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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6. 2022

4월 26일 정병진의 하루

어릴 적 살던 동네

병진은 미팅을 마치고 바로 직퇴를 하기로 했다. 미팅 때문에 힘들었던 병진은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오늘 병진이 미팅을 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병진이 어릴 적부터 20대 중반까지 살던 동네가 있었다. 그래서 병진에게 특별한 곳이었다. 곳곳에 병진의 추억이 없는 곳이 없는 동네였다. 병진은 버스를 타고 예전에 살던 동네로 이동했다.

병진이 살던 동네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저녁 먹을 곳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병진은 추억을 더듬으며 어떤 밥집을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릴 적 자주 가던 떡볶이집이 생각났다. 병진의 어머니가 자주 사주셨고 친구들과 학교 끝나고 신나게 수다를 떨던 그러한 곳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병진의 이름을 알았다. 돈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외상으로 떡볶이를 먹기도 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병진은 어머니에게 혼나기도 했다. 이런저런 추억이 넘치던 곳이었다.

병진은 낡은 상가로 들어갔다. 상자의 가게 주인들은 병진이 알던 얼굴들이었다. 어린 시절 힘도 세 보이고 크게만 보이던 사람들이었지만 이젠 다들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그래도 병진은 그들이 반가웠다. 

그러던 중 병진은 낯익은 사람 한 명을 보게 되었다. 문구점에서 아이 한 명의 손을 잡고 장난감을 같이 고르고 있던 남자였다. 그는 병진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였다. 병진은 반가워 친구에게 인사를 했고 친구는 병진을 처음에는 못 알아보던 눈치였다가 이름을 듣고 나서야 병진을 알아봤다. 친구는 옆에 있던 아들에게 아빠의 친구라며 병진에게 인사를 시켰다. 병진은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병진은 친구에게 이 동네에 아직 살고 있는지를 물었다. 친구는 한순간도 동네를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도 자신들이 어릴 적 다니던 그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병진은 친구에게 자신이 장난감을 사줘도 되는지 물었다. 친구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는 환호성을 지으며 장난감을 골랐다. 친구는 병진이 자신의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주자 고맙다고 했다. 병진은 친구에게 커피나 한잔하자고 했지만 친구는 와이프가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병진에게 명함을 건네면서 다음에 술 한잔 하고 했고 병진은 꼭 연락하겠다고 했다. 

멀어지는 친구 부자의 모습을 보면서 병진은 친구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놀기만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병진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병진이 시계를 보니 어느새 7시가 넘었다. 병진은 서둘러야 했다. 병진의 기억에 의하면 떡볶이 가게는 8시가 되면 문을 닫았다. 그렇기 때문에 병진은 빨리 떡볶이 집으로 항했다. 그런데 병진의 기억의 위치에는 떡볶이 가게가 없었다. 병진은 혹시나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딜 가도 추억의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병진은 그러고 보니 이 상가에 손님이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몇 나이 든 사람들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예전 같은 활기는 없었다. 병진은 주위 가게 주인에게 떡볶이 가게의 행방을 물었다. 가게 주인은 병진이 찾던 떡볶이 가게는 이미 없어졌다고 말했다. 병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누군가 병진을 알아보고 병진을 불렀다. 병진이 놀라 뒤돌아보니 반찬 가게 사장님이었다. 이 가게 역시 병진이 반찬 심부름을 하면서 자주 가던 곳이었다. 병진의 어린 시절 입맛의 8할은 책임지던 곳이었다. 반찬 가게 사장님 역시 나이가 많이 들었다. 병진은 반가워하며 사장님의 안부를 물었다. 서로의 안부를 챙긴 병진은 사장님에게 떡볶이 가게의 행방을 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병진은 자주 가던 떡볶이 집에 왜 없어졌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떡볶이 가게는 병진이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도 잘 운영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동네가 재개발되었다. 그러면서 큰 건물들이 들어섰고 상권은 새롭게 개편되었다. 깔끔하고 음식 맛이 보장된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구식 건물인 이 상가의 가게들은 쇠퇴되었다. 자연스럽게 발길은 줄어들었고 사장님들이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곳이 많았다. 떡볶이 가게 사장님은 그래도 최대한 버티려고 했다. 그녀는 한평생 떡볶이를 팔아서 아이들을 대학교에 보냈고 올바르게 자란 아이들은 좋은 곳에 시집 장가를 갔다. 그러나 제 자신의 건강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사장님은 몇 해 전 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가게는 사장님의 지인이 인수해서 몇 해 더 갔지만 예전 같지 않은 맛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 찾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잊혀갔다. 그렇게 병진이 좋아하던 가게는 문을 닫았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사라진 어느 가게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은 병진은 잠시 동안 멍하니 있었다. 가게의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것도 슬펐고 가게가 허무하게 사라진 것도 안타까웠다. 이젠 어린 시절 추억의 맛을 완전히 잊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쉬웠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 자신이 알던 옛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병진은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기 전 병진은 반찬 가게에서 어린 시절 먹던 몇몇 반찬을 샀다. 오늘 병진은 이 반찬을 먹으며 옛 시절을 다시 그리워할 것이다. 병진은 사장님에게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건네고 상가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병진은 낯선 추억의 동네를 발견했다. 주위는 정말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던 이곳에는 큰 건물들과 아파트가 있는 동네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 익숙하던 동네의 냄새는  흔한 도시의 냄새가 되어 있었다. 병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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