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하는 것보다는 여행 이야기를 듣는 것을 백만 배쯤 좋아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것 같다.
중세의 끄트머리를 살았던 유럽의 한 학자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선원들이 가지고 온 갖가지 자료들을 바탕으로 신대륙에 대한 가이드북을 썼다.
그 책에 묘사된 신세계에는 다리가 세 개 달린 부족과 거인족, 염소 머리를 가진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이 유럽인들에게는 ‘진짜’ 신세계가 되었다!
이런 예는 정말 흔하디 흔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매혹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흥미로운 여행 이야기를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진부해서 차라리 졸업식날에 아빠와 짜장면을 먹은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신선하고 재미있을 정도다.
한편 어떤 이야기들은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어서, 진실성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 미모의 숙녀분은, 2011년 말 무렵 시리아를 여행하다 우연히 재스민 혁명의 여진에 휘말리게 되었고, 결국 경찰에 맞서 민중봉기 대열을 이끌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내 친구는 어렸을 때 합천에 있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자기 몸통 만한 바퀴벌레가 냉장고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봤었다고 말한다.
“오, 정말 신기하군.”
나는 이 이상의 반응을 해 줄 수가 없다.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은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나를 찾아왔다.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때도 나는 소심하고 친구가 없는 아이였다.
자식의 부족한 사회성이 걱정스러웠던 부모님은 나를 12명의 아이들과 4명의 대학생이 함께하는 겨울방학 캠프 프로그램에 보냈다.
명칭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개나리 캠프, 진달래 캠프, 민들레 캠프, 코스모스 캠프, 들국화 캠프. 이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캠프의 목적은 마이산 산속에 사는 매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내 기억은 눈 덮인 산길을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늘에서는 쉴 새 없이 눈 뭉치가 떨어졌다.
삽시간에 눈이 허벅지까지 쌓였다.
나와 11명의 초등학교 1학년들은 간달프의 뒤를 따라 모리아 산을 오르는 난쟁이들처럼 산기슭을 배회했다.
‘여기다가 오줌을 싸면 눈이 순식간에 녹으면서 홍해가 갈라지듯 땅이 나타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추위를 견뎠다.
매할아버지의 집은 사각형 마당을 가지고 있는 한옥이었다.
매할아버지의 집이 사각형 마당을 가지고 있는 한옥인 것을 보고 우리 12명의 탐험대는 모두 절망했다.
다행히도 매할아버지의 집에는 전기가 들어왔다.
매할아버지의 집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우리 12명의 탐험대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매할아버지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호박색 나무 바닥이 깔린 응접실이었는데, 양쪽 벽에는 매할아버지에 관한 신문기사들이 금빛 액자에 스크랩된 채로 걸려있었다.
매할아버지는 방 중앙에 있던 탁자와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는 우리 12명을 4열 종대로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다른 방으로 가서 커다란 참매가 들어있는 은 빛 새장을 가져왔다.
매할아버지는 달라이 라마 같은 얼굴을 가졌으며, 마른 몸을 회색 털잠바로 숨긴 노인이다.
달라이 라마 같은 얼굴을 가졌으며 마른 몸을 회색 털잠바로 숨긴 매할아버지가 건넛방에서 가져온 참매는 크기가 다 큰 강아지만 했다.
아무도 바라지 않았지만, 매 할아버지는 새장 문을 열고 참매를 꺼내 자신의 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4열 종대로 앉아 있었는데, 그 상태로 커다란 참매의 푸짐한 저녁식사가 되어 버릴까 봐 두려웠다.
하필 나는 맨 앞자리였다.
커다란 참매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듯 옆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매의 다리에 사슬이 묶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나는 줄곧 참매의 눈치를 살폈고, 참매가 날아들면 곧장 도망칠 수 있도록 오른손을 땅에 짚고 있었다.
내 왼쪽에 앉아 있었던 아이가 나보다 더 토실토실해 보여서 그나마 마음을 조금 놓았던 기억이 난다.
매할아버지는 내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매사냥을 계승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커다란 참매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매할아버지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 배가 아파왔다.
화장실이 어디냐는 내 물음에 매할아버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참매가 앉아 있지 않은 팔을 들어 창문 밖을 가리켰다.
화장실을 가려면 신발을 신고 나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옆에 있는 해우소까지 가야 했다.
해우소는 거무죽죽한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눈에서 나오는 습기를 빨아들여서 더욱더 검은색으로 착색되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손잡이도 축축했다
손으로 손잡이를 만지자 검은 얼룩이 배어 나왔다.
커다란 똥통 위에 놓인 널빤지가 화장실의 전부였다.
나는 지금도 아주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면 똥을 잘 누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때 내가 어떻게 거기서 똥을 눌 수 있었는지 정말 신기하다.
다행히도 추위에 코가 얼어붙어서 냄새는 많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철퍼덕.
수세식 화장실과는 차원이 다른 똥 떨어지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평소보다 시간도 배로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용감했고, 침착했다.
무사히 내보낼 것을 다 내보낸 뒤, 뒤처리도 깨끗하게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입게 된 사각팬티를 추켜올리고, 바지 단추를 잠그면서, 나는 내가 한 단계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눈보라가 치는 날, 사나운 매가 감시하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똥을 눌 수 있는 인간은 그렇지 못한 인간보다 더 나은 인간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된 나는 당당하게 발로 해우소 문을 걷어차며 밖으로 나왔다.
눈이 그쳐 있었다.
그 사이에 매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끝나 있었다.
먹잇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해방된 11명의 초등학생과 4명의 대학생이 마당으로 뛰쳐나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눈뭉치가 날아다녔다.
매할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대청마루에 서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저 멀리 어디선가 이곳을 꿰뚫어 보고 있을 커다란 사냥용 참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한 쌍의 로마황제 같았고, 그들의 앞마당에서 열다섯 명의 검투사들이 서로를 향해 흰색 포탄들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손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나무 화장실 앞에 서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푸세식 화장실을 정복한 몸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삽시간에 눈싸움의 지배자가 된 뒤 커다란 참매와 매할아버지에 대항하여 혁명의 깃발을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생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시절이 언제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언제나 그때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