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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3. 2022

4월 23일 김진호 가족과 정승아 가족의 하루

상견례

진호와 승아는 작년에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만났다. 닮은 점이 많았던 둘은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사랑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결혼 적령기였던 둘은 만남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작년 겨울 진호가 승아에게 프러포즈를 하며 둘은 결혼을 약속하였다. 올해 초에는 각자의 부모님을 만나 서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진호와 승아의 부모님은 예비 사위, 예비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 했다. 진호와 승아는 내년 초 결혼 날짜를 잡고 바쁘게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둘이 연애를 한 지 1년 하고도 일주일이 지난날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결혼을 약속한 진호와 승아 부모님끼리 만나는 상견례 자리였다. 각자의 부모님은 모든 결혼 준비는 진호와 승아의 뜻대로 하게 했지만 상견례 자리에 있어서는 서로 예민하게 굴었다. 그래서 진호와 승아는 지금의 날짜와 장소를 잡는 것도 애를 먹었다. 물밑 협상 끝에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진호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장소가 정해졌다. 

진호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을 모시고 상견례 장소로 향했다. 진호네는 약속보다 20분 먼저 식당에 도착하였다. 너무 빨리 와서 약간 난감해하는 진호에게 진호의 아버지는 잠시 다른 데를 들렀다 가자고 했다. 진호는 아버지에게 두고 온 것이 있냐고 물어보며 차를 돌렸다. 그러자 진호의 아버지는 상견례 장소에 신부 측보다 늦게 도착해야 하는데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라 잠시 배회하자고 했다. 평소답지 않게 한껏 멋 부린 진호의 어머니도 이에 동의했다. 진호는 어이없었다. 일찍 도착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아버지께 항의했지만 진호의 아버지는 잔말 말고 주위 좀 돌다가 들어가라고 했다. 진호은 부모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편 승아는 부모님과 따로 오고 있었다. 승아는 상견례를 위해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수수하면서도 예뻐 보이는 스타일로 메이크업을 했다. 승아는 혹시나 늦을까 봐 일찍 메이크업을 받고 식당으로 향했다. 따로 차가 없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혹시 부모님이 늦지 않을까 걱정한 승아는 계속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며 위치를 확인했다. 승아와 부모님은 약속 시간 10분 전에 식당에 도착했다. 늦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 승아는 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진호와 승아가 예약한 식당은 한식당이었다. 워낙 상견례를 많이 하는 곳이라 토요일 점심 식당에는 진호와 승아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커플들과 노년의 부모님들이 많이 보였다. 룸으로 안내받은 승아가 자리 배치를 고민하고 있는데 승아의 부모님은 방을 훑어보더니 벽이 있는 방이니 문에서 가까운 곳에 승아가 앉아야 한다고 했다. 자리를 잡은 승아네는 진호네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 5분 전인데도 진호가 보이지 않자 승아는 진호에게 전화했다. 

승아의 전화를 받은 진호는 곧 도착하니 금방 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진호는 마음이 급해졌다. 괜히 부모님의 고집 때문에 예비 장모님, 장인어른을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했다. 식당에 들어온 진호는 빨리 가고 싶었지만 진호의 부모님은 느긋하기만 했다. 진호의 아버지는 아직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고 진호는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기만 했다.

마침내 그들은 룸에 도착했다. 진호의 아버지는 자신이 진호의 아비 되는 사람이라며 승아의 부모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여기 오는데 좀 헷갈려서 살짝 늦었다며 기다리게 해 드린 것 아니냐고 승아의 부모님에게 물었다. 승아의 부모님은 손사래를 치며 자신들도 방금 왔기 때문에 안 기다렸다고 했다. 진호와 승아의 어머니는 서로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 자체로는 화기애애했지만 어딘가 모르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호와 승아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았지만 서로 간의 대화는 없었다.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진호는 이 침묵을 깨야겠다고 생각하고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은 메뉴판을 진호에게 넘겼고 진호는 어른들에게 어떤 것을 드시겠냐고 물었다. 승아의 부모님은 진호의 부모님이 고르시는 것을 먹겠다고 했고 진호의 아버지는 메뉴판을 슬쩍 보더니 적당한 가격의 코스를 골랐다. 진호는 메뉴를 시키기 전 승아의 부모님에게 혹시 못 드시는 음식이 있는지를 물었고 승아의 부모님은 다 잘 먹으니 이제 시키자고 말했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종업원을 불러 메뉴를 시켰다. 

잠시 대화가 오가는 듯했지만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진호와 승아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각자의 부모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호의 어머니는 물만 계속 마시고 있었고 아버지는 예비 사돈댁을 슬쩍 관찰하고 있었다. 진호는 혹시 부모님이 상대방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승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침묵을 깬 것은 진호의 아버지였다. 

