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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09. 2022

5월 9일 박문혁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박문혁 대표는 내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부장으로 근무하시던 분이었다. 회사에서 그 정도 연차와 직위를 가진 사람들은 다들 고지식하고 존경할만한 구석이 없었지만 박문혁 당시 부장은 달랐다. 업무적으로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고 아랫사람들도 잘 챙겨줬다. 나는 당시에 말단 사원이었기 때문에 박문혁 부장과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가다 나에게 반갑게 인사도 해주시고 일을 같이 할 때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내 위에 대리, 과장, 차장 모두 박문혁 부장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박문혁 부장이 일을 하는 태도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나에게 귀감이 되었다.

박문혁 부장은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했다. 내가 2년 차 사원일 때 박문혁 부장은 임원이 되었다. 임원이 되어서도 그는 계속해서 성과를 냈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몇몇 직원들은 박문혁 부장이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이라 라인을 잘 타서 빨리 승진할 수 있었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본 박문혁이라는 사람은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온순한 편이지만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아부를 하거나 라인을 타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박문혁 대표가 취임한 후 회사에는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올렸고 사내 커뮤니케이션 팀 부서를 신설하여 사내 문화와 복지를 정비했다. 그는 대외 커뮤니케이션에도 집중해서 회사를 외부에 알리는데 집중했다. 그러면서 MOU를 계속해서 추진했다. 박문혁 대표가 있을 때 회사의 규모는 더욱 커졌고 매출은 크게 늘었다. 물론 일을 열심히 한 우리들의 공도 있었겠지만 회사가 갈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는 박문혁 대표의 경영 능력은 그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인정하는바였다. 

그는 대표가 된 이후에도 직원들과 허울 없이 지냈다. 처음에는 사내 동아리에 직접 가입해서 직원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직원들의 반응이 나오자 박문혁 대표는 사내 동아리를 그만뒀다. 박문혁 대표는 그 이후에는 다른 방식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회사를 발전시키려고 했다. 박문혁 대표는 매주 직원들과 격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마련했고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주려고 했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는 박문혁 대표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박문혁 대표가 회사의 대표치고는 너무 가벼운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싫어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가식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다. 회사의 대표이니 이런 말을 대놓고 말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런 사람들이 가끔 보였다. 또한 업무적으로 박문혁 대표의 경영 방침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추진한 MOU가 무분별하게 진행될 경우가 많아 업무 폭탄이 떨어지는 부서도 있었다. 박문혁 대표 체제에는 명암이 분명히 존재했다. 


1년 전 우연히 박문혁 대표와 같이 퇴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일이 너무 많았고 나는 야근을 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회사에는 나만 있었다. 다른 곳에도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곳에 박문혁 대표가 있었다. 박문혁 대표는 내 얼굴을 알아보고 “이제 퇴근해요? 회사에 나와 서정민 과장만 남았나 보군요.”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아주 우연히 퇴근하면서 박문혁 대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상황을 따지면 퇴근하는 직원을 붙잡고 괜히 말을 거는 상사이기는 했지만 나는 싫지는 않았다. 그리 길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사는 이야기를 잠시 했다. 그때 박문혁 대표의 얼굴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때 박문혁 대표의 표정과 말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달, 박문혁 대표는 퇴임을 발표했다. 입사 초기부터 봐왔던 상사가 퇴임을 한다고 하니 조금 마음이 이상했다. 그래도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능력이라면 다른 회사에 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에 따르면 내 바람과는 달리 박문혁 대표는 아예 은퇴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은퇴는 아직 이른 것인데 조금 의아했다. 그래서 난 헛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사의 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박문혁 대표에게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오고 아예 다른 길로의 제안까지 왔지만 그는 은퇴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그냥 시골로 가서 아내와 함께 오손도손 사는 것이 박문혁 대표의 유일한 계획이라고 했다. 

퇴임 및 은퇴가 발표된 후 박문혁 대표는 한 달 동안 회사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처럼 박문혁 대표의 퇴임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저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봐서는 박문혁 대표가 직원들에게 꽤나 신뢰를 줬던 것 같기는 하다.


오늘은 박문혁 대표가 퇴임하는 날이다. 나는 오늘 할 일이 많아 일찍 출근했는데 오늘도 엘리베이터에서 박문혁 대표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나는 박문혁 대표에게 인사했다.


“서정민 과장님도 안녕하세요? 엄청 일찍 나오셨네요. 저는 오늘이 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마지막 날이네요.”


박문혁 대표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어.. 그렇죠. 대표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박문혁 대표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서과장님이 신입 시절 때 인사드렸었는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되었네요.”


“하하.. 그때 많이 배웠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요.”


“저야 말로 서과장님을 비롯해 직원들께 많이 배웠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일한 게 자랑스러워요.”


“감사해요. 아. 그리고… 저”


그때 엘리베이터가 어느새 내가 가야 할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먼저 내려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박문혁 대표를 향해 인사했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나는 잠시 엘리베이터를 바라봤다. 그리고 박문혁 대표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잠시 떠올렸다. 박문혁 대표는 회사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존경하는 선배님이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그가 이끄는 회사가 좋았던 적도 있었고 실망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나의 회사 생활에서 앞으로도 기억될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 배운 것이 정말 많았다. 그가 부하 직원을 대하는 태도는 지금도 지키려고 하고 있고 나 역시 박문혁 대표가 그런 것처럼 존경받는 선배가 되고 싶다. 나는 뒤로 돌아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발을 멈췄다. 다시 방향을 돌려 엘리베이터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방향을 바라봤다. 나는 아까 박문혁 대표에게 하지 못한 말을 마음속에 담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박문혁 대표님.


정말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리울 것입니다.

함께 해서 행복한 회사 생활이었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고, 제가 사는 데 있어 귀감이 되시는 분이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앞으로 남은 인생 즐거운 일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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