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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2. 2022

4월 22일 이우재의 하루

오래된 MP3플레이어

오늘 잠을 자기 전 집을 치우는데 아주 오래전 사용하던 MP3 플레이어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찾지 않아 먼지만 쌓여있던 기기였다. 이제는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런 MP3 기기에 음악을 넣어 감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기술의 발전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라 카세트테이프부터 CD, MP3, 그리고 스트리밍까지 다양한 방법을 음악을 들었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음악을 듣던 학창 시절에 사용하던 것은 바로 MP3플레이어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크게 승진을 하셨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기쁨을 제대로 축하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도 버거웠고 늦게 온 사춘기 탓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개의치 않으셨다. 

아버지가 승진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평소 잘 드시지도 못하던 술에 잔뜩 취한 체 아버지가 귀가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만화책을 보고 있던 내 방을 불쑥 찾아오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노크도 하지 않고 오냐고 큰 소리를 질렀지만 아버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는 크게 웃으며 가방에서 정성스럽게 포장지에 쌓은 선물을 주셨다. 예민하게 굴던 나도 그때 갑작스러운 선물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이 원하는 것 같아서 큰 마음먹고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선물의 정체를 말하지 않고 방에서 나가셨다.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서 아버지께 감사를 전할까 했지만 그만뒀었다. 그리고 앞에 놓인 선물을 뜯어봤다. 선물의 정체는 MP3플레이어였다. 그것도 당시에 꽤나 고가인 물건이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날 새벽이 되자 나는 방 밖으로 나와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나는 컴퓨터와 MP3플레이어를 연결했다. 그리고 컴퓨터에 있는 MP3 파일을 플레이어로 전송하였다. 컴퓨터에 파일이 별로 없어서 몇 곡 넣지도 못했지만 나는 그날 밤새 이어폰을 꼽고 MP3플레이어를 들었다. 다음날 학교를 가야 했지만 나는 신이 나서 음악을 계속 들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가 사다주신 MP3플레이어는 나의 단짝이 되었다. 친구들은 갑자기 MP3플레이어가 생긴 나를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MP3를 맨날 자랑하고 다녔고 쉬는 시간에도 혹시나 없어질까 봐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잠잘 때 빼고는 고등학교 내내 MP3플레이어를 손에서 놓은 기억이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MP3플레이어는 여전히 들고 다녔다. 당시 핸드폰에 음악을 넣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듣는 것보다는 나의 소중한 기기로 음악을 듣는 것이 더 좋았다. 그렇게 나의 20대 초반까지도 아버지가 사다주신 MP3플레이어는 나의 소중한 보물 1호였다. 

군대에서 복학했을 무렵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영상과 음악을 듣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 되었을 때부터 나는 MP3플레이어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것이 더 편했다. MP3 파일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비용적으로도 부담이 되었다. 이에 비해 스트리밍 서비스는 월 구독료만 내면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필요한 노래를 찾아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올 시점이라 월 구독료도 꽤나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기기로 음악을 들을 이유는 없어졌다. 그렇게 아버지가 사다주신 MP3플레이어는 나에게서 잊혀갔다. 

다시 시간이 지나 나는 취직을 했고 아버지는 은퇴를 하셨다. 이제 아버지에게 내가 스마트폰을 사다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어떻게 듣는지,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를 아버지에게 알려드렸고 아버지는 고등학생 시절의 나처럼 선물 받은 기기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 되었다. 몇 달 후, 어머니의 핸드폰도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의 MP3플레이어를 보니 반가웠다. 충전을 해서 사용해보려고 했는데 충전 케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기기들과는 다른 충전 타입이었기 때문에 충전을 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케이블을 팔기는 했다. 일단 케이블을 주문했는데 그제야 서랍 속에서 MP3플레이어 충전 케이블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일단 충전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MP3플레이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충전이 된 것 같아 이어폰을 꼽아 음악을 들어봤다. 생각해보니 이제는 이어폰을 꼽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해진 시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이랑 지금이랑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는데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음악을 들으려고 하는데 자꾸 기기가 꺼졌다. 아무래도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참 아쉬웠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수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찾아봤다. 놀랍게도 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내 기기와 동일한 모델을 수리하는 곳이 있었다. 확인해보니 토요일에도 오전 시간에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내일 수리점에 한번 가봐야겠다. 수리 후기를 살펴보니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추억의 기기를 다시 살리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을 이뤄주는 마법 같은 곳이었다. 어쩌면 내일 다시 추억의 기기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기기를 찬찬히 살펴봤다. 여러 번 떨어뜨려서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음악만큼은 아주 잘 뽑아주던 기기였다. 이젠 배터리가 다 된 탓인지 제대로 켜지지는 않지만 배터리만 교체하면 예전처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사다주신 MP3플레이어 업체는 이제 내가 쓰는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 지금 쓰는 스마트폰도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오래된 친구를 보니 이때의 감성과 완성도가 더 좋은 것 같다. 음악을 듣는다는 원래의 목적에 정말 충실한 제품이라 그런 것 같다. 물론 승진의 기쁨을 아들과 함께하고 싶어 어린 시절 철이 없던 아들을 위해 MP3플레이어를 사다주신 아버지의 사랑이 내 추억의 노래가 되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내일은 내 추억을 다시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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