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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18. 2022

5월 18일 서윤호의 하루

광고 제안 

“그러니까 이번 광고에는 그분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광고가 안 들어오는 것 같아 불만 많다면서요? 이 기회에 챙겨주면 좋아할 것입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만! 다들 오늘도 화이팅 하세요!”


형식적인 오전 회의가 끝나고 윤호의 팀원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윤호는 의자에 앉아 오늘 자신이 연락해야 하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 설득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팀장은 원래 하던 데로 하면 된다며 윤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자신의 자리로 갔다. 윤호는 팀장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자신의 전화기에서 오늘 연락할 사람의 연락처를 찾았다. 


‘카톡으로 할까? 메일로 할까? 역시 전화겠지?’


한참 망설이던 윤호는 오늘 연락할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


윤호는 1년 전 지금 회사로 이직했다. 윤호가 이직한 회사는 MCN이었다. MCN은 유튜버들의 소속사라고 할 수 있는데 윤호의 회사는 업계에서 서서히 알려지고 있는 곳이었다. 윤호는 유튜브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구독하고 있는 유튜버들의 숫자도 꽤나 많았다. 윤호는 원래 광고대행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자신의 취미와 좋아하는 것을 일과 접목시키기를 원했다. 그래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MCN 업계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좋아하는 유튜버를 관리한다는 점에서 처음 몇 달 동안 윤호는 굉장히 신났다. 회사에 소속된 유튜버 중에는 윤호가 구독 중인 사람들도 있었다. 윤호는 그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격했고 그들이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윤호는 자신이 있던 광고대행사와 MCN 업계가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유튜버 매니지먼트와 광고영업을 같이 하게 되면서 윤호는 광고주에게도 갑질을 당하고 유튜버에게도 갑질을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광고주들은 여전히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유튜버들은 말을 안 들었다. 그중에는 정말 착한 사람도 있어서 윤호와 정신적인 유대관계를 쌓는 사람도 있었지만 윤호를 막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입사 6개월이 지나자 윤호는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점점 미쳐갔다. 여기에 광고영업까지 해야 했기에 결국 광고대행사 시절과 마찬가지로 제안서를 만들어야 했기에 윤호는 일에 지쳐갔다. 


—— 


오늘 윤호가 연락해야 하는 유튜버는 얼마 전 윤호네 회사와 계약한 크리에이터였다. ‘4차원소년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은 이 채널은 이름과는 다르게 남자 1명이 운영 중인 채널이었다. 원래 MCN 소속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던 유튜버였고 광고도 자신이 컨트롤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윤호의 회사와 계약을 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리고 계약 협상은 아주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윤호가 ‘4차원소년들’ 채널을 담당하게 되었다.

‘4차원 소년들’과의 첫 미팅 때 윤호는 채널 운영자의 이름이 김현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윤호는 편하게 그를 현준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준은 MCN에 소속되기는 했지만 최대한 자유롭게 활동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윤호도 딱히 현준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2달 정도 후부터 현준은 윤호에게 자신에게 광고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윤호의 회사에서는 유튜버가 소속되면 비즈니스 이메일을 회사 메일로 만들어줬고 유튜버는 이 이메일을 공식 메일로 활용했다. 그래서 광고 제안이 들어오면 현준뿐만 아니라 회사도 같이 볼 수 있었다. 현준의 회사에서는 여기서 들어온 광고 제안 중 제일 괜찮은 것을 골라 광고주와 커뮤니케이션하고 광고를 수행할 유튜버를 고르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제안이 들어온 유튜버가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회사에서는 광고에 따라 더 좋은 컨디션의 유튜버를 추천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회사의 입장에서 ‘4차원소년들’의 광고비는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후순위로 밀렸다.


회사의 사정은 이랬지만 현준 입장에서는 평소에는 잘 들어오던 광고가 갑자기 MCN과 계약 이후 뚝 끊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준이 불만을 쏟아내고 윤호가 겨우 겨우 말리는 일이 잦아졌다. 사실 회사에서 역으로 현준에게 광고를 제안한 적도 있었지만 이 때는 현준이 자신이랑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어느덧 현준이 합류한 지 4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4차원소년들’은 이른바 떡상했다. 최근에 올린 영상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고 구독자는 금세 3배 이상을 달성했다. 그러자 ‘4차원소년들’에 제안하는 광고주의 네임벨류도 올라갔다. 현준은 이제 자신에게 광고가 많이 붙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4차원소년들’로 더 좋은 광고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는 구독자가 오른 만큼 ‘4차원소년들’의 광고 단가를 올린 제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꽤나 괜찮은 광고 제안이 회사의 욕심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고 현준은 계약 파기까지 거론하며 회사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얼마 후, 현준은 겨우 진정이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윤호가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런 와중에 다른 루트로 노트북 광고가 하나 들어왔고 회사에서는 이 광고를 ‘4차원소년들’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윤호는 현준에게 제안해야 했다. 전화를 어떻게 할지 한참을 망설이던 윤호는 심호흡을 하고 현준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제가 지금 일이 있어서 밖에 나와있어서요. 짧게만 통화되는데 괜찮으세요?”


바로 전화를 받은 현준은 밖에 일이 있는 사람치고는 상당히 침착한 목소리로 윤호를 응대했다.


“안녕하세요. 현준님. 저희 회사 쪽으로 노트북 광고가 하나 들어와서요. ‘4차원소년들’ 채널에도 어울릴 것 같아 정식으로 제안드리려고 합니다.”


윤호는 말을 돌리는 것 없이 바로 오늘의 본론을 이야기했다. 


“흠…. 매니저님. 그 노트북이라는 거 저랑은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희 정말 괜찮을 것 같아 광고주한테 ‘4차원소년들’ 제안했고 그쪽에서도 오케이 했어요. 저희가 콘티도 같이 짜드릴 테니까….”


