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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04. 2022

5월 4일 서애리의 하루

꼰대의 귀환

오늘은 우리 회사 최강 꼰대 박차장이 다시 돌아오는 날이다. 우리 회사는 박차장 말고도 꼰대가 많은 회사지만 박차장은 차원을 달리하는 꼰대였다. 회사에서 박차장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은 그를 싫어했을 것이다. 물론 아부를 워낙 잘하기 때문에 윗사람들한테는 평판이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다. 특히 코로나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해외 근무를 자진해서 미국 지사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덕분에 박차장은 박부장이 되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문제의 박차장이 돌아오는 날이었다.


박차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그는 동기들보다 빠르게 차장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다. 직급에 비해 나이는 젊은 편이었지만 그의 꼰대력만 보면 50세를 훨씬 넘긴 직장인보다 더 심했다. 게다가 그는 동기들한테도 평가가 좋지 않았는데 이유는 입사 초기부터 동기들한테까지 꼰대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동기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박차장은 1~2살 나이가 더 있다는 이유로 동기들한테 형 노릇을 하려고 했다. 박차장의 동기인 이과장은 박차장 이야기만 나오면 이를 갈았다. 특히 박차장이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차장 자리에 올랐을 때는 동기들과 선을 그으면서 상사처럼 행동하려고 했다고 한다. 

박차장은 여자 직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다. 내가 입사 전이긴 하지만 문제가 될만한 발언들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박차장을 따로 불러 타일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경고나 징계 조치가 취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내가 입사한 후에는 박차장이 그런 쪽으로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으면 나는 정말 참지 않았을 것 같다. 

여하튼 박차장은 젊은 나이에 비해 꼰대력이 충만한 사람이었고 인터넷에서 가끔 보이는 꼰대 모습의 종합판이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저 사람도 저런 일을 당해본적도 없을 텐데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대표적인 것을 몇 개 예로 들면 그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나타나서 그걸로 뭐라 하는 사람이었다. 아니면 이를 빌미로 업무적으로 시비를 걸어서 할 말이 없게 만들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압존법이었다. 나는 처음에 박차장에게 이 말을 듣고 나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어 이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군대를 다녀온 다른 동료들이 이에 대해 설명을 듣고서야 박차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자 동료들도 사회에 나와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경우를 자신도 처음 봤다고 했다. 

박차장의 꼰대력은 평소 언행에서도 묻어 나왔다. 자기보다 직급이 낮으면 무조건 반말이었다. 최근 우리 회사는 요새 트렌드를 반영한다고 해서 ‘님’ 호칭 문화가 자리 잡았지만 박차장을 비롯한 윗사람들한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문화였다. 박차장은 존댓말을 거의 하지도 않았고 ‘님’은 커녕 사람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니, 차라리 이름을 부르면 다행이었다. ‘야’,’ 너’,’ 인마’ 등 다양한 호칭이 등장하였다. 아 물론 당연히 이 분은 욕도 많이 하셨다. 이를 실시간으로 부장급 이상의 윗사람들이 봤음에도 박차장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박차장의 광기를 막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밖에도 직원들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물론 외모 지적도 일삼았다. 또한 일찍 퇴근한다고 면박 주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어도 계속해서 아는 척했고 혹여나 틀리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갑자기 남 탓을 하는 경우도 다수였다. 회식은 어찌나 좋아하는지 술차장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자기와 술을 안 마시면 다음 날 업무적으로 괴롭히고 술 마시러 가면 자기랑 술 마시는 속도를 꼭 맞춰야 했다. 한마디로 꼰대 종합 선물세트였다.

박차장은 업무적인 태도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박차장은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었다. 하지만 심한 꼰대력과 더불어 정색하면서 화내는 능력까지 있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거기에 말귀도 못 알아듣지만 틈이 나오면 상대를 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직원들은 박차장에게 따지러 갔다가 역으로 털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윗사람은 박차장을 좋아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상대였다. 

나도 처음 입사하고 몇 달 동안은 박차장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차장이 해외로 파견되면서 회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회사에는 박차장 말고도 다양한 꼰대가 있었지만 박차장만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나는 박차장이 그냥 이대로 미국에서 아예 정착하게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박차장은 업무적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고 결국 그는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이제 박부장이 된 박차장은 오늘 아침 일찍부터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박차장은 직원들이 출근할 때마다 마치 둘도 없는 친구 혹은 동료를 만난 듯 눈시울을 붉히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나에게도 잘 지냈냐며 가볍게 악수를 청하는데 그저 역겨웠다. 이 인간은 어디서 지 혼자 감상에 잡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도대체 왜  인간은 월요일도 아닌 수요일부터 다시 출근해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내일은 게다가 휴일인데?

박차장의 속셈과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리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여하튼 박차장은 오늘은 사람 좋은 컨셉으로 나가고 있었다. 뭔가 더 겸손해지고 젠틀해진 느낌이지만 아마 오늘은 승진 뽕에 취해서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한 다음 주부터는 다시 본래의 꼰대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박차장은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예전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거리두기도 풀렸으니 오랜만에 술 한잔 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다. 특히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박차장의 술자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벌써부터 반말을 찍찍하는 박차장의 모습을 보니 오늘의 술자리 분위기도 뻔하다. 하하.. 오늘은 또 어떤 개소리를 할까. 벌써부터 짜증이 난다.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책상 너머로 박차장이 또 아는 척하고 남 무안 주는 말을 하고 있는 게 들렸다. 정말 귀를 막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시 저 인간과 함께 다니는 회사 생활이 돌아오게 되었구나. 내일이 휴일이라 조금 기분 좋게 일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내일 휴일이라는 이유로 오늘 술자리도 꽤 길어지겠지. 우리 회사의 공공의 적, 꼰대가 결국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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