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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14. 2022

4월 14일 성진영의 하루

루머

며칠 사이 회사가 시끄러웠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회사가 시끄럽고 싶어서 시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시끄러워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리고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들 때문에 회사는 시끄러워졌다. 누군가의 연애사나 불륜 등의 끔찍한 사생활 루머는 아니었다. 그랬으면 사내 게시판도 난리 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누군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올려 시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다행히도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더욱 심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정치적인 루머였기 때문이었다. 

루머는 굉장히 단순했다. 어느 팀의 누군가가 이번에 승진 대상자인데 승진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사람보다 더 늦게 들어온 사람이 파격 승진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특정 부서가 회사 이사의 눈 밖에 나서 곧 없어진다는 이야기, 이번에 어떤 부장이 이사로 승진하는데 그 라인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팀장 자리에 오른다는 이야기 등 회사의 인사에 대한 루머였다. 어느 회사에나 있을 수 있는 사내 정치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문제는 이를 넘어서 회사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직원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워낙 이런 사내 정치에서 멀어져 있고 회사를 조용하게 다니자는 주의여서 상관이 없었지만 내 귀에도 회사의 누군가가 계속해서 불만을 이야기하고 회사에 이상한 소리를 퍼뜨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다른 직원에게도 루머를 들려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소문을 들려주는 이들은 매우 다양했다. 직책이 무엇이든, 몇 층에서 근무를 하든 상관하지 않고 곳곳에서 듣기도 싫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제 들은 말이 오늘 들으면 다르고 오늘 아침에 들은 말과 오늘 오후에 들은 말의 뉘앙스가 전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조용히 회사를 다니고 싶은 나조차도 알고 있을 정도라면 회사 전체가 이 루머를 알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는 회사의 경영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루머는 어느 순간 실체화되어있었다. 부서끼리의 악감정이 생겼는지 고성이 오가는 경우가 있었고 특정 직원을 대놓고 비판하는 임원도 있었다. 그리고 줄줄이 퇴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퇴사의 이유가 고작 이런 루머때문이겠냐만 이미 루머의 시작은 중요하지 않았고 감정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맞았다. 내 마음 역시 동요할 뻔했지만 그래도 나는 회사에서 버텨야 했기 때문에 귀를 막고 그냥 내가 하는 일만 열심히 하기로 했다. 

어느 날부터 특정 직원에 대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여태까지는 여러 인물이 등장했지만 며칠 전부터는 특정 인물의 이름만 나왔다. 그 인물은 언젠가부터 사내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른바 그가 사내 왕따의 피해자가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게 과중한 업무를 주거나 아예 업무를 주지 않거나 그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진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부서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 그를 아주 피 말려 죽이는 분위기를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 큰 성인들이, 그것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회사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 사람을 묻어가려는 분위기에 몹시 소름 끼쳤다. 

그가 비공식적인 왕따가 된 이후로 그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예전에 돌았던 사내의 정치적인 루머도 사라졌다. 정말 그를 제압했기 때문에 루머가 사라진 것일까? 그가 문제였던 것일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때, 사내의 이런저런 루머를 들려주는 직원이 나에게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나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는 내가 궁금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그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서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한 명을 지목했고 회사 임원들한테 그 직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라고 권고를 내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설마 회사 차원에서 그랬을 리가 라고 반박했지만 루머를 말하는 직원은 지금 회사가 생각보다 잔인하고 이전에도 몇 번 이런 식으로 정치적인 숙청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회사가 너무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직원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고 하고 내 일에 집중했다. 이런 문제에는 정말 멀어지고 싶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 대한 정이 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회사 사람들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바보 같은 회사는 빨리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처럼 조용히 다니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 적당히 들어오고 커리어 쌓기도 괜찮고 월급도 잘 들어오는 지금 회사만 한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굉장히 정치적인 회사지만 오히려 떨어져 있으면 괜찮다고 할까? 괜히 쓸데없는 소문을 들어서 기분만 찝찝해졌다. 영화 속에 나오는 지금 순간 이전의 기억을 지우는 기계가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루머는 못 들은 것으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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