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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18. 2022

4월 18일 박진오의 하루

산업안전보건교육

회사에서 또 안전보건교육을 받으라는 전체 공지가 내려졌다. 1분기 교육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한은 아직 조금 남아있었지만 회사에서는 가급적 빨리 받으라고 했다. 회사 일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 또 이걸 클릭하고 있으란 말인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안전보건교육을 받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봐도 봐도 나에게는 별 의미 없는 것 같은 교육을 또 받기 시작했다. 이 교육의 가장 짜증 나는 점은 영상이 짧게 짧게 올라와 있어서 매번 다음 영상으로 가게끔 클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영상이 너무 짧아서 정말 아주 조금만 있으면 다음 영상을 클릭해야 하는데 정작 내가 바쁘거나 까먹어서 다음 버튼을 클릭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들어야 할 분량은 있고 분명 하루 만에 다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일을 하다 보면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해서 분량을 다 못 채우고 내일 또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 넘게 가는 경우도 있었다. 

분명 지난 분기에도 같은 것을 반복했는데 오늘 또 그 짓을 해야 했다. 아니 이거 제대로 듣는 사람이 있기나 하는 건가. 의도는 좋겠지만 이렇게 반복해서 얻는 것이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또 나를 부른다. 급히 이야기할 것이 있고 하네. 하아.. 오늘도 또 다 못 듣게 생겼다. 


월요일 오전이라 미팅이 길어졌다. 나의 클릭을 기다리고 있는 화면이 보였다. 나는 다음을 클릭하고 다시 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계속해서 화면을 체크하면서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영상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을 클릭할 수 있었다. 좋아. 이 속도라면 오늘 안에 잘 끝낼 수 있을 거야. 그때! 이번에는 점심시간이라고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래, 좋아. 밥은 먹어야지.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팀장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일을 시켰다. 나는 최대한 맡은 일을 빨리 끝내려고 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무언가 잊은 것 같았다. 아 맞다. 안전교육! 놀랍게도 나는 이를 클릭해야 하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그래서 영상을 찾아서 다음을 클릭하려고 보니 영상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금 열어둔 인터넷 화면 중에 안전보건교육 사이트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망할. 아까 컴퓨터가 갑자기 먹통이 되어서 재부팅을 했었지. 그때 아예 까먹고 사이트에 다시 접속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다시 사이트에 접속하니 너무 당연하게도 로그인 화면도 풀려있었다. 결국 나는 사이트에서 교육 영상을 찾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놓치지 말고 끝내야지.


오후에도 나를 방해하는 일은 많았지만 나는 내가 교육을 오늘 받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무한 클릭을 하며 교육을 어떻게든 오늘 끝내려고 노력했다. 어느 정도 영상을 보니 말도 안 되는 퀴즈가 나오기 시작했다. 똑같은 교육을 몇 년째 받고 있지만 이 답은 항상 까먹는다. 초성 퀴즈였는데 하도 말도 안 되는 단어를 물어보는 것이라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내가 틀린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 빠르게 오답을 입력하면 된다. 그러면 정답 화면이 나오고 다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오후 7시. 드디어 교육 영상을 모두 보는 데 성공했다. 회사에는 교육 수료증을 제출하면 됐는데 다행히도 이 교육은 80%만 강의를 보면 시험을 볼 수 있고 시험 합격 커트라인을 넘으면 수료증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교육을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오늘도 80%를 수료한 나는 바로 시험에 응시했다. 이 시험은 사실 말이 되는 것을 고르면 거의 다 정답이었다. 그래도 커트라인을 못 넘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인터넷에서 정답을 검색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각종 블로그에는 정답을 올려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 정답을 보면서 답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고 양심에 찔리는 짓이었지만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블로그에 정답이 올라와 있는 거겠지.


수료증을 받은 나는 담당 부서에 메일로 수료증을 제출했다. 오늘 내가 원래 해야 하는 일도 마치지 못했는데 이 안전교육은 오늘 다 끝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퇴근할 수가 없었다. 오늘 할 일은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1시간 정도만 야근하면 어느 정도 끝낼 수 있어 크게 부담은 가지 않았다. 안전교육을 오늘 끝내서 기분은 좋았다. 이 짓은 앞으로 2~3달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핸드폰을 가져와 어떤 메시지가 왔는지 확인했다. 친구들의 카톡 메시지, 카드값 관련 문자 등 다양한 메시지가 있었는데 한 메시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난 힘이 빠졌다. 


이런..


바로 민방위 사이버 교육 알림 톡이었다. 이것도 인터넷으로 들어야 한다.

하아.. 정말… 주말에 틀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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