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May 12. 2022

5월 12일 임지웅의 하루

차분한 사람

지웅은 굉장히 차분한 사람이다. 지웅을 아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지웅이 화를 내거나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지웅은 자기 역시 화를 낼 줄 알고 슬퍼할 줄 알고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다고 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침착하게 대처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30살이 된 지금까지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지웅은 차분하기도 했지만 공감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오버해서 공감하는 것은 아니고 조용히 끄덕끄덕거리며 가끔 위로의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은 지웅과 항상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지웅은 회사 사람들의 비밀을 꽤나 많이 알고 있었는데 이게 다 사람들이 고민이 있으면 지웅에게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지웅은 차분하게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줬고 고개만 끄덕일 뿐 어떠한 대책도 제공한 적이 없었다. 그저 지웅은 위로의 제스처만 건넬 뿐이었다. 또한 지웅은 자신이 들은 말을 절대 남에게 발설하는 법이 없었다. 고민은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그 고민은 절대 퍼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지웅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지웅은 속으로는 자신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차분한 지웅이었기에 일 처리에 있어서도 절대 실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처리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완벽에 가깝게 일을 하기 때문에 지웅은 종종 로봇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위기의 상황이 닥쳐도 최선의 해결책을 차분하게 찾아내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적으로 고민이 있을 때도 지웅을 찾아왔다. 지웅이라면 묘안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지웅이 예스맨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웅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안 될 것 같은 일이 있으면 충분히 고심하고 어떤 이유 때문에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절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중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웅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즉 지웅은 거절을 해도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웅이 회사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을 줬을 때도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 정도 눈치는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웅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즉 모험을 하려고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에서 지웅이 돋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워낙 생각이 많다 보니 우물쭈물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는 오히려 목소리가 큰 사람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런 지웅의 태도 때문에 그의 직업적인 성장이 더딘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런 그의 모습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지웅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말 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는 오해의 대상이 되곤 했다. 특히 소개팅을 나가면 말 수가 지나치게 없고 차분한 그의 모습을 보고 ‘따분하다’라는 평가를 내린 상대들이 많았다. 그의 진가를 알기에는 소개팅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웅은 연애의 경험이 많이 없었다. 정말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을 때야 그에게 호감을 가지는 이성도 있었다.

지웅의 하루는 언제나 아주 평범하게 흘러간다. 지웅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먼저 정리한다. 그리고 나갈 준비를 하고 출근 중에는 영어 뉴스를 계속 듣는다. 짜뚜리 시간에 영어 공부라고 조금 해두기 위해서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지웅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다른 동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매일 아침 고민상담소가 회사 휴게실에서 열린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듣다가 상사가 출근한 것을 알고는 지웅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오전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낸다. 오전에는 대부분 보고로 업무를 보내고 상사는 지웅이 완벽하게 준비한 보고 자료에 흡족해한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이 먹고 싶어 하는 메뉴를 별 반대 없이 먹는다. 그리고 커피 타임. 여지없이 고민상담소가 열리고 지웅은 잠자코 듣기만 한다. 가끔 리액션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는 적절하게 행동한다. 오후 업무에는 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만 지웅은 침착하게 자신이 먼저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며 끝내 놓는다. 갑자기 들어온 업무도 지웅에게는 문제없다. 

모든 업무가 끝나면 회사 사람 중 누군가가 지웅에게 밥을 먹자고 한다.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또 신세한탄을 하려는 사람이다. 이때 자신의 이후 스케줄을 확인하고 가능 여부를 알려준다. 보통 지웅은 평일 오후에는 가급적 약속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 오후에도 대부분 그의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웅과의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퇴근하고 지웅은 밀린 집안일을 마치고 책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지웅의 가장 평범한 스케줄이다. 어떠한 동요도 드라마틱한 사건도 그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 매우 차분한 지웅이지만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 화도 내보고 짜증도 내본다. 그가 거의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때일 것이다. 아무튼 그의 하루는 오늘도 매우 평온하고 차분하게 끝난다.

이전 15화 5월 11일 이지연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