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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4. 2022

4월 24일 홍미진의 하루

생각없이 걷고 싶은 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오늘이 그랬다. 나는 오늘 그냥 걷고 싶었다.

특별히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안 힘든 적이 없었다. 집안일 있던 것도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사이는 여전히 좋았고 큰 트러블도 없었다. 다만 크고 작은 것들로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지금 당장 고민해야 할 것은 없었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그런 날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쉬는 것도 생각했지만 요새 카페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었다. 사람들의 목소리, 커피 머신 내리는 소리 등 소음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집 정리를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보였다. 아마 내 성격에 집 청소만 하는데 소중한 주말을 다 보낼 것 같았다. 물론 그것도 아무 생각 없이 집안만 치울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정처 없이 걷기였다. 정말 아무런 목적 없이 걷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얼마 동안 걸을지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걷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때마침 날씨도 너무 좋았다. 

간단하게 나갈 준비를 마쳤다. 핸드폰은 100% 배터리 상태로 충전을 마쳤다. 블루투스 이어폰도 100% 충전 상태로 만들었다. 지갑은 귀찮지만 혹시 가다가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 우선 챙겼다. 걷기 편한 옷을 입었다. 그 외에는 챙길 것이 없었다. 이제 나가면 그만이었다.

집 밖으로 나오자 바로 첫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나는 내 방향에서 서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 방향으로 꽤 걷다 보면 산책하기 괜찮은 저수지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걷기에 좋은 날씨였지만 걷기에 좋은 공기 상태는 아니었다. 도시에 살다 보니 매연에는 익숙했지만 그래도 공기가 더 좋은 곳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도시이다 보니 조금만 걷다 보면 횡단보도를 만나기 일수였다. 거리가 좁은 곳이 많아 사람들을 지나쳐야 하는 곳도 많았다. 매연 냄새뿐 아니라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를 다녀야 할 때도 많았다. 또한 마스크를 쓰고 걷다 보니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날씨는 좋았으나 걷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걸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버스로 몇 정거장 가야 하는 길이 있으면 그냥 걸어 다녔다. 시간은 훨씬 더 많이 써야 했지만 그 편이 더 좋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집에서 걸어 다니느라 남들보다 더 일찍 출발해야 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자취를 할 때 일부러 학교에서 살짝 떨어진 곳을 잡아서 걸어서 등교를 하곤 했다. 물론 늦잠을 잤을 때는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얻지 않은 내가 너무 후회되었다. 

걸을 때는 항상 음악을 들었다. 마치 게임에서 BGM이 흐르는 것처럼 나의 여정에도 음악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랐다. 가끔 소리를 너무 키워서 걷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어 이후에는 외부 소음이 들릴 수 있게 적당한 음량으로 음악을 듣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걸을 때마다 이어폰을 꼽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걷는 것이 귀찮아졌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는 시점이 있었다. 걷는 것이 예전만큼 좋지 않았고 그런 시간을 아껴서 대중교통이나 차로 이동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조금만 먼 거리가 되면 택시를 타는 것이 좋았고 어떻게든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려고 했다. 이제는 예전만큼 걷지 않고 있다.


오랜만에 걸으니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갈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핸드폰에서 지도를 검색해 걷는 경로를 살펴봤다. 이 앞에는 터널이 있어서 돌아서 가야 했다. 이대로 가면 다시 그만큼 걸어서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걷기로 했다. 이대로 집에 가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걸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을 멈췄다. 그저 파란 불이면 신호등을 건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가야 하는 길로 가지 않았다. 그저 앞에 놓인 길이 있으면 그곳으로 걸었다. 주변의 풍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매력 없는 간판이 즐비한 동네를 걸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귀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음악을 계속 듣다 보니 귀가 아파졌다. 나는 잠시 귀에게 휴식 시간을 주기로 했다. 핸드폰을 보니 내가 나온 지 어느새 2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내 위치를 살펴봤다. 어느새 저수지 근처에 도착해있었다. 저수지는 한적함 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좋은 날씨 탓인지 수많은 사람들과 커플이 저수지 산책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목이 말라 나는 잠시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나는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밖을 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싶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쳐다보고 있었다.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수지에서 방향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집에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탄천이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2시간 남짓을 걸었다. 이렇게 하면 도합 4시간을 걷는 것이 되었지만 나는 오늘 하루 종일 걷기로 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렇게 2시간을 다시 걷자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수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잠시 앉을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늘과 땅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 멍 때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1시간 남짓 앉아서 휴식을 취한 나는 이제 일어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집까지는 다시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합쳐서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걷는 것이 되었다. 오늘은 정말 원 없이 걷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막상 이렇게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땀이 꽤 났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더 날이 더워지면 이렇게 걸을 수는 없겠지만 가끔 날씨가 적당히 좋을 때마다 이렇게 나와서 어느 정도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시 걷는 것을 취미로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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