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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11. 2022

5월 11일 이지연의 하루

점심 같이 드실 분?

오늘은 회사에서 피자나 먹을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회사 단톡방에 “오늘 점심 피자 드실 분 모집합니다. 저 쿠폰 있어요. 점심시간 1시간 전까지만 같이 드실 분 연락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 단톡방은 회사에서 친한 사람끼리만 모인 채팅방이다. 이른바 ‘노조잡담방’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실제로 노조는 아니고 정말 친한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는 곳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거나 점심 같이 먹을 사람을 모으는 용도로만 활용하고 있다. 처음엔 정말 나랑 친한 사람 몇 명만 있는 곳이었는데 하나 둘 친해지는 사람이 많고 같이 점심도 먹다 보니 어느새 단톡방에만 30명이 있었다. 다들 나이고 비슷하고 회사에 들어온 연차도 비슷하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게다가 나는 외로운 것을 싫어해서 어떻게든 회사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했다. 이 방에 있는 사람은 나를 계기로 친해진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같은 팀이어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서로 일할 때 얼굴을 붉힐 일이 없냐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사적으로는 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지난 생일 때 받은 쿠폰이 조금 있어서 오늘은 피자를 먹기로 했다.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기를 바라며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다들 피자가 먹고 싶었는데 벌써 12명 정도가 참여한다는 답변을 보냈다.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생각보다 더 많이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대충 적당히 시키겠다고 말했고 다들 동의했다.

나는 나의 단짝 동료인 정화를 찾아갔다. 내가 쿠폰이 있는 피자 가게이지만 나보다는 정화가 어떤 메뉴가 좋은지를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화는 어떤 메뉴가 좋은지 몇 개 추천해줬다. 그리고 이 피자 가게는 사이드 메뉴도 괜찮아서 그런 것도 몇 개 시키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정화에게 고맙다고 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많고 점심시간이라 주문이 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단톡방에 10분 후에 마감하니 그때까지 또 먹고 싶은 사람이나 마음이 바뀐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10분 동안 몇몇 사람들이 먹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꿨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추가로 들어와서 최종적으로 15명이 피자를 먹게 되었다. 몇 판을 시킬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여자 직원이 많았지만 남자 직원들도 있었기 때문에 몇 개를 먹을지 잘 예상이 되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6판 정도와 사이드인 치킨을 몇 개 더 추가했다. 혹시 남으면 또 먹을 사람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계산을 하니 꽤나 많은 돈이 나왔지만 그래도 할인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피자를 시켰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씩 보내주면 되는지 계산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동료들은 익숙한 듯 10분도 되지 않아서 다 돈을 보내줬다. 이 신용 넘치는 사람들 같으니….

피자를 시켰으니 이제 업무에 집중할 차례다.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회의 시간이었다. 어제 업무 마무리 때 회의가 있었는데 다들 퇴근할 시간이라 제대로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회의였다. 나는 메모장을 들고 회의실로 갔다. 회의실에 참여한 인원 중 절반이 이따가 피자를 먹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안 먹는 사람 중 절반은 또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피자 언제 와?’라고 말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단톡방에 속하지도 같이 피자를 먹지도 않는 다른 동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특히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윤하님에게 점심에 피자를 먹기로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윤하님은 그런 것 있으면 다음엔 자기도 불러달라고 했다. 윤하님은 지난달에 입사한 내 위의 직급의 사람이었다. 나하고는 조금씩 친해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무래도 곧 우리 멤버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나는 잠시 미소를 짓고 다시 집중해서 회의에 임했다. 

한참 회의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벌써 피자가 도착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회의 중간에 나가는 것은 눈치가 보여 나는 문 앞에 두고 가시면 된다고 배달원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단톡방에 미안하지만 지금 피자가 밖에 와있으니 좀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지나지 않아 현수님이 피자 챙겨놨다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고맙다고 짧게 남긴 후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회의를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회의에 참여한 대부분이 오늘 피자 파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회의를 주최한 진현님은 우리 멤버에 속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런 것이 열린다는 것을 알아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직 점심시간 아니잖아?”라고 말할 위인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의 말이 틀린 것은 또 아니라 나는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단톡방에 회의가 길어지고 있으니 먼저 드실 분은 드시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1시간이 조금 지나고 제대로 결론도 나지 않은 회의가 끝났다. 이런 회의가 제일 힘이 빠진다. 모인 이유가 해결되지 않아 찝찝하기만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직원 휴게실로 갔다. 함께 회의를 한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로 가니 정말 미안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식사를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괜찮다며 세팅 다해놨으니 어서 식사하시라고 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저마다 자리에 앉아 각자 좋아할 것 같은 피자를 하나씩 집었다. 옆에 앉은 민아님이 나에게 콜라를 따라줬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이 무리의 중심이 되어 폭풍 수다를 떨며 피자를 먹었다. 이런 모임이나 자리에 가면 항상 내가 말을 제일 많이 한다. 나를 놀리는 사람도 많고 나 스스로도 나를 희생하며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도 회사 사람들이라고 하기엔 더 가깝게 마치 친구처럼 즐겁게 이야기하며 점심시간을 즐겼다.

나는 이 멤버들과 함께 나중에 노래방이나 방탈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몇몇이 나에게 또 호응했다. 정화도 그중 하나였다. 정화는 아예 일정을 잡고 노는 것은 어떠냐고까지 제안했다. 나도 이왕 이야기 나온 거 빨리 잡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자 어느새 노래방 모임, 방탈출 모임, 보드게임 모임 일정이 잡혔다. 나 말고도 다들 추진력이 좋은 것 같다. 

점심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회사 일은 지루하고 정말 화나고 힘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요새는 나와 마음이 맞는 이 동료들 덕분에 다니는 것 같다. 점심시간에 이야기도 하고 서로 아쉬운 점도 말하고 웃고 떠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요새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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