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날 밤, K가 처음으로 회복실로 찾아왔다. 7명의 상담가 중 눈에 띄는 인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문을 두드리고 홀로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는 특유의 붙임성 있는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건네고는, 종이에 인쇄된 자신의 명함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K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리고 나선희 씨의 8대손입니다.”
그리고는 본인이 알고 있는 선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가방에서 선희의 물품들을 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결국 내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K와의 비정기적인 대담이 시작되었다.
고백하건대, 초기에는 그의 방문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그가 순수한 교류의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K도 자신에게 암묵적으로 주워진 역할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나선희 교수님의 후손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K는 내가 선희와 교류했던 짧은 기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지만, 이는 오히려 과거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인 듯했다. 그는 먼 옛날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와 선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큰 감흥을 맛보는 것 같았다.
가령, 내가 선희를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