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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05. 2022

5월 5일 김수진과 시우의 하루

어린이날

오늘은 수진이 이혼을 하고 난 후 처음 아들과 맞는 어린이날이었다. 수진은 오늘 아들인 시우와 무엇을 하며 지낼까 며칠 동안 고민했다. 며칠 전 수진은 시우에게 필요한 것은 없는지, 가고 싶은 곳은 없는지 물었지만 시우는 원하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시우는 오늘은 엄마와 함께 있으면 된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수진은 그런 시우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수진은 작년 10월 전 남편과 이혼 절차를 마쳤다. 이혼에 대한 사유는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었고 양육권은 수진이 가져오게 되었다.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수진의 남편은 시우에 대한 애정도 없었다. 수진은 그런 남편의 태도에 더욱 분노했다. 수진은 자신이 더 시우를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수진이 훨씬 더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수진은 살던 집에서는 나와서 친정에서 살아야 했지만 오히려 수진에게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수진의 부모님은 수진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수진은 혼자 아이를 키운다고 세간의 눈초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만큼 시우를 더 올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었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수진은 비록 평일에는 바빠 시우와 놀아줄 시간이 없었지만 주말에는 시우와 같이 있으려고 했다. 

시우는 또래보다 약간 성숙한 아이였다. 몸도 또래보다 덩치가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남들보다 철이 든 아이였다. 시우는 자신의 아빠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혼자가 된 엄마를 위로하려고 했다. 원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였지만 그런 것을 잘 내색하지 않았다. 수진은 그런 시우를 보며 시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추측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시우는 경제관념을 조금 일찍 깨우치고 있었다. 복잡한 경제 개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하게 2명이 벌던 돈을 엄마 혼자 벌어야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제 일을 안 하고 있으니 자신이 모든 것을 떼를 써서 얻는 것이 엄마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우는 항상 엄마와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수진은 장난감조차 사달라고 하지 않는 시우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친구들이나 또래 엄마들에게 시우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우가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수진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어린이날이었다. 수진은 미리 준비한 장난감을 시우가 일어나자마자 줬다. 시우가 좋아하는 레고였다. 해맑게 웃으면서 선물을 보고 좋아하는 시우를 보니 수진은 덩달아 행복했다. 다 필요 없다고는 했지만 시우 역시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기분이 좋은 시우에게 수진은 어디를 갈지 다시 물어봤다. 시우는 그런 엄마를 보며 이번에는 대답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시우는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수진은 놀이공원이나 어린이 공연이나 다른 것도 아닌 바다를 선택한 시우의 생각이 조금 의아했지만 수진은 바로 시우에게 가자고 했다. 수진은 자신의 부모님에게도 바다에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수진의 부모님은 오늘은 모자끼리 즐겁게 시간 보내고 오라고 했다. 시우는 할머니 할어버지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고 수진 역시 부모님께 돌아올 때 맛있는 것을 사 오겠다는 말을 하고 집을 떠났다. 

수진은 시우를 태우고 서해 바다로 향했다. 들뜬 표정으로 웃고 있는 시우의 모습을 보며 수진은 미소를 지었다. 시우는 어릴 때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 동물이 나오는 책을 며칠 동안 반복해서 읽은 적도 있고 TV에서 바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하면 TV에 빠져들 것처럼 앞으로 가서 혼난 적도 있었다. 수진은 그런 시우의 모습을 보며 시우가 장차 해양학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바다를 좋아하는 시우였지만 정작 바다에 놀러 간 적은 거의 없었다. 결혼 생활 때는 수진과 남편 모두 바쁘다는 이유로 멀리 나나서 논 기억이 없었다. 몇 해 전 아쿠아리움에 간 적도 있지만 그때도 수진과 남편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고 아빠 엄마가 싸우는 모습에 놀란 시우는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이후로 시우는 바다 동물이 나오는 영상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수진은 서해 인근의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어딜 가도 차가 많았지만 수진은 가급적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찾았다. 그래도 날이 날인지라 이곳 역시 사람이 많았다. 수진처럼 아이들과 함께 놀러 온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바다를 보자 시우는 신나서 뛰어갔고 수진은 혹시나 시우가 다칠까 봐 시우의 손을 황급히 잡았다. 갈매기 울음과 함께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바다를 보니 수진은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수진은 핸드폰을 꺼내 풍경 사진을 먼저 찍었다. 그리고 시우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다. 시우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계속 가리고 있었다. 수진은 시우에게 “엄마 잠깐 보자. 우리 시우 잘생기 얼굴 보여줘”라고 하며 시우의 사진을 담으려고 했다. 수십 번의 노력 끝에 겨우 한 장을 건진 수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시우의 손을 잡고 바다를 거닐기 시작했다.

수진이 둘러보니 지금 바다에 엄마 혼자만 아이와 함께 온 가정은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아빠와 단 둘이서 온 아이도 보였지만 수진은 높은 확률로 엄마가 집에서 쉬고 아빠가 아이와 함께 바다를 구경 온 케이스일 것이라 추측했다. 수진은 혹시나 다른 사람들도 엄마와 아이만 온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잠시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내 수진은 그런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기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우는 엄마 손을 이끌면서 바다 물가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파도치는 물에 자꾸 자신의 신발을 넣으려고 했다. 수진은 놀라서 “신발만 살짝 벗고 물만 조금 담가볼까?”라고 제안했다. 시우는 엄마의 말대로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살짝 담갔다. 아직 차가운 바닷물에 시우는 좀 놀라 발을 뺐지만 이윽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다시 물에 담그기를 반복했다. 신나 하는 시우의 모습을 보자 수진도 신발을 벗고 살짝 물에 담갔다. 모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으면서 물장난을 쳤다. 그렇게 한참을 그들은 바다와 함께 놀았다.

발에 묻은 모래를 털고 수진과 시우는 다시 차를 타고 근처에 돈가스를 파는 곳으로 갔다. 근처에 더 맛있는 것이 많았지만 시우가 돈가스를 평소에 좋아했기에 수진은 그곳으로 갔다. 시우는 돈가스를 맛있게 먹으며 다시 한번 아름다운 미소를 수진에게 보여줬고 수진은 밥을 잘 먹는 시우의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밥을 먹고 근처에 만두를 파는 곳에 들린 수진은 만두를 좋아하는 부모님을 위해 만두를 몇 개 샀다. 그리고 수진은 시우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 어느새 지친 시우는 곤히 잠들어있었다. 수진은 그런 시우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혹시나 아이가 깰까 봐 조심히 운전했다.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단한 것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진과 시우 모두 만족한 하루였다. 특히 홀로서기를 선택한 수진이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보낸 어린이날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하루였다. 수진은 앞으로도 시우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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