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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15. 2022

4월 15일 조윤일의 하루

팀장 회의

팀장이 된 나는 오늘 처음으로 팀장 회의에 참석했다. 괜히 떨리는 날이었다.

얼마 전 이직한 회사에서 나는 팀장을 맡는 조건으로 채용되었다. 애초에 내가 채용 공고를 봤을 때는 그런 말이 없었고 나는 당연히 한 팀원으로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면접 때도 팀장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가 나에게 연봉협상 자리에서 팀장 자리를 제안한 것이 놀라웠다. 팀장이라고 했지만 고작 3명이 전부인 팀이었지만 나는 내가 팀장 자리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기엔 팀장이라는 자리는 나에게 큰 도전이자 기회로 보였다. 그래서 오퍼를 수락하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한 회사는 회의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곳이었다. 팀별로 매주 월요일 회의를 하게 되어있었고 매주 화요일에는 다른 팀별로 크로스 회의라는 것을 했다. 크로스 회의는 우리 팀과 전혀 상관없는 팀과도 회의를 하는 것으로 일종의 팀 간의 친밀감을 키우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회의는 점심 식사를 겸해서 이루어졌다. 다만 코로나로 인원 제한이 있을 때는 내부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수요일에는 각 팀의 팀장들이 회사의 이사에게 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른바 중간 점검이라 불리는 시간이었다. 일주일의 딱 중간인 시점에 이사가 각 팀별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체크하고 피드백을 주는 자리였다. 목요일에는 팀 별로 한 주간의 업무를 점검하는 회의를 강제로 해야 했다. 이 회의는 업무 체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번 주 업무가 잘 돌아가는지를 체크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팀장이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 회의는 굉장히 빠르게 끝나는 것이 특징이었고 팀장의 빠른 판단과 업무를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내가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목요일에는 대표와 이사진들이 회의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역시 대표가 이사진들과 이야기하며 업무를 체킹 하는 시간이었다. 이사진들은 전 날 팀장에게 보고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표에게 보고하고, 대표가 업무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대망의 금요일에는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과 팀장들이 회의를 하게 된다. 

이렇듯 새로 간 회사는 매일 정해진 회의가 있었고 그때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었다. 나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벌써부터 진이 다 빠져버렸다. 팀에 대한 파악을 아직 제대로 하지도 못 했는데 시간 날 때마다 불려 나가고 보고 할 것도 없는데 보고하며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 팀장 회의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한 주의 마무리인 오늘 굳이 팀장급 회의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제 이사에게 보고하며 이유를 물어봤더니 팀장 회의는 한 주간의 업무를 완전히 정리하고 다음 주에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월별, 혹은 분기별로 진행해야 하는 업무에 대한 대표의 지시가 있는 자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각 팀 별로 성과를 공유하기도 하기 때문에 금요일로 정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결론을 바탕으로 각 팀장은 월요일 팀 회의 때 업무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숨이 막히는 구조였다. 나는 그러면 연차를 보통 어떻게 쓰냐고 물었다. 금요일이다 보니 금요일에 연차를 쓰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써야 할 때도 있었을 테고. 그러자 이사의 대답은 이랬다. 만약 금요일 휴가를 가는 경우 목요일 업무 체크 때 보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를 받은 이사가 팀장 회의 때 발언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 때 나온 내용이 있으면 월요일 아침 일찍 대표나 이사가 불러서 중요한 이야기를 공유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통 금요일에 팀장급 이상이 휴가를 쓰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니 약간 소름이 돋았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다른 회사는 이런 거 안 해도 잘 돌아간다고.

팀장 회의에 들어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 주 내내 있었던 회의는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소개를 하는 정도에서 끝났기 때문에 업무 회의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팀장 회의는 실제 다른 팀들의 업무를 공유받고 대표와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나는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회의에 들어가면 팀장끼리 싸우지 않을까? 고성이 오가는 논쟁을 하지 않을까? 대표가 각 팀장들을 혼내는 자리이지 않을까? 나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회의는 생각보다 매우 평화로웠다. 나는 이번 주 모든 회의가 그랬듯이 나를 소개했고 팀장과 임원진, 그리고 대표는 박수를 치며 나를 환영해줬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자신들을 돌아가면서 소개했다. 실제 업무 보고를 들어가서도 특이사항은 없었다. 각 팀장이 이번 주의 업무 성과와 다음 주에 할 일들, 그리고 논의를 했으면 하는 일에 대해 공유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팀장은 공유되는 내용을 경청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팀장은 남이 무슨 말을 하던 관심도 없는지 자기 노트북만 보며 바쁘게 타이핑을 했다. 어떤 팀장은 팔짱을 끼고 상당히 거만한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누군가는 의문이 가는 것이 있는지 자기 앞에 놓인 종이에 무언가를 잔뜩 쓰고 있었다. 그리고 대표는 턱을 괴고 하는 이야기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업무 보고가 끝나면 대표는 하나하나 체크하며 필요한 내용들에 대해 피드백을 줬다. 토의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항상 끝에는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 의견을 확인했다. 나는 이제 업무를 파악하고 있는터라 좋은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대표는 나에게 발언 기회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새로 회의에 참석한 자의 특권이었을 뿐이었다. 모든 팀장들이 의견을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몇 명 사람들은 회의 내내 자기 팀 보고를 할 때 빼고는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표도 그에게 말할 기회를 특별히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관찰하고 나니 어떤 팀이 힘이 있고 어떤 팀이 힘이 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평등하게 주어진 기회 같지만 사람들의 집중도와 발언권에 대한 기회를 종합해보면 확실히 어떤 팀이 중요 부서로 인식되는 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커리어를 쌓아온 내 특유의 감각 덕분에 나는 이런 것을 빠르게 캐치할 수 있었다. 평화로운 회의지만 이 안에서 크고 작은 세력 싸움이 조금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팀장과 임원들의 보고가 끝나자 대표는 이야기를 잘 들었다며 앞으로의 회사 방향성과 지난 일주일 간 회사 차원에서 생긴 변화를 이야기해줬다. 어디를 만났는지, 어떤 아이템을 새로 기획하고 있는지, 다른 회사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주에는 특별히 대단한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발언이 다 끝나자 대표는 다시 나를 소개하며 나를 팀장에 세운 이유와 우리 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약간 부담이 되었다. 내가 오른 자리가 상당히 무겁게 느껴졌다. 

마침내 회의가 끝나자 대표는 나를 따로 불러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대표는 나에게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팀원들과 이야기는 했는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나는 비교적 정석적인 대답을 했고 대표가 아까 했던 말을 종합해서 대표가 좋아할 만한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다. 대표가 웃는 것을 보니 그래도 대답을 잘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회사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회의 및 대표와의 티타임을 끝나고 들어오니 어느새 5시가 넘었다. 아직 업무 파악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번 주는 회의로만 모든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짜증 나는 건 이 짓을 매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을 안 하고 있으면 티가 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 야근을 해서라도 업무 파악 및 다음 주 업무를 할 내용을 정리해야 했다. 정말 피곤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내 역량을 많이 키울 수 있는 곳 같다. 열심히 하자. 그러나 빈틈을 보이지 말자. 여기는 야생과도 같은 곳이다. 회사가 촘촘히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미움을 당하지 말자.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다음 주부터 진짜 전쟁 같은 일과가 시작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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