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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28. 2022

4월 28일 박경태의 하루

지겹다

경태는 요새 하루가 너무 지겨웠다.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고. 삶에는 그 어떠한 이벤트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경태에게 아무런 일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태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아무것도 경태에게 자극이 되지 않았다. 

경태의 오늘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경태는 무미건조하게 일어났다. 일어나기 싫거나 회사에 가기 싫거나라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일어나고 기계적으로 양치하고 기계적으로 옷을 입었다. 그리고 늘 정해진 시간에 오는 지하철을 타러 집 밖으로 나갔다. 경태는 절대로 지하철을 놓치지 않고 항상 제시간에 탔다. 회사를 가는 동안에도 특별히 하는 것은 없었다. 경태는 음악을 듣지도 않았고 책을 읽지도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자리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경태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지겹다.’


회사에 도착한 경태는 평소처럼 커피를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직장 동료들의 인사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경태가 원래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기에 경태의 동료는 경태가 요새 기분이 안 좋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경태는 최근 회사에서 최소한의 말 이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점심시간에도 그냥 조용히 따라나가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다른 동료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경태의 회사는 매우 평화로웠다. 회사의 매출은 안정권에 접어들었고 특별히 지금 하고 있는 일 이상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회사는 정적이었다. 경태는 가끔 회사에 큰일이 일어났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다. 그저 회사는 돈을 안정적으로 벌고 있었다. 동료들은 항상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경태도 그랬다. 

그렇다고 회사일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바빴다. 형식적인 회의가 있었으며 보고를 위한 보고가 많았다. 단지 모든 것이 반복되는 것이라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경태는 지겨웠다. 지금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경태가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겹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퇴근을 할 때도 경태는 항상 정해진 길로 갔다. 다른 길로 가거나 다른 장소에서 약속을 잡는 일도 없었다. 그냥 본인이 아침에 갔던 루트와 정반대로 집에 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7시. 모든 것은 정확했다. 그 어떠한 특별한 이벤트도 끔찍한 사고도 경태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경태는 어제 미리 해둔 밥을 밥솥에서 꺼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계란을 부쳤다. 마지막으로 김과 김치를 꺼내 간단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이 메뉴 역시 평일이라면 변하지 않는 저녁 메뉴였다. 주말에만 가끔 약속을 나가거나 배달을 시켜먹을 뿐, 평일에는 같은 레퍼토리였다. 경태는 언젠가부터 평일에 평소에 하던 일 외 다른 것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경태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봤다. 아마 경태의 평소의 삶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순간일 것이다. 그가 있는 책의 내용은 매일 바뀌기 때문이었다. 경태는 매일 이렇게 1시간 정도 독서를 한다. 

그때, 경태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경태의 어머니였다. 밥을 잘 챙겨 먹고 있냐는 어머니의 말에 경태는 차분하게 대답하고 본인도 어머니의 건강을 물었다. 아주 짧게. 2분 정도 대화한 모자는 서로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경태는 이제 졸려 잠에 들기로 했다. 침대에 누운 경태는 오늘 자신의 하루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경태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지겹다.’


하지만 경태는 내일도 그 어떠한 모험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을 것이다. 경태는 지겹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이 그 지겨운 삶을 다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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