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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10. 2022

5월 10일 한성윤의 하루

수고하십시오.

오늘은 내가 현재 근무하는 연구기관에 새로운 원장이 취임하는 날이다. 원장의 이름은 한성윤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입사한 후 세 번째로 모시게 된 원장이다. 연구기관이라고 하지만 나는 연구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 행정원으로 일하고 있다. 취업이 안 되던 시절, 일반 사기업만 넣다가 우연히 넣은 연구기관에 채용되는 덕분에 지금 있는 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나의 업무는 언론홍보 역할이다. 그래서 새로운 원장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도 많았고 다음 주 정도에 원장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은 한성윤 원장의 취임식에 가야 했다.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는 대강당으로 향했다. 사진은 내가 찍지 않아도 되었지만 가급적 연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야 했다. 그렇다고 아예 앞은 높으신 분들이 계신 곳이니 있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나는 적당한 위치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입사 동기인 현우 형한테서 연락이 왔다. 부서에서 차출되어서 취임식을 보고 오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현우 형도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현우 형이 앉을 곳을 같이 맡았다. 그리고 작년에 입사해서 연구원 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려 가는 민석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민석은 오늘 몸이 조금 안 좋은 상황인데 출근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민석은 취임식인데 대충 할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민석의 신세가 측은하여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내 자리로 갔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현우 형이 도착했다. 현우 형은 표정으로 온갖 욕을 달고 있었다. 이 양반 분명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했는데…. 보나 마나 오늘 또 야근 후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할 것이다.


“야, 한성윤 원장은 어떤 사람이냐?”


현우 형은 한숨을 쉬면서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똑같지 뭐. 예전 원장이랑 똑같아.”


나는 미리 가져온 노트북으로 오늘 취임식 관련 내용을 정리할 준비를 하면서 대답했다. 


“에휴…. 그렇겠지? 누가 오든 다 똑같겠지 뭐. 고생하는 건 연구원들일 것이고….”


“아 근데 이번 원장 이 분야 쪽 사람이 아니래.”


“뭐?”


나는 노트북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자 현우 형은 크게 놀라면서 갑자기 내 노트북을 닫으며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하라는 표정을 보였다. 


“완전 비전문가야. 아니 따지면 아예 다른 건 아닌데..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나가서 좀 하지.”


나는 주위를 살피며 최대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강당에 도착하고 있는데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트집을 잡히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와… 연구원들 어쩌냐.... 우린 문제없겠지? 근데 뭐 낙하산 같은 건가?”


“아씨 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몰라. 내가 임명했어? 아니 그리고 비전문가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나는 주위 눈치를 계속 살피며 현우 형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었다. 


“연구기관은 여기가 처음이긴 한데 사기업에서 사장도 했고 조직 운영이나 성과를 내는 데 있어서 괜찮은가 봐. 능력은 있는 거 같아. 그렇게 궁금하면 다음 주에 나 원장님이랑 인터뷰하니깐 그걸로 보세요. 제발 여기서 그러지 마시고요.”


나는 현우 형이 또 질문공세를 할까 봐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가 아는 정보를 빠르게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와 함께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비전문가에 사기업 출신이라고 하니깐 더 불안하네…. 아휴 신경 꺼야지.”


현우 형은 의자에 푹 기대더니 핸드폰을 하며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일단 지금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저녁에 술 먹으면서 이것저것 또 물어볼 것 같지만….


.

.

.


조금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한성윤 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덩치가 컸지만 인상도 좋았다. 사기업 사장 출신이라더니 딱딱한 느낌의 지난 원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익숙해 보였다. 특히 정말 공부만 했을 것 같은 전임 원장과 나란히 앉으니 더욱 비교되었다. 

취임식이라고는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오늘 행사는 이‧취임식이었기 때문에 전임 원장인 송원창 원장의 이임사로 시작되었다. 나는 기록을 위해 핸드폰 녹음기를 틀었다. 

이임사를 시작한 송원창 원장은 지난 임기 동안 있었던 연구원의 성과를 되짚었다. 그리고 송원창 원장은 지금의 성과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과 직원들의 서포트 덕분에 이룰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는 그의 말을 빠르게 타이핑하면서 들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송원창 원장의 말은 항상 착하고 정직했다. 바꿔 말하면 전형적인 스타일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재미가 없었다. 분명 좋은 말인데 잘 기억에 나지 않는 그런 말들이었다. 

이어서 한성윤 원장의 취임사가 시작되었다. 연단에 서니 한성윤 원장의 풍채는 더욱 커 보였다. 한성윤 원장은 먼저 이렇게 훌륭한 연구기관의 장이 된 점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송원창 원장 같은 분이 아주 잘 이끌어주셨는데 자신이 이어받게 되어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이후 한성윤 원장은 자신이 비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을 솔직히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내부의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채우겠다고 했다. 또한 민간 전문가와도 계속해서 대화하며 외부의 객관적인 시각을 경청하고 기관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성윤 원장이 강조한 것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좋은 연구였다. 한성윤 원장은 자신이 기업 출신이라 성과 위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테지만 자신은 오히려 성과보다는 과정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한성윤 원장의 스피치 스타일은 굉장히 직설적이었다. 비유적인 표현보다는 직접적인 단어를 선택했고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핵심을 짚어주지 않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경향도 강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실제 일을 할 때는 자유롭게 한다고 하니 연구원들은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언론홍보를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성윤 원장의 스타일은 조금 까다로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인터뷰 후에 어떻게 내용을 예쁘게 정리할지가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그가 하는 말에서 어느 정도 진심은 느껴졌기 때문에 그 진심을 담은 문장을 잘 다듬으면 괜찮게 정리될 것 같았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송원창 전 원장과 한성윤 원장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가까이 이동한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오늘 이‧취임식을 어떻게 예쁘게 정리할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한성윤 원장은 민석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한성윤 원장은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성윤 원장은 단상 근처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발견하더니 이번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한성윤 원장에게 내 직책과 이름을 소개했다. 한성윤 원장은 잘 부탁한다며 내 손등을 두드리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그가 어떤 스타일일지 조금 보이긴 하는 것 같다. 여하튼 이제 새로운 보스가 오셨으니 그에 맞게 나는 우리 기관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민석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아까 앉은자리로 가서 노트북을 챙겼다. 이제 사무실로 가야 할 시간이다. 사무실로 가기 전, 나는  다시 한성윤 원장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려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에게 마음속으로 덕담을 건넸다. 



한성윤 원장님


취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연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입장이다 보니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을 일이 조금 많이 있겠네요.

임기 동안 우리 기관 운영 잘 부탁드리며 우리의 성과가 세상 사람들이 잘 알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힘든 일도 있겠지만… 항상 웃으면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게요.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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