“아뇨. 그러니까…. 아닙니다. 제안 주셔서 고맙고요. 제가 밖에 있어서 이따 연락드릴게요. 죄송해요.”


“아… 괜찮습니다. 그러면 이따 언제쯤 연락드리면 될까요?”


“제가..연락드릴게요. 오늘 안에는 연락드릴 테니 일 보고 계세요.”


“아.. 저….. 에이, 뭐야 전화 끊은 거야?”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바로 끊은 현준의 행동에 윤호는 화가 났다. 그리고 기껏 제안한 광고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현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호는 현재 상황에 대해 팀장에게 간단하게 보고하고 다른 일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윤호가 담당하는 유튜버는 ‘4차원소년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만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오후 5시가 될 때까지 현준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윤호는 다시 연락할까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광고주에게는 이번 주 금요일까지 연락을 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아직 시간 여유는 있었다. 윤호는 다른 일을 하며 현준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오후 6시. 마침내 현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서윤호입니다. 현준님 통화 괜찮으세요?”


“가능해요. 매니저님. 제가 너무 늦었죠? 전에 올린 콘텐츠 있잖아요? 그거 후속편을 오늘 찍었거든요. 지금 가편집 중인데 정말 잘 나올 거 같아요.”


“하하 정말 재미있겠네요.”


윤호는 광고 이야기는 안 하고 자기 콘텐츠 이야기를 먼저 하는 현준이 조금 짜증 났지만 웃으면서 그에게 대답했다.


“아 오전에 말씀하신 광고요. 언제까지 생각해야 하죠?”


“그래도 목요일까지는 연락 주셔야 할거 같아요.”


“목요일이면…. 내일이잖아요? 흠….”


“네. 그런데 이번에 광고비를 원래보다 조금 더 높여봤어요. 그래도 광고주가 현준님하고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번 광고 잘 되면 앞으로도 다양한 광고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전에.. 그 방탈출 카페. 거기 그건 어때요? 저 콘텐츠로 진짜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거요? 그거 한 달 지나지 않았나요? 그런데는 그냥 그래요.”


“아뇨. 매니저님. 저 하고 싶어요. 저한테도 메일로 온 거잖아요. MCN 들어올 때, 제가 기대한 거는 이런 광고 스케쥴링 잘해주시고 제 콘텐츠에 광고가 잘 녹게 도와주시고, 수익 셰어 하는 만큼 광고 많이 따주기를 바란 거였어요. 그런데 들어오고 몇 달 동안 제대로 된 것 없잖아요.”


“…. 음…. 저희도 최선의 노력은 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노트북 광고 제안드리는 거고요.”


윤호는 현준의 태도에 몹시 화가 났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했다. 


“에휴…. 솔직히 며칠 동안 회사와 계약 해지할까 고민했었어요. 회사는 저로 광고 많이 해서 매출 올리고 싶으실 거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서로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고 서로 이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 만나서 이야기 나누시는 것은 어떨까요?”


현재 회사 입장에서 급격히 구독자가 상승하고 있는 이 채널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윤호는 시간을 조금 끌면서 대화로 풀고 싶었다. 


“광고는 내일까지 결정해야 한다면서요. 일단 저도 양보 좀 할게요. 회사도 양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에 온 방탈출 카페 광고 그거 돈이 얼마든 저 하겠습니다.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회사에 다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노트북 광고. 제가 맨날 쓰는 브랜드랑 달라서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광고주가 괜찮다고 하면 일단 그것도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 메일로 한번 주세요. 일정이랑…. 아 그래서 돈은 얼마라고 하셨죠?”


“원래 저희 단가보다 10% 정도 올려 받았습니다. 괜찮으시죠?”


윤호는 속으로 ‘됐다’라고 생각하며 현준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네. 일단 메일 주세요. 계약 해지는 그냥 저 혼자 생각한 것이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고요. 조만간 회사 한 번 갈게요.”


“감사합니다. 그 방탈출 카페. 예산이 너무 말이 안 되어서 거절했던 건데 개인적으로 현준님이 만드시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 역시 매니저님. 말씀 잘해주시네요. 네. 저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서. 꼭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그건 해보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저희 팀에 잘 이야기할게요.”


“네. 일단 해보고.. 그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하죠. 오늘 전화 주셔서 감사해요. 영상 이번 주 토요일에 올라가니깐 꼭 봐주세요.”


“알겠습니다. 메일 바로 드릴게요. 수고하세요.”


“네~”


전화가 끝나자 윤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떻게든 해결되었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윤호는 그냥 이 자리에서 다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호는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에 세수를 했다. 찬 물을 맞고 다니 윤호는 조금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윤호는 현준에게 보낼 메일 내용을 정리했다. 현준은 자신이 직접 광고주에게 제안했던 광고 콘티까지 정리해서 최대한 현준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 메일 오탈자를 검수하고 현준에게 보냈다. 윤호는 현준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카톡을 보내고 의자를 젖히고 천장을 바라봤다. 눈이 피로해서 사물이 흔들려 보였다. 잠시 멍하니 있던 윤호는 퇴근 준비를 했다. 하지만 윤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다른 유튜버와 함께 하고 있는 광고 관련해서 광고주가 전화를 준 것이었다. 


윤호는 전화를 받고 심각한 표정으로 광고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광고주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윤호는 상황을 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은 광고주가 원하는 데로 해달라고 했고 이제 윤호는 다른 유튜버한테 바뀐 광고 내용을 알려줘야 했다. 윤호는 아무래도 오늘 일찍 퇴근하는 것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다시 가방을 내려놓은 윤호는 한숨을 크게 쉬고 다른 유튜버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호는 이 대화도 아마 꽤나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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