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케틀 렌치]의 접시 닦이로 일하고 있었고, 선희는 가을 학기 개강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참이었다. 예정된 면접 시간보다 일찍 가게를 방문한 그녀에게, 나는 직접 내린 커피를 내어 주었다. 그녀는 볕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유리로 만든 냅킨 홀더에 꽂혀있는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면접 볼 때 메뉴 외우는 건 안 나와요.”
내가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귀를 붉히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중에 그녀는 그때 자신이 내게 ‘외우고 있던 것 아닌데요?’라고 쏘아붙였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대답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두 눈과 흰 피부, 목덜미 뒤로 넘어가는 머리카락을 본 순간, 내 귀 역시 붉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면접에서는 [케틀렌치]의 메뉴를 말해보라는 질문이 나왔다!)
K는 내가 선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을 때를 단 한 장면으로 설명하는 것을 놀라워했다. 무한한 시간을 부여받은 이후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긴 호흡으로 관계를 음미하게 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400년 후의 세계에는 일반적으로 한 순간에 반한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한 순간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전혀 달라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그래서 팽창기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일종의 멀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나는 K에게 ‘‘팽창기’의 책과 영화들이 불로불사의 세계를 대부분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린 것 같다고 말했다. K는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고 했다.
“죽음이 금지되었다고, 모든 것이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은 아니에요. 학자들은 새로운 철학을 탐구해야 했고, 종교인들은 새로운 교리 해석을 제공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니에요.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평론가들의 비판을 받는 현상도 여전히 그대로고요.”
그리고 재밌다는 듯 쿡쿡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인간이 더 이상 죽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지않아 세계가 파멸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믿었던 이들은 200년 넘게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고요.”
K는 지금의 세계와 400년 전의 세계 중 어느 한쪽을 지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오로지 그 둘 간의 차이가, 그를 즐겁게 했다. 그 즐거움이 솔직하고 가벼워 보여서, 두 어 달 때쯤 지났을 때부터는 나도 긴장을 풀고 그의 방문을 즐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