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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