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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07. 2022

5월 7일 정태혁의 하루

그 가게는 살아남았다

내가 예전에 사는 동네 근처에는 테이블 4군데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술집이 있었다. 이곳은 아주 평범했다. 소주와 맥주를 팔고 같이 즐길만한 안주를 적당한 값에 판매하는 곳이었다. 번화가에 있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아마 동네 사람들만 알만한 그러한 평범한 동네 술집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위치한 이 술집에는 항상 손님이 없었다. 나 역시도 우리 동네에서 술을 마실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곳을 이용할 일은 없었다. 만약 동네에서 약속이 생겨도 다른 곳을 가지 이 조그만 술집에 올 일은 없었다. 아주 가끔 정겨운 인테리어에서 소주를 마시는 정취를 즐기고 싶을 때만 가본 기억이 있다. 안주의 맛은 매우 평범했다. 안주 이름을 보면 상상할 수 있는 맛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그래도 정말로 맛이 별로인 경우는 없었다. 동네에서 이름 없는 술집이 그래도 평균의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꽤나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지나갈 때나 내가 이용할 때나 이곳은 항상 손님이 없었다. 어쩔 때는 나만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걱정되어서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사장님은 웃으면서 자기 가게에는 숨은 단골들이 많아서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월세나 재료값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로 돈은 벌고 있으니 농담조로 그리 걱정되면 안주나 하나 더 시키라고 하셨다. 나는 웃으면서 안주를 하나 더 시켰지만 정말 이 가게가 괜찮을까라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다.

몇 달 후, 늦은 시간에 퇴근해서 집에 가는데 그날따라 가게에는 손님이 많았다. 4개의 테이블이 모두 가득 차 있었다. 꽤나 시끌벅적한 모습을 보며 나는 약간 안심했다. 나도 잘 이용 안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장님이 장사를 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술집을 잘 이용하지 않았고 이사를 가게 되면서 가게는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다시 몇 해가 지난 후, 코로나가 터지면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내 기억 속에서 예전 동네에 있던 술집이 생각났다. 아마 그 가게도 코로나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어쩌면 그동안 폐업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런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 다시 흘러, 거리두기가 풀린 시점이 되었다. 오늘 나는 정말 오랜만에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놀러 왔다. 친구가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다른 친구들이랑 밥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동네를 둘러보았다. 

2년 간 동네의 모습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게 간판들은 많이 변했다. 원래 있던 가게가 없어지고 비슷한 류의 가게가 생기거나 아예 업종을 변경한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은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만 있고 가게 안은 텅 빈 곳도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식당도 있었는데 이제 전혀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직 살아남은 식당들이나 가게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난 한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동네의 작은 술집 앞이었다. 사실 그 정도 되는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가게는 당당하게 살아남아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놀라웠다. 코로나가 아닐 때도 잘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장사를 잘하고 있다니. 

나는 혹시 가게만 유지하고 실제로는 영업을 하지 않는 상태인가 해서 가게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모습을 슬쩍 보고 있는데 사장님이랑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너무 놀랐고 사장님은 문을 확 열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하며 오랜만에 왔는데 아직 장사를 잘하고 계신 것 같아 반가워 잠시 봤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웃으면서 나한테 “예전에 여기 장사 잘 되냐고 물어본 그 청년 맞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단골도 아닌데 이런 것을 기억한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나의 놀란 표정을 보던 사장님은 “동네 장사를 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아야 해요. 그리고 총각이 맨날 가게 앞에 어슬렁거리면서 사람 있나 없나 쳐다보고 가는데 기억을 안 하고 싶어도 기억하죠. 우리 아직 장사 잘하고 있으니까 정 걱정되면 오늘 여기서 술 마시고 가던가!”라고 농담을 건네셨다. 나는 송구스러워서 머리를 숙이고 이따 친구들 데리고 오겠다고 하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놀랍고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가게가 장사를 잘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나는 그 길로 친구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친구에게 오늘 저녁에 근처 술집이나 가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근처에 괜찮은 술집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적당하고 나쁘지 않은 동네 술집 있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어딜 가도 상관없다며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그곳에 다시 갈 예정이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몇 년 간 동네에서 아주 잘 장사하는 동네의 평범한 술집,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은 술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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