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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03. 2022

5월 3일 김사헌의 하루

도서비 지원

지난달부터 회사에서는 도서 구입비를 지원하다는 발표했다. 나야 뭐 책을 별로 읽지 않아서 상관은 없었지만 그동안 곳곳에서 도서 지원비를 복지 혜택으로 제공해달라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회사에 새로운 인사팀장이 오고 나서 회사 보기 정책을 여러모로 손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도서 구입비였다. 한 달에 한 번 1인당 최대 3만 원까지의 책을 살 수 있게 있다고 한다. 만화나 잡지책은 안 되고 어느 정도 업무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 매달 5일까지 양식대로 구매를 신청하면 그달 중순까지 책을 구입하는 식이다. 나는 이것도 꽤 많이 지원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하튼 이 정책은 이번 달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 나에게도 신청 양식과 유의사항이 자세히 적힌 인사팀의 공지가 메일로 왔다. 황당하게도 구매한 책에 대해서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애초에 읽지를 않아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메일을 읽기만 하고 잊고 있었다. 아예 책을 신청하지 않는다면 독후감을 쓸 일도 없겠지….

그런데 오늘 팀장이 오늘까지 신청서를 작성해서 자신에게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팀장에게 따로 구매하고 싶은 책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새로 생긴 복지 정책인데 시작하자마자 신청률이 저조하면 또 없어질 수 있다면서 나에게도 신청을 할 것을 강요했다. 나는 그렇다고 이를 강요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반박할 논리는 없었다. 

나는 책을 뭘 살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던 옆자리 정대리한테 원하는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내가 보지도 않을 것이라 남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해주고 싶었다. 특히 그녀는 책을 굉장히 좋아했고 이번 도서 지원 정책을 환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감사하며 오후까지 어떤 책을 살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내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팀장이 무언가를 보면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팀장에게 무슨 일이냐고 했다. 팀장은 직원들이 제출한 도서 구매 신청서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신청한 것들이 업무에 무슨 도움이 되냐며 나에게 그들이 작성한 책 목록을 보여줬다. 소설책이 많았고 에세이도 많았다. 나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은 다시 혀를 차며 업무에 도움되라고 회사에서 복지로 제공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하면 회사에서 뭐라 생각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책에 관심이 없었지만 업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찾는다면 경제서적만 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돌아오자 팀장은 책을 다시 신청하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검열을 하고 있는 팀장의 행태를 보니 이 지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질 것 같았다. 직원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회사가 원하는 책을 찾기 시작했다. 옆자리 정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대리는 나에게 미안하지만 책은 내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인터넷에서 책을 검색했다.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를 쭉 훑어봤다. 아마 나같이 검색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다들 베스트셀러를 보면 똑같은 책만 겹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는 이게 무슨 지원인가 싶었다. 그리고 제발 우리 팀장만 지랄이기를 바랐다. 

나는 경제 분야 책을 계속 검색하다가 정말 아무도 안 살 것 같지만 책 가격은 딱 2만 원 정도 되는 책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신청서를 적어 팀장에게 제출했다. 내가 희망하는 책을 검색한 팀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잘했다고 했다. 계속 이럴 거면 그냥 다음 달부터는 지원 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일이 조금 황당해서 다른 부서의 동기를 불러 옥상으로 갔다. 동기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오늘 일에 대해서 말했더니 동기는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자기네 팀장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기는 자기네 팀장이 하는 말을 전해줬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도 회사에 도서 지원비가 있었는데 책을 샀다가 개인이 중고로 파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이 노발대발해서 도서 지원비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니 더 황당했다. 그걸 중고로 파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동기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담배를 피우고 다시 자리에 앉으니 팀장은 이제 모든 신청서가 도착했으니 인사팀에 자신이 결재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팀장은 책이 도착하면 일주일 내에 독후감을 자신에게 제출하라고 했다. 독후감 분량은 a4로 한 장 이상은 써야 한다고 했다. 생각하면 이것도 참 어이가 없다. 학교 숙제도 아니고 왜 이래야 하는지 이해가 도저히 안 갔다.

아무래도 이번 정책도 어느 때나 그랬던 것처럼 몇 달만 하는 척하다가 결국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어질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다들 호되게 당했으니 당분간은 도서 지원비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 회사에서는 이런 것을 다 계산하고 이러는 것 같았다. 휴우…. 책을 안 좋아하는 나는 별 상관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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