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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9. 2022

4월 29일 전민석의 하루

반품

민석은 며칠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스피커를 구매했다. 평소에 퇴근 후 컴퓨터로 게임하는 것이 낙이었던 민석은 어느 날부터 소리가 나오지 않는 스피커 때문에 뜻하지 않는 지출을 해야 했다. 소리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민석이었지만 기왕이면 괜찮은 모델을 사고 싶어서 며칠 동안 정보를 찾아가며 민석의 예산에 딱 맞는 스피커를 찾았다. 그리고 최저가로 판매하는 곳에서 스피커를 구매했다. 구두쇠인 민석에게는 모처럼만의 지름이었다.

그러나 상품이 배송이 시작된 이후에 민석은 마음을 바꿨다. 막상 사용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별로라는 후기가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라 이어폰을 꼽고 게임을 하면 해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민석은 마음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돈이 아까웠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왕 배송 시작된 거 이대로 쓸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민석이 스피커를 구매한 지 하루가 지났다.

민석이 주문한 쇼핑몰은 새벽에도 배송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민석이 주문한 스피커도 이른 아침에 도착하였다. 출근하기 전 민석은 일단 배송 박스를 집 안에 옮겨놨다. 그렇게 회사에 출근한 민석은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결국 스피커를 반품하기로 마음먹었다. 무료 반품도 가능했기 때문에 민석이 반품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민석은 쇼핑몰에서 ‘반품하기’를 눌렀고 쇼핑몰에서는 다음날 수거될 것이라고 안내가 왔다. 그렇게 하루가 다시 지났고 오늘이 되었다.


오늘 민석은 출근을 하며 집에 보관하고 있던 택배박스를 그대로 문 밖에 내놨다. 민석의 주소가 적힌 라벨지를 뜯고 매직으로 크게 ‘반품’이라 표시하고 민석은 회사로 갔다. 민석은 엄청난 고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가격인 상품이 아무런 보호 없이 문 앞에 놓여있는 것이 조금은 불안했다. 민석은 혹시 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가져가서 결국 물건만 도난당하고 환불은 못 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민석은 하루 종일 불안했다. 물건을 회수하면 쇼핑몰에서 알림이 오기 때문에 민석은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누르면서 언젠가 도착할 알림을 기다렸다.

그러나 꽤 늦은 오후가 되어서 회수를 했다는 알림이 없었다. 민석은 불안했다. 쇼핑몰 고객 센터에 연락해서 언제쯤 회수를 하는지를 물었지만 기사님의 일정과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담당자도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민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가서 물건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는 ‘택배는 문 앞에 잘 두면서 회수하는 건 왜 그리 불안해하냐’라고 핀잔을 주었다. 민석이 생각해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민석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1시간 후, 민석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주문번호 1442425, 반품 요청하신 물건이 확인되지 않아 회수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4월 30일에 다시 방문드리겠으니 반드시 반품 요청하신 물건을 집 앞에 보관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석은 당황스러웠다. 회수하러 왔는데 그곳에 물건이 없었다니? 민석은 자신이 우려한 상황이 발생한 것 같아 식은땀이 났다. 민석은 빨리 퇴근하고 싶었다. 지금 민석의 눈에는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당장 집으로 달려가서 확인해야 했다.

마침내 퇴근 시간이 되자 민석은 가방만 챙겨서 빠르게 뛰어갔다. 회사에서 민석의 집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 시간이 민석에게는 1년과도 같았다. 시간이 도저히 가지 않는 것 같았다. 민석의 입은 바싹 말라갔다.

겨우 집에 도착한 민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정말 반품 박스가 보이지 않았다. 민석은 분실 신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민석 바로 앞집 문 앞에 반품 박스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민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앞집에게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만 보니 앞집에는 오늘 택배가 엄청 많이 와있었다. 그 수많은 택배 박스들 옆에 민석의 반품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민석은 우선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며 가끔 민석과 인사를 주고받는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민석은 정중하게 자신이 반품하기 위해 둔 박스가 앞집 자리에 있는데 혹시 정황을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사실 민석이 보기에도 그랬다. 앞집에 배달 온 택배기사가 택배를 쌓으면서 어쩌다 보니 민석의 물건을 같이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민석은 그냥 할아버지에게 실례했다는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박스를 챙겨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민석은 이번엔 쇼핑몰에 화가 났다. 아무리 집 앞에 안 보여도 그렇지 주변을 잠깐 돌아봤으면 대문짝만 하게 ‘반품’이라 써놓은 상자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나는 마음에 민석은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그리고 상담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항의했다.


“아이고, 고객님. 그러셨군요. 저희도 배송이나 회수해야 할 물량이 많다 보니 집 앞에 없을 경우 아직 물건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여 회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회수를 할 예정이니 꼭 문 앞에 놓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상담사는 능숙하게 민석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다음 조치 내용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민석의 화난 감정은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 이걸 못 본다는 게 말이 되나요? 나 참. 아니 내일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요?”


“고객님. 내일 집 앞에 회수할 물건을 내놔주시면 담당 기사님이 회수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제 물건이 이번엔 정말 없어지면요?”


“고객님. 그런 경우에는 저희가 책임지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고 회수할 물건을 문 앞에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제가 또 나가야 해서 집에 없어요. 제가 밖에 내놓고 있으면 정말 되는 건가요? 책임진다는 말씀이 사실인가요?”


“고객님. 저희 정책에도 나와있는 것이라 걱정 마시고 내일 회수할 물건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일 또 회수를 못 하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객님. 회수를 만약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저희는 주말에도 계속해서 일하기 때문에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휴우.. 알았습니다. 내일…. 그러면 제가 그냥 집에 있으면서 회수하러 오시면 드리면 안 되나요? 사실 오늘도 분실될까 봐 걱정되었거든요.”


“고객님. 죄송하지만 현재는 대면 회수는 진행하고 있지 않은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분실 시 저희가 책임지고 있으니 아무런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고객님. 더 궁금하신 내용은 없으실까요?”


“없습니다. 감사해요. 전화 끊어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오늘 남은 하루 즐거운 일 가득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친절을 다하는 상담사 정현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흥분한 민석과는 달리 상담사는 이런 일이 많이 있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민석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결국 민석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상담을 끝낼 수 있었다.

상담을 끝낸 민석은 아직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고 책임진다는 쇼핑몰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처할 수 있는 대안은 없었다. 상담사의 말대로 내일 다시 제자리에 내놓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민석은 그냥 반품을 철회하고 스피커를 쓸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환불해서 받는 돈이 더 소중했고 스피커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에 하나라도 스피커가 정말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냥 싸구려 스피커를 살 것이라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일 민석은 최대한 늦은 시간에 밖에 나가면서 반품 박스를 내놓을 것이다. 내일도 민석은 불안해하며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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