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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May 12. 2022

4차 산업혁명과 분권화 구조

한국사회 비효율적 수직적 구조 문제에 대한 반성

독일 4차 산업 혁명 관점

한국사회는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기술 이야기를 하지만 그러한 기술을 이루는 본질에 대한 이해는 무척 부족한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4차 산업 혁명을 이루기 위한 본질은 과거 생산을 위주로 하는 2차 산업 시대의 수직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사회구조가 전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한국사회 사람들은 기술로 접근하지만 이러한 본질을 인지를 못하는 건 한국사회 기업에 일하는 노동자 혹은 정부 공무원 등 모두가 해당한다.


과거 산업혁명을 이루었던 시대도 인류 전체적으로 산업 혁명은 삶을 변화시켜왔고 그 변화에 따른 경제력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산업혁명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의 인식전환이 매우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이전의 중세 암혹시대와 달리, 십자군 전쟁 이후 커피 도입과 사람들의 토론문화 활성화등은 유럽인들의 인지적으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사회의 경우 pc통신의 시작은 인지적 변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럽 르네상스를 이루게 한 이슬람에서 시작된 커피 문화


과거 산업혁명처럼 또 다른 단계의 인지적 변화를 통해 설명해야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는 4차 산업 혁명이 이루고자 하는 방향을 정의할 수 있다.


독일의 4차 산업 혁명 본질을 이끌어간 주체는 독일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생산 라인을 없애버렸고 모두가 주체가 되는 새로운 생산 구조를 만들었다. 우리의 경우라면 경영자가 기술투자를 통해 자동화하고 노동자를 해고할 텐데, 독일의 경우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효율성을 이루고 해고가 아닌 변화를 만들어 간다. 그런 변화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려면 그들 사회가 가진 속성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 혁명 혁신위원장이 100시간 넘는 노동을 노동자 스스로 선택과 몰입으로 이야기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은 왜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에 집착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얼마 전 열린공감 TV 최동석 교수님의 독일 인더스트리 4.0에서 많은 중요한 개념을 소개했으며 이러한 근본적 관점의 차이는 독일이라는 사회의 철학과 깊이 연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동석 교수는 주체적인 객체로 분권화되고 네트워크화된 구조를 통한 효율화 개념을 통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내가 스스로 의문시했던 많은 부분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아 들어가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경험을 통해서 재정리해 보고자 했다. 자세한 내용은 최동석 교수님의 자세한 글은 브런치 링크(https://brunch.co.kr/@tschoe56/86)를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아이언맨 영화 속 상호반응 협력방식


독일의 4차 산업 혁명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자동화 시스템 스스로 조립되는 공정을 도입했다. 기존 생산공정에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부품을 조립하는 과정이었지만, 독일 노동자가 설계한 조립 공정은 컨베이어 벨트가 사라진채 부품들과 본체 모두가 주체가 되어 결합방식이라 할 수 있다.

독일 노동자들은 우리와 달리 수평적이고 분권화된 조직 구조를 생산공정에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부품이 수동적인 객체가 아닌 능동적 주체가 되어 조립하는 공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고 이를 관장하는 가상 조립 소프트웨어는 이들 조직의 분권화하여 소통하는 철학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 아이언맨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속 아이언맨과 슈트는 수동적인 조립이 아니라 부품 스스로 주체가 되어 동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아이언맨에서 슈트는 인공지능기반 인터페이스인 자비스로서 조절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 자비스와 아이언맨은 수직적인 소통이 아닌 친구 같은 소통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언맨과 슈트가 자율적 결합하는 방식.


아이언맨 인공지능 시스템 JAVIS와 소통을 통해 제어하는 방식


영화 속처럼 자율적인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은 인간과 협력관계를 통해 작동한다.

이처럼 인간과 협력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수직적 명령 구조가 아닌 상호 반응하는 수평적인 구조로서 능동적 방식으로 인간을 지원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우리가 명령을 전달해야만 작동하는 인공지능 스피커 방식은 앞으로 많은 기술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정보통신 네트워크로 이해하는 분산 구조  


1994년 미국의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한국 김대중 정부 시절 초고속 국가망 건설시점은 정보통신 기술 발전과 변화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는 여러 방식의 정보 통신 시스템의 제안되고 시험 적용되었으며 우리는 여러 시스템을 효율적인 연결을 통해 정부 및 기업 대상 안정적인 초고속 망을 구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초고속 국가망 사업 초창기를 경험하면서 갑자기 수많은 데이터 교환기를 시험하고 테스트하고 연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당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초고속 국가망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교환기 방식과 라우터를 활용한 방식이 경합을 하던 시기였다.

