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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1. 2022

4월 21일 박용재의 하루

지각 vs 오전 반차

오늘의 꿈은 지나치게 기분이 좋았다. 즐거운 일만 가득한 꿈이었고 길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자각몽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내가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잠에서 깼다.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뛸 정도로 급하게 일어났다. 지금 시간이 몇 시지? 나는 머리맡에 둔 핸드폰에서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9시 23분…. 제대로 망했다. 우리 회사는 10시까지 출근이다. 회사에서 집까지 거리가 가까운 것이 유일한 장점이지만 지금 바로 나간다고 해도 10시까지 도착은 절대 무리였다. 정말 빨리 준비하면 10시 정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간단하게 얼굴만 씻고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감았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 그리고 바로 머리를 말렸다. 얼마 전 이발을 해서 머리가 짧았기 때문에 말리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어나서 지금까지 단지 6분이 지났다. 나는 옷장에 있는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여기까지 8분. 지금 나가면 10시 5분 정도에는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각을 할 경우 잔소리를 조금 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호기롭게 나가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배가 아팠다. 정말 미칠 듯이 배가 아팠다. 나는 바로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하면서 시간을 체크했다. 이제 10시 10분 안에 도착하는 것도 불가능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 회사는 조금 융통성이 있는 회사였지만 근태 관리에 있어서는 엄격했다. 5분 이상만 지각해도 혼나야 했고 경위서를 써야 했다. 다만 5분 이내라면 어느 정도 넘어가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 5분의 데드라인마저 넘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하는 데는 도보와 버스를 이용하면 보통 35분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여기서 5분 정도의 여유 시간을 더 계산하는 것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9시 10분 정도에 집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면 딱 알맞게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 시간이 9시 35분이니 평소의 방법으로는 지각이 확정이었다. 게다가 배가 아픈 것이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아마 5분 이상은 더 화장실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결국 나는 지각 확정이다. 나는 핸드폰에서 오늘 내 스케줄을 훑어봤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오늘은 급한 일이 없었다. 이제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지각을 하고 혼나거나 아니면 아예 오전 일과를 연차로 대체하거나.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정말 다행인 것은 여기는 근태에는 빡빡하게 구는데 비해 당일 휴가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물론 휴가 하루 전까지는 휴가계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당일 집에 일이 생겨서 휴가를 쓰는 사람도 많았다. 아마 회사는 이렇게 해서라도 연차를 빠르게 촉진하게 하는 것이 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회사는 연말이 되면 연차 빨리 다 쓰라고 공지를 내리는 곳이었다. 

여하튼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론은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당일 휴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고민되는 것이 있었다. 당일 휴가라면 반차를 쓸 것인가, 아니면 하루를 그대로 쓸 것인가?

오전 반차를 쓰면 지각을 면하고 오전에 조금 여유롭게 쉬면서 출근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하루를 통으로 쓰면 갑자기 생긴 여유를 더욱 즐길 수 있었다. 문제는 오전 반차를 쓰면 아마 높은 확률로 야근을 해서 밀린 업무를 해야 할 수도 있고 하루 연차를 쓰면 나중에 필요할 때 연차가 모자랄 수도 있었다.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시간은 9시 40분이 되었다.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나는 부서장에게 전화해서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오전 반차를 쓰겠다고 했다. 부서장은 오후에 출근해서 휴가계 잘 써서 내라고 말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는 지금 내 일이 중요한 것 같지가 않았다. 

오전 반차만 쓴 이유는 아무래도 휴가를 통으로 날리기는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볼일을 다 본 나는 손을 씻고 나와 창 밖을 바라봤다. 아까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은 이제 옛 기억이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만 일찍 일어났어도 괜히 휴가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는 후회가 조금 밀려왔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는 오늘 조금 더 쉬면서 오후 일과와 내일 찾아올 불금을 기다리면 되었다. 

나는 올해 나에게 남은 연차가 얼마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 연차를 언제 언제 쓸지 계산했다. 아직은 연초나 다름없어서 연차가 많이 남아있었다. 오늘 그리 손해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래 잘 되었다. 오늘은 침대에 누워서 좀 쉬고 근처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출근해야겠다. 나는 갑자기 아까 꿈에서처럼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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