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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19. 2022

5월 19일 최준모의 하루

빠른 승진

오늘은 준모가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6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6개월 전 준모는 너무 취업이 안 되어서 정말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경력이라도 쌓기 위해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에 지원하여 일을 배우고 있었다.

직원은 겨우 7명이 안 되는 곳이라 준모는 입사 첫날부터 지금까지 사수 없이 혼자 일을 배워야 했다. 물론 그에게 일을 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냥 준모가 눈치껏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래도 준모는 회사일에 빠르게 적응했다. 대표를 비롯해 다른 직원들은 일을 곧잘 하는 준모를 신뢰했다. 그렇게 입사한 지 이제 6개월이 되는 준모는 회사의 에이스가 되었다. 준모는 회사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회사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준모는 원래 1년 간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6개월. 준모는 회사를 계속 다닐지, 아니면 지금 상태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시도라도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며칠 째 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말이야. 준모 씨가 했으면 좋겠어. 응? 어때 준모 씨. 지금 하는 일 다 끝났잖아?”


오늘도 준모에게 또 다른 프로젝트가 들어왔다. 준모는 요즘 한가하지는 않았다. 회사 일의 상당 수가 자신에게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쳐내기도 버거웠다. 또한 최근 회사에서 2명이 그만두고 대표를 제외하면 직원이 4명밖에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잘한 일까지 준모에게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4명 중에서도 준모보다 먼저 입사했던 사람은 2명 밖에 안 되었다. 나머지 1명은 1개월 전에 입사한 인턴 직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일들이 준모에게 몰리고 있었다.


“이번 일하고 나면 말이야, 앞으로 우리가 하려는 신사업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우리 준모 씨, 일 잘하니깐 이거 합시다. 그 송이사도 이 일 관련해서 준모 씨 좀 도와주고”


“네 알겠습니다. 준모 씨, 일 하면서 도울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준모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표는 일을 준모에게 떠넘겼다. 송이사가 돕는다고는 하지만 송이사 역시 준모 못지않게 일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 일은 모두 준모가 담당하게 될 것이 뻔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준모는 이 일만 어떻게든 쳐내고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 준모 씨. 준모 씨가 들어온 지 어느새 6개월이 되었잖아? 그런데 전혀 신입 같지 않고 6년 차보다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을 때가 있어. 내가 준모 씨한테 그래서 보답을 해주고 싶은데…. 나중에 신사업팀을 이끌어 보는 건 어때?”


준모는 대표의 권유 같지만 실제로는 지시나 다름없는 말을 듣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네 뭐 제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여기 송이사님이나 정과장님도 계신데요.”


“에이, 여기 송이사나 정과장은 원래 우리 하던 일 하느라 바빠요. 내가 오랫동안 준모 씨 지켜보고 하는 결정이니깐. 준모 씨도 자신의 능력 믿고 신사업 잘 맡아줘요. 그래, 언제까지 우리 준모 씨라고 부를 거야? 이제 팀장 하자. 팀장. 최팀장! 이거 좋네.”


대표는 자기 멋대로 준모를 그 자리에서 승진시켜버렸다. 준모는 대표의 말이 민망해서 도저히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표정 관리를 해야 했기에 준모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팀장이면 팀원도 생기는 것인가요?”


“아니지. 우리 인원에 팀은 무슨. 준모 씨 역할 딱 정해주려고 팀장이라고 하라는 거예요. 자 이 기회에 조직 개편도 할게요. 송이사는 기존의 광고영업 사업팀을 맡아줘요. 나중에 여기 팀장 뽑을 때까지는 송이사가 팀장 역할도 같이 맡아주세요. 그리고 정과장이 여기 팀원이고. 준모 씨는 신사업팀 팀장 자리로 올라가 주세요. 직급은 대리로 내가 바로 승진시켜줄게. 이번 일 끝나고 우리 팀원 어떻게 할지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다들 오케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그 자리에서 조직 개편을 하는 대표의 모습에 다들 어이가 없었지만 최대한 그들은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저는요? 대표님?”


1달 전 입사한 인턴 현아가 대표에게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는지를 물었다.


“현아 씨? 현아 씨는 인턴이니까 두 팀을 모두 도와야죠. 나중에 정직원되면 그때 면담해서 어느 팀에서 일할지 고민해봅시다. 지금은 두 팀에서 일 열심히 배워주세요. 여튼 다들 정리되었죠? 회의를 너무 오래 했네. 나 이런 거 안 좋아하는데. 그럼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해봅시다.”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대표가 보이지 않자 직원들은 다들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누구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생각은 어느 때보다 복잡해졌다.


준모는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굳혔다. 준모는 이곳에서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준모는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집에 가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회사에서는 조직 개편이 일어났지만 그리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송이사는 원래 대표를 대신해 일과 직원을 관리하는 일을 했었으며 정과장은 원래도 송이사와 많이 일하던 사람이었다. 현아 씨는 원래 1달 동안 자잘한 일만 하고 있었기에 업무의 롤이 변화가 없었지만 사실 다른 회사의 경력까지 하면 준모보다 더 오래된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현아 역시 속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직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준모는 오늘 있었던 일을 과동아리 단톡방에 요약해서 올렸다. 친구들은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몇몇은 취업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확실한 거처가 잡힐 때까지 회사에 있으라는 조언을 했다. 준모와 친했던 어떤 선배는 지금 있는 곳에 오래 있으면 준모의 경력만 꼬이게 되니 그냥 오늘 나오라고 전화까지 했다. 선배는 준모에게 자신이 잘 말해줄 테니 자기가 아는 회사에 잠시 가있으라고까지 했다. 선배는 적어도 지금 있는 회사보다는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선배와 통화를 마친 준모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선배의 제안이 있으니 당장 도망갈 곳은 있지만 그곳 역시 준모가 원하는 곳은 아니었다. 준모는 이직 자리를 알아보려고 해도 취준생 시절 워낙 많은 회사를 떨어졌기 때문에 쉽사리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어 최팀장. 잠깐 나 좀 보자. 아까 이야기한 프로젝트 말이야. 어떻게 할지 내가 더 설명해줄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준모에게 담배를 피우고 온 대표가 신사업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자며 준모를 불렀다. 준모는 고민은 일단 밤에 집에 가서 하기로 하고 오늘 닥친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팀장은 개뿔. 1명 있는 팀도 있나. 에휴….’


준모는 속으로 크게 한숨을 쉬고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대표의 자리로 갔다. 의미 없는 최’팀장’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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