노텔 DPN 교환기  / Cisco Router   모두 초고속 네트워크 기술로 경합하던 방식들이다,



그 당시 재미 한국인 과학자 김종훈 씨가 개발한 ATM (asynchronous transfer mode) 기술이 주목되었는데 이를 그가 딸 이름 회사인 유리 시스템을 통해서 최초 생산했고 이후 루슨트테크놀로지, 삼성, LG를 통해서도 생산되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새로운 초고속 통신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런 측면에서 ATM 방식 초고속 국가망을 구현하려던 그 시점을 되돌아 생각해 보면 기술 애국주의 측면도 작동했던 것 같다. 비록 우리의 정보통신 장비와 기술이 세계로 확산되지 못했지만 분명 그 시절 도전은 의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통신 시절 나의 경우 전국에 연결된 교환장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장비에 대해 연동을 위한 어댑터를 통해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관리 측면에서 수직적인 구조는 관리하기 좋은 구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에서 중간 어댑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생기고 전체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했다.

연결이라는 형태를 하나하나 품질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효율적인 것 같지만 문제는 매우 경직된 시스템으로 장애처리 역시 경직된 측면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논문을 통해 장애 탐지 및 처리하는 방법을 정리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무 쓸모없는 기술이 되고 말았다. 구조적으로 수직적인 관리 구조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교환기 방식과 라우터 방식


기본적 인터넷 기술은 어느 곳이 파괴되어도 다른 경로를 통해 정보가 소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의 기본 사상으로. 모든 노드, 구성원은 소통 프로토콜을 통해 자동으로 경로를 만들어가는 메쉬 구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오늘날 정보통신 환경은 ATM 기술이 아닌 TCP/IP 인터넷 기술로 통일되었다고 보면 된다. 교환기 방식의 경직성에 비해 각각의 노드가 라우팅이라는 능동적인 통신 구조가 강점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관리의 편의성 및 확정성이 편리한 이유로 TCP/IP 기반의 초고속망을 지원하는 시스코 및 쥬니퍼와 같은 장비 회사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누군가 수직적인 구조에서 통제하는 방식이 얼핏 보면 매우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술적 구조의 차이에서 보는 것처럼 수직적 구조가 아닌 분산된 네트워크 구조가 보다 효율적이었다.

따라서 분권화되고 네트워크화되며 각각의 객체가 능동적인 연결을 통해 협력하는 사회 시스템으로까지 확장될 때 기업 조직 또는 사회 전반에 이르는 효율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방향이 아닌 상호반응과 수평적 소통 방식이 수직적 소통 방식에 비해 효율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러 구조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시대 분권화 구조 전환을 위한 반성


한국사회 분권화 구조를 위하여는 인식구조 전환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인식구조가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형성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는 과거 일제 강점기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계급화 구조가 우리 사회에 왜곡된 인식의 근원이기도 하다.

과거 식민지 제국주의 시절 학교 시스템은 군대를 모델로 해서 만들었고 철저하게 계급화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일부 남아있는 저학년이 고학년에 대해 존칭을 쓰는 방식은 그 당시 형성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보면 10년 나이 차이는 친구가 되는 시대였던 것으로 유추해 본다면 일제강점기에 우리 사회 계급화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의식은 과거 조선시대부터 남아있는 뿌리 깊은 유교의식으로 포장되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고, 군사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군대문화 확산으로 모든 우리 사회 조직 구조는 수직적 상명하복 방식이 주된 의사결정방식이 되었다.



분권화를 가로막는 한국사회 계급의식


한국사회가 변화하는 중심에는 기술이 중요하지만, 사실상 기술자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기술자는 "쟁이"라는 표현으로 낮추어 부르기까지 했던 전통과 맥이 닿아있다.