진호의 아버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말솜씨가 좋지 못해 얘기를 잘 못했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진호가 알기에 자신의 아버지만큼 수다스럽게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은 없었다. 진호의 아버지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승아가 예쁜 게 승아의 어머님이 아름다우셔서 그랬군요 하하하”라는 뻔한 멘트를 날렸다. 승아의 어머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이에 화답했고 이후부터는 각자 이야기를 했다. 진호와 승아는 이제야 긴장감이 조금 해소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긴장의 끈까지 놓을 수는 없었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부모님이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대화를 나누던 중 진호의 아버지가와 승아의 아버지는 서로 아는 사람이 겹치는 것을 알고 반가워하며 그 이야기를 한참 이어갔다. 동갑이었던 진호의 아버지와 승아의 아버지는 이로 인해 조금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진호와 승아는 아버지끼리 그래도 사이가 괜찮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서로의 어머니는 몇 마디 덕담 외에는 별다른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두 아저씨들이 워낙 시끄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가 중간 정도 지나갔을 때쯤에야 아버지들의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어머니들의 차례였다. 각자의 아들과 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고 진호의 승아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민망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진호와 승아의 얼굴을 빨개졌다. 왜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인지 각자의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가뜩이나 밥도 잘 안 넘어가는데 이젠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둘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미소를 짓는 것뿐이었다. 

진호는 부모님들이 밥 먹는 것을 계속 관찰하며 혹시 모자란 것이 있으면 계속해서 종업원을 불러 채우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본 승아의 아버지는 예비 사위가 센스가 좋다고 칭찬했다. 아들이 인정받는 모습을 본 진호의 아버지는 이번엔 예비 며느리를 칭찬하며 화답했다. 분위기는 점점 화기애애해졌고 진호와 승아는 두 가족이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는 좋았으나 빨리 이 자리가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첫 만남이니만큼 두 가족 사이에서 결혼식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자잘한 것은 잘 준비하고 있으니 부모님들은 큰 것만 잘 챙기자고 진호의 아버지가 말했다. 승아의 아버지는 자신도 아들을 먼저 장가보내봐서 진호의 아버지가 하시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식사 자리가 끝나가자 진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계산대로 가서 종업원에게 카드를 내밀며 계산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진호는 승아에게 카톡을 보내 계산을 마쳤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승아는 예비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진호의 메시지를 볼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온 진호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내며 승아의 부모님에게 드렸다. 이에 승아도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진호의 부모님에게 드렸다. 서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치고 승아의 부모님은 오늘 잘 먹었다며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진호는 이미 자신이 계산했으니 아버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고 승아의 아버지는 진호를 흡족해하며 칭찬했다. 그런 모습을 본 진호의 부모님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호와 승아의 부모님은 악수를 하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진호와 승아의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서로 이야기가 잘 끝난 것 같았다. 승아의 부모님은 진호네가 먼저 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진호는 예비 장인, 장모에게 깍듯이 인사 후 승아에게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차를 타고 부모님을 다시 댁으로 모셔드리러 갔다. 


각자 돌아가는 길. 


진호의 아버지는 승아의 부모님 인상이 좋으시다며 앞으로 잘해드리라고 진호에게 말했다. 진호는 아까 상견례장으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도착하는 시간 가지고 자존심 싸움하던 그 아버지가 맞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진호의 아버지는 승아의 아버지와 공통으로 아는 분이랑 자신이 내일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더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하겠다고 했다. 진호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승아의 부모님도 진호와 진호의 부모님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승아의 어머니는 진호의 아버지가 보통 분은 아니시니 눈치껏 잘 행동하고 해달라고 하는 것 있으면 가급적 잘 해 드리라고 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승아의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승아의 아버지는 진호의 아버지가 괜찮은 분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딸에게 말했다. 조용히 운전하던 승아는 갑자기 다시 불안해졌다. 


집에 도착한 승아는 그제야 진호가 자신에게 보냈던 카톡 메시지를 읽었다. 승아는 진호에게 전화해서 오늘 고생했다고 했다. 원래 둘은 저녁에도 같이 보려고 했지만 승아는 이미 지쳐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힘이 없으니 내일 보자고 진호에게 말했다. 진호 역시 승아의 의견에 동의했다. 진호는 그래도 한고비는 넘겼다며 승아에게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했다. 승아는 이제 졸려서 자야겠다며 내일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아마 두 사람에게는 결혼 준비 중 가장 큰 위기이자 가장 긴장되는 하루였을 것이다. 다만 결혼식장으로 가기까지 아직도 많은 과정과 위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둘은 아직 실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둘은 그저 오늘의 큰 사건이 무사히 지나갔음에 안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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