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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5. 2022

4월 25일 박동협의 하루

길몽

나는 원래 꿈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꾼 꿈은 아주 잘 기억이 났다. 꿈은 여러 개가 있었다. 어떤 꿈에서는 쥐가 많이 등장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나 역시 쥐를 징그러워했지만 꿈속에서 쥐를 봤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정확한 사건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쥐를 잡아서 어딘가에 방생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는 꿈이었다. 이후에는 또 다른 꿈속에 있었다. 약간 더러운 이야기지만 대변이 많이 등장하는 꿈이었다. 집 안 곳곳에 대변이 있고 나는 그곳을 걸었다. 굉장히 더럽게 기분이 안 좋은 꿈이었다. 나는 집에서 탈출하려고 했지만 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천장을 올려다보니 계단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계단 위로 올라갔고 그곳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뱀이 있었다. 나는 뱀을 한참 쳐다봤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경외감이 들었다. 그때,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면서 나는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둔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너무나 생생했다. 꿈을 기억하려면 기억할수록 꿈의 기억은 멀어져 갔다. 하지만 인상적인 키워드가 존재하는 꿈들이었다. 쥐, 대변, 거대한 황금색 뱀. 나는 핸드폰으로 해당 키워드가 어떤 의미를 가진 꿈인지 검색했다. 정확하게 내가 꾼 꿈과 동일한 것은 없었지만 쥐와 대변, 뱀이 등장하는 꿈은 대부분 좋은 꿈이 많았다. 하나만 꿔도 길몽이라는데 나는 오늘 이런 길몽의 키워드를 무려 3가지나 꾼 것이었다. 적어도 흉몽은 아닐 것 같았다. 어쩌면 오늘 로또를 사면 이번 주에 당첨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꿈의 유효기간을 검색했다. 다행히 꿈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길어 아마 오늘 꾼 꿈이 나에게 막대한 재산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월요일이었지만 좋은 꿈을 꾸니 나의 하루도 가볍게 느껴졌다. 상쾌했다. 나는 기분 좋게 출근을 준비했다. 오늘 나에게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출근을 하니 사무실 분위기가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우리 부서의 서대리가 업무 상 아주 큰 실수를 해서 팀장은 화가 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주 금요일에는 대표가 지난 분기 실적을 핑계로 본부장급들을 혼냈고 이로 인해 각 팀장들이 아침부터 본부장급들에게 한소리를 들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 팀장은 오늘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그리고 회사에 와서야 깨달은 것이었지만 내가 지난주 금요일 퇴근 전에 보낸 메일에서도 심각한 실수가 발견되었다. 동수 식품으로 보내야 하는 메일이었는데 내용에 승주 식품이라고 내가 써놨던 것이었다. 회사 이름을 틀리는 아주 기초적인 실수였다. 동수 식품에서 그런 것을 그리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라 문제는 없었지만 이 메일이 팀장에게도 CC가 걸려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식은땀이 흘렀다. 

팀장은 팀원들을 모두 불러 큰 소리로 화냈다. 자신이 언제까지 세세한 것을 잡아줘야 하는 것인지 왜 스스로 제대로 못하고 있고 아주 기초적인 곳에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인지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팀장의 지적은 분명 당연한 말이었다. 나 역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평소에 화를 한 번 내지 않던 팀장이었지만 오늘의 모습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상사보다 더 무서운 모습이었다. 

오전 내내 팀장에게 혼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국밥 집에서 밥을 한참 먹고 있는데 국 안에서 이물질이 하나 발견되었다. 형태를 보니 어떤 벌레의 일종 같았다. 나는 구역질이 나왔다. 나의 행동에 무슨 일이냐고 묻던 동료들도 실상을 알고는 먹던 숟가락을 바로 내려놓았다. 가게 사장님은 정말 죄송하다며 새로 밥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거절했다. 결국 내가 먹은 것에 한해서 계산을 하지 않는 선으로 마무리되었다. 

오후에는 급하게 프린트를 해야 할 것이 있었는데 갑자기 프린트가 고장이 났다. 나는 담당 부서에 4층의 프린터가 고장이 났다고 보고했다. 담당 부서에서 확인하더니 수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길래 나는 다른 층의 동료에게 부탁해서 프린트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 동수 식품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내용 때문에 이들이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화를 내는 동수 식품 담당자의 전화를 한참 받아야 했고 나는 계속 죄송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2시간 전. 팀장은 나를 불러 내일 급하게 보고할 것이 있다며 문서를 오늘 안에 정리해달라고 했다. 보고할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아 해당 작업을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문제는 아직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고 했다. 그렇게 한참 가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데 버스 기사님은 버스를 잠시 살펴보러 갔다. 잠시 후 돌아온 버스 기사님은 승객들에게 버스가 고장 났으니 죄송하지만 다음 버스를 타 달라고 했다. 결국 나는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다음 버스는 또 한참 오지를 않아 나는 예상보다 더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녹초가 되었다. 나는 내가 오늘 좋은 꿈을 꿨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고 있었다. 그만큼 오늘 일진은 어째 굉장히 안 좋았다. 내가 자처한 일도 있었기에 할 말은 없었지만.

아무튼 오늘 꾼 길몽은 오늘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 너무 바빠서 까먹고 로또를 사지 않았지만 내일은 로또를 사야겠다. 오늘 꾼 꿈의 유효기간이 적어도 토요일까지는 갔으면 좋겠다. 아니면 오늘 꾼 꿈이 그냥 흉몽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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