과거 조선시대는 계급화된 구조로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을 통해 학자 계층, 농사짓는 농부, 생산하는 공, 물건 판매하는 상인으로 정의하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2022년 현재도 이러한 계급의식은 여전히 한국사회에 상층 계급으로 갈수록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재경부 등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돈줄을 쥐고 있기에 선출 권력의 정책에도 반기를 드는 등 그들의 엘리트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모피아로서 사실상 그들은 한국사회 자금을 움직이며 그들 사회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변화가 없는 공무원 조직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개념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가 아닌 것인가?

사실 노동자는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분야가 있을 뿐 우리는 노동을 통해 부가가치를 생산한다.

현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육체적 노동을 하는 노동자부터 사무실에서 기획하는 노동자, 마케팅 기획 및 사업관리자, 연구소의 개발자, 프로그래머 모두가 노동자이다. 그리고, 경영부문에서 법무검토 및 회사 홍보하는 부서 모두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경영 부서, 관리부서는 노동자가 아닌 경영인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팀장급 이상은 모두 경영인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경영관리 부서의 직원 혹은 심지어 사무관리직 직원들까지 마치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분류되다 보니 차별화된 계급의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화된 계급의식은 아시아적 정서를 기반을 둔 회사의 특징으로 일본에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사회 역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 회사와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우리는 점차적으로 과거 일본식 수직적 문화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행 중에 있고 어떤 면에서 한국사회는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과 경영 분권화된 협력 구조를 위해


그러나 본질적 독일의 생산라인을 바꾼 이들은 독일 노동자들이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독일의 노동자들은 수동적 존재가 아닌 능동적 존재로서 스스로 자동화를 가속화했다.

그렇다고 자동화를 이루고 난 그들이 해고된 것이 아닌 스스로 변화되어 다른 업무와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는 경영자들이 모든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구조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즉 변화가 일상이 되어야 하는 우리 시대에 분권화된 수평적 구조에서 나오는 혁신이 필요하고 그렇게 조직 변화가 요구된다.


자동화로 인한 효율화는 여유시간을 많이 만들었지만 조직개편과 함께 일하는 강도는 높아지게 되었고 그동안 만들어 놓았던 효율적 구조는 모두 무시되기도 한다.

한국사회 대부분 기업들의 경우 효율화를 시키는 주체로서 노동자가 여러 경험과 기술을 통해 업무 최적화를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조직에 전수되거나 남는 일이 매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험을 가진 노동자들의 의견이 조직을 변화시키는데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조직을 슬림화하는 역할을 경영자가 하지만 이들은 인건비 절감에 대해 생각하겠지만 이러한 경험을 간직한 노동자들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결국 노동과 경영이 수평적으로 분권화된 것이 아닌 수직적인 관계이기에 발생하는 참사라고 할 수 있다.


경영과 노동 역시 서로가 의존적으로 협력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즉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인식전환을 통해 노동과 경영이 마치 네트워크 내에서 역할을 가진 노드처럼 작동했다면 조금 다른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즉 경영 조차도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지원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역할로서 재정립되면, 노동자도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예를 들어 기술 혁신한 것을 경영에 반영하여 효율을 높이고 이로 인한 혜택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의사결정에 대한 관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라면 극단적인 파업을 하지 않을 것이고 경영자 역시 노동자와 소통 없이 조직을 바꾸어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대부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수직적 조직 구조는 과거 2차 산업에서 시작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평적 협력을 통한 창의성이 극대화되어야 하는 4차 산업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기업들은 과거의 관점을 벗어나서 모든 구성원(노동자, 경영진)이 수평적으로 협력하여 높은 시너지를 키우는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경영자는 상층, 노동자를 하층으로 계급화하는 구조가 아닌 서로 역할을 가지고 일을 하며 협력하는 존재로서 수평적 협력 구조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역시 과거처럼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역할을 하는 구조로서 열정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4차 산업 혁명을 통해 노동이 사라지는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사회는 노동이 사라지면 일자리가 없어져서 어떻게 하는가 걱정하지만 독일의 산업 4.0을 주창한 이들은 오히려 일자리가 사라지면 나타날 긍정적인 부분을 극대화하고 빈익빈 부익부를 해소하기 위해 부를 재배분하는 경제시스템 재설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회구조 재설계 과정에는 스스로 노동을 줄여온 노동자들이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 산업시대 가치인 힘든 노동이 사라지고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한 차원 높아진 시대로 진화하는 꿈을 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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