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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19. 2022

4월 19일 송준수의 하루

저녁 식사 

“준수 씨, 이따 끝나고 저녁이나 먹을까?”


퇴근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은 신과장이 나에게 저녁을 권유했다. 결국 또 이런 날이 다시 돌아왔구나. 코로나 시국에는 회식은커녕 퇴근 후 회사 사람들끼리 밥을 먹는 것도 금지되는 분위기였지만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회식이니 저녁이니 술 약속이니 하는 것들을 돌아다니면서 만드는 이들이 있었다. 신과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요즘답지 않게 죽어라 술을 먹이던 부류의 사림이었다. 문제는 신과장만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김부장도 유차장도 곽대리도 모두 술자리를 좋아했다. 내가 있는 부서에서 술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다른 팀 술 먹는 자리에도 합석해서 술을 진탕 마셔댔다. 회사에 술 먹으려고 다니는 사람들 같았다. 물론 매일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었다. 왜 이리 집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지 야근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았고 야근까지는 안 해도 저녁 먹을 사람을 모아서 저녁을 먹고 늦게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이 회사 오고 나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었고 가장 그만두고 싶은 이유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는 정말 다니기 좋은 곳이 되었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보기 싫은 사람들 얼굴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회식과 저녁 식사가 금지되어 있어서 빨리 퇴근할 수 있었다. 물론 한 두 사람 정도 모여서 자기들끼리 술자리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회사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 사람들끼리의 자리였다. 집 방향 자체가 아예 다른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고 내가 술을 못 마시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래서 회사에서 쓸데없는 회식 문화가 앞으로도 없기를 바랐다. 


신과장은 돌아온 일상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거리두기가 없어지자마자 회사 메신저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이제 회식을 해야 될 때라며 약속을 잡으려 하였다. 그리고 회사에서 저녁 회식 금지령을 풀었다는 공지가 나오자 환호했다. 결국 굉장히 빠르게 회식을 할 시간과 장소가 정해졌고 내일인 수요일에 우리 부서는 바로 회식을 하기로 했다. 다른 부서들은 아직 눈치 보고 있었지만 우리 부서는 거침이 없었다. 그만큼 회사에서 실적도 잘 나오는 부서이고 김부장이 회사의 실세 라인을 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여기 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나 빼고 말이다.


이런 상황인데 신과장은 오늘 저녁을 먹을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어 했지만 사실 신과장은 어제부터 나보고 저녁을 먹자고 했기 때문에 오늘도 거절하면 내일 난리 칠 것이고 회식 자리에서 진상을 부릴 것이 뻔했다. 결국 나는 마지못해 신과장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기 때문에 가볍게 먹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너무 오랜만에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는 거라 나는 신과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잠시 잊고 있었다. 가볍게 저녁을 먹는 일은 절대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나와 신과장, 곽대리, 옆팀 박과장, 경리팀 전실장, 올해 초에 입사한 인턴 혜민 씨까지…. 정말 다양한 부서와 직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 동안 주식으로 돈을 좀 만지셨다는 신과장은 항상 자기가 밥을 사겠다고 했는데 오늘에야 드디어 살 수 있게 되었다며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신과장님… 내일도 고기가 회식 메뉴라면서요….

신과장은 회사 근처에서 꽤 유명한 삼겹살 집으로 데려갔다. 신과장은 자신이 1차는 쏠 테니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아니, 잠깐만요. 1차라뇨? 이 말을 하자마자 박과장은 자신이 근처에 좋은 와인바를 알고 있으니 거기 술 정도는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그러자 전실장은 자신이 2차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신과장은 웃으면서 곽대리, 혜민 씨, 그리고 나에게  ‘오늘 너희들은 돈 안 내도 좋으니 좋지?’라고 말했다. 하아.. 이 아저씨들 뭐라는 거야. 오늘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다.


고기는 제법 맛있었지만 편하게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고기를 구웠다. 전실장, 신과장, 박과장, 곽대리, 그리고 혜민 씨에게 구운 고기를 올리는 역할을 했다. 혜민 씨가 나에게 자신이 굽겠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며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 편이 더 편했다. 그리고 술을 덜 마실 수 있었고. 내가 신나게 고기를 굽고 있으면 신과장은 자기들끼리 잔에 술을 채우며 건배를 외쳤다. 고기는 아직 7인분 밖에 안 시켰는데 술 병은 이미 4병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더 빨리 고기를 구우려고 했다. 그래야 이 양반들이 술에 취해서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기를 다 구워갔지만 이 양반들은 끊임없이 술을 시키고 있었다. 고기가 2점 남았는데도 소주를 1병 시키고 있으니 안주가 모자랐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천천히 술을 마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다. 그에 비해 곽대리와 혜민 씨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주를 물처럼 마시고 있었다. 곽대리는 그렇다 쳐도 혜민 씨….. 회사에 어울리는 인재가 또 들어왔군요.


9시 30분이 되어서야 우리는 고기집을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신과장에게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했다. 신과장은 웃으면서 손짓을 하며 2차 장소로 이동하자고 했다. 우리는 비틀거리며 아직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로 향했다. 그때, 그들에게는 불행, 나에게는 행운이 하나 벌어졌는데 바로 어딜 가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거리두기가 풀리자마자 튀어나온 건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었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았다. 마치 불금을 보내는 직장인들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고작 화요일일 뿐이라고. 

나와 혜민 씨는 계속 뛰어다니면서 어디 빈 곳이 있는지 찾아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술을 마실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2차를 갈 곳이 없다는 슬픈 소식을 신과장 무리에게 전했다. 신과장 무리는 너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제 집에 갑시다. 여러분.

그때, 전실장이 어디 전화를 하더니 화색이 돌면서 신과장에게 말했다. 자기가 아는 호프집이 있는데 자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 제발요. 내 굳은 표정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신난 표정을 지으며 전실장이 안내하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전실장이 안내한 굉장히 누추한 분위기의 호프집이었지만 주인아주머니의 자부심이 묻어있는 듯한 곳이었다. 그만큼 안주의 퀄리티가 가격에 비해 괜찮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머니의 요리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른안주를 시켰다. 이미 배가 부르다는 이유였다. 대신 술은 엄청 시켰다. 이 양반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오늘이 무조건 금요일 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20대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안 마셨어요.


11시 30분 정도가 되자 겨우 자리를 파했다. 이제 어떻게 집에 가냐가 문제였다. 곽대리는 막차 시간이 되었다며 뛰어갔고 혜민 씨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며 남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사람들은 먼저 술에 진탕 취한 전실장을 택시에 태우고 보냈다. 그다음에는 박과장을 집에 보냈다. 어느새 남은 것은 신과장과 나였다. 신과장은 회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걸어가기로 했다. 아마 이 인간은 술 많이 마시려고 회사 근처에서 사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신과장에게 오늘 저녁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데 정신이 혼미해졌다. 심장 박동은 너무나 빨랐고 머리는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잠은 미친 듯이 쏟아졌지만 잠을 자지 않으려고 겨우 겨우 버텼다. 택시 기사님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나에게는 이제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나자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씻을 힘도 없었다.

망할…. 내일 또 회식이라고? 이제 내가 정말 싫어하던 회사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거리두기가 없어져서 좋은 것도 있지만 나에게는 일상의 회복이 아니라 지옥으로의 복귀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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