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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16. 2022

4월 16일 김호연의 하루

친구의 결혼식

이번 주 내내 야근을 해서 주말에는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의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장까지는 차로 1시간 이상은 이동해야 하는 곳이었고 결혼식도 12시에 바로 시작해야 했기에 늦장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는 어느새 부지런히 일어나 애들 밥을 챙기고 있었다. 핸드폰 게임을 하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을 보니 오늘도 평화롭지는 못 할 것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가급적 일찍 돌아오겠다고 했다. 아내는 곧 장모님이 오실 거니 빨리 나가고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는 거니 밥 먹고 커피도 마시라고 했다. 대신 올 때 맛있는 것 좀 사 오라고 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오늘 결혼하는 친구는 중학교 친구였다. 올해 우리의 나이가 42살이 되었으니 우리가 우정을 쌓은지도 27년 정도가 지났었다. 그동안 많은 결혼식을 갔지만 최근 몇 년간 내 친구들의 결혼식을 간 적은 없었다. 내 나이 또래에서 이제 결혼할 사람은 모두 결혼했고 그냥 미혼으로 남기로 한 친구들은 앞으로도 결혼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결혼하는 은성이도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친구 중 하나였다. 은성이는 내 중학교 친구이지만 대학교 친구이기도 해서 친구 모임을 하면 두 그룹에서 모두 만나게 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은성이는 어느 순간부터 비혼 선언을 했고 나중에 자신이 60살이 되면 잔치를 열 테니 그때 자신이 뿌린 축의금을 회수할 것이라고 말하던 친구였다. 

그러던 그가 작년 말에 드디어 인연을 만난 것이었다. 상대는 35살의 직장인으로 우연히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은성이는 내 회사 근처로 찾아와 결혼 소식을 알렸고 나는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해하는 은성의 표정을 보니 기뻤다.


식장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나는 축의금을 내기 위해 근처 ATN기에 먼저 들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중학교 시절 친구인 승현이를 만났다.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승현이에게 인사하는데 승현이 뒤에서 승현이의 딸이 나를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승현이의 딸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아주 어릴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5~6살 정도는 되어 보였다. 승현이는 나에게 다른 친구들은 먼저 왔다며 인사나 하러 가자고 했다. 나는 먼저 축의금을 뽑은 다음에 다시 친구들에게 인사하기로 했다. 

이제 축의금의 액수를 정할 차례였다. 은성이와 나는 분명 친하다면 친한 사이였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아니라 조금 고민이 되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나는 이제 나이도 들었고 어차피 친구 결혼식은 이게 마지막일 것 같아 내 결혼식 때 은성이가 준 돈에서 조금 더 챙겨서 15만 원을 축의금으로 준비했다. 그냥 '좋은 선물을 준비할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뽑은 축의금을 봉투에 넣고 신랑 측에 전달했다. 식권은 받지 않고 주차증만 확인하고 나는 정신없이 인사하고 있는 은성이에게로 갔다. 내가 온 것을 확인한 은성이가 내 손을 잡으며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은성이는 부모님께 나를 소개했다. 중학교 때 은성이네 집에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 은성이의 어머니를 뵌 적이 있어 나는 그 일을 언급하여 은성이의 부모님께 깍듯이 인사했다. 

뒤를 돌아보니 다른 친구들도 와있었다. 나는 두 그룹을 찾아야 했다. 중학교 친구와 대학교 친구. 나는 식장을 계속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점심을 먹고 가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애들 때문에 빨리 가야 하니 다음에 보자고만 했다. 이러고 또 만날 시간이 없겠지만. 결혼을 안 한다고 했던 친구의 결혼식이라 그럴까? 무언가 특별한 의미처럼 오늘 결혼식에 참여한 나와는 달리 다른 친구들은 그저 하나의 결혼식으로만 대하는 것 같았다. 

우리 친구들 중 가장 빨리 결혼한 친구는 25살에 장가를 갔다. 그때 친구들은 돈을 모아 신랑을 위해 좋은 선물을 사주고, 못 하는 노래를 몇 날 며칠을 연습해 축가로 불렀었다. 또 결혼하는 친구를 위해 프러포즈를 도와주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젊었고 열정이 넘쳤으며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이제 나이를 먹어 결혼식은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고 그저 축하해 주고 밥을 먹고 친구와 인사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아마 오늘의 결혼식도 그저 일 년에 몇 번씩 찾아오는 경조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12시가 되자 은성이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던 은성이가 멋진 옷과 함께 등장하자 나는 드디어 은성이가 결혼을 하는 것일 실감 났다. 은성이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곧이어 오늘 가장 아름다운 사람 중 하나인 은성이의 신부가 등장했다. 나는 그들을 축복하며 진심으로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던 은성이의 마음을 바꿀 정도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복이 앞으로 영원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이 있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은성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어느새 완전히 아저씨가 된 우리들은 삐죽 튀어나온 뱃살에 힘을 주며 최대한 키가 크고 날씬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은성이는 뒤를 돌아보며 친구들에게 “고마워!”라고 외쳤고 우리는 박수로 화답했다. 그리고 앞으로 은성이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피로연장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냥 집으로 가야 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밥을 먹기 불편해하는 친구도 있었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하는 친구도 많았다. 나는 아내에게 말을 해놨기 때문에 오랜만에 친구들과 밥이나 한 끼 먹으려고 했지만 아무도 밥을 먹는 사람이 없어 나 역시 그냥 바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바쁘게 서로를 찾아 악수하며 “다음에 연락해!”라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나 역시 자리를 빠져나왔다. 식장 근처에 괜찮은 빵집이 있는 것 같아 거기서 아내와 아이들을 먹일 빵을 몇 조각 샀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가기 전 은성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멋있었어 은성아! 결혼 진심으로 축하하고, 나중에 꼭 연락해! 행복해라”


나는 은성이에게 개인 톡을 보냈지만 몇몇 친구들은 단톡방에 축하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나고 괜히 축하 인사도 안 한 사람이 될까 민망해서 단톡방에도 똑같은 내용을 다시 보냈다. 단톡방이 2개였으니 2개 다 보냈다. 

내 나이 42살. 영원히 솔로일 것 같았던 은성이가 오늘 결혼했다. 이제 아마도 더 이상 결혼을 가는 친구는 없을 것이다. 내 친구의 대부분은 결혼을 했고 일부는 솔로의 삶을 선택했다. 결혼을 한 친구 중 2명은 다시 싱글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평범하게 결혼을 해 아내와 아이 2명과 함께 살고 있다. 10대 시절 함께  있던 친구들의 삶은 어느새 각자의 길로 가고 있고 앞으로 더욱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은성이도 결혼을 한 삶을 선택했지만 내가 사는 삶과는 또 다를 것이다. 그의 미래에 진심으로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잘 살아라, 은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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