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May 08. 2022

5월 8일 안성철의 하루

어버이날

성철은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을 모시고 한정식당에 갔다. 성철이 가는 곳은 항상 같은 식당이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부모님의 성향과 가장 잘 맞는 곳이었기에 매년 이용하고 있다. 꼭 어버이날이 아니더라도 아버지, 어머니 생신이나 다른 가족 모임이 있을 때도 들리는 곳이었다. 성철은 이 식당 말고 더 좋은 곳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다른 곳을 원하지 않았다. 성철은 아주 가끔 다른 곳에서 식사 대접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여기는 이런 것이 별로다 저기는 이런 점이 별로다.’라고 말하는 부모님을 보고 그냥 포기했다. 

성철의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맨날 가는 한정식당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 입맛에는 심심한 맛이기도 하고 맨날 같은 것만 먹으니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성철과 성철의 아내 역시 지겨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직 어린 아들은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성철의 아내는 맨날 출발하기 전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아들을 달래기에 바빴다. 그럴 때마다 성철의 아내는 저녁에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먹자며 달랬다. 

오늘 역시 그러한 날이었는데 오늘따라 성철의 아들은 더 심하게 떼를 썼다. 성철의 아내는 지쳤고 성철은 아무리 그래도 어버이날인데 이렇게 짜증 내는 아들의 태도에 크게 화가 났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말투로 아들을 달래는 성철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성철은 출발 전에 아들을 똑바로 세우고 화를 내며 어버이날인데 이런 태도를 보이는 성철을 크게 혼냈다. 성철의 아들은 엉엉 울었고 아내는 아이가 너무 울자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성철은 다시 아들을 붙잡고 아이가 잘 알아들었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아들은 울먹이면서도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 ‘말 잘 들게’라고 말하며 엄마의 손을 잡고 차를 타러 갔다. 성철의 아내는 아이한테 너무 엄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며 성철에게 말했고 이에 다시 울컥한 성철이 반박하면서 부부간의 말다툼으로 번졌다. 성철의 아들은 자신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 같아 더욱 크게 울었다. 

겨우 진정이 된 성철과 아내, 그리고 아들이었지만 이들은 자동차에서 말 한마디도 안 하면서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성철의 부모님이 미리 도착해있었다. 성철의 부모님은 아침에 아들 가족 사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철의 어머니는 눈이 퉁퉁 부운 손자의 모습을 보고 ‘아가,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었다. 성철의 아들은 아무런 대꾸도 안 했다. 손자의 모습을 안쓰럽게 보던 성철의 어머니는 미리 준비한 쇼핑백을 하나 손자에게 건넸다. 갑자기 쇼핑백이 보이자 어리둥절하고 있는 손자에게 성철의 어머니는 ‘어린이날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철의 아들은 잠시 엄마 아빠의 눈치를 살피더니 쇼핑백 안에 들은 미지의 선물을 확인했다. 성철의 아들이 정말 좋아하는 만화의 장난감이었다.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성철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려야지.’라고 말했고 아이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에이, 왜 선물을 또 사 오셨어. 이런 거 괜찮은데…..’라고 성철은 부모님께 말했지만 사실 성철은 아침에 아이에게 너무 화를 내고 이로 인해 아내와 말다툼까지 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선물 덕분에 아이의 기분이라도 풀 수 있어서  부모님께 너무 감사했다.

식사 메뉴는 예년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맛은 조금 달랐다. 성철이 생각하기에 더 맛없어진 것 같았다. 성철의 아내도 그렇게 생각했다. 성철의 아들은 의외로 작년보다는 밥을 잘 먹고 있었다. 그리고 성철의 부모님 역시 맛이 조금 변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음식이 너무 달아진 것 같다. 여기 사장이 바뀐 것 아니냐?’라며 성철의 부모님이 ‘마음에 안 드는 식당’에 갔을 때 보이는 반응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성철은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다음에는 이 식당에 오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성철은 갑자기 잘 먹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조금 불안했다. 성철의 부모님은 평소에 이 식당에서 잘 먹지 않던 손주가 밥을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 댁으로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 것이 기본적인 일정이었지만 오늘은 부모님이 먼저 피곤해서 가겠다고 했다. 성철네 가족은 차에 타는 성철의 부모님을 배웅했다. 그리고 바로 성철네도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성철의 아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아들의 모습을 보며 성철은 아내에게 오전에 큰 소리를 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아내도 성철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둘은 화해했다. 아내는 아들이 방에서 얌전히 노는 것을 확인하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성철 역시 소파에 기대어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성철은 아내에게 오늘 고생했다고 말하며 저녁에는 맛있는 것을 시켜먹자고 했다. 아내 역시 지친 터라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둘은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성철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성철의 눈앞에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들은 성철에게 무언가를 내밀고 있었다. 성철이 확인해보니 아들이 그린 그림과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편지였다. 성철은 아들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성철에게 ‘어버이날이라 엄마 아빠 주려고 만든 거야’라고 대답했다. 성철은 그림을 다시 봤다. 아내와 자신, 그리고 아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림이었다. 성철은 오전에 아들에게 심하게 화를 낸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 성철은 아들을 안았다. 어느새 성철의 아내도 잠에서 깼다. 아들은 ‘엄마, 엄마도 이거 봐!’라며 그림과 편지를 보여줬다. 상황을 파악한 아내는 눈시울을 붉히며 아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그림과 편지를 봤다. 아내는 아들이 대견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말고 나도 떼 안 쓸 테니까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 성철과 아내는 아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야. 아들, 오늘 정말 미안해.’  아들이 다시 말했다. ‘나도 미안해.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렇게 말하며 성철네 가족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따뜻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이전 11화 5월 7일 정태혁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