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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17. 2022

5월 17일 지동희의 하루

상사와의 점심 

동희는 오늘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들과 밥을 먹기로 했다. 얼마 전 회사 근처에 생긴 파스타집이 맛집이라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전날부터 동희와 동료들은 무엇을 먹을지 메뉴까지 정하고 내일의 만찬을 기대했다. 

그러나 동희의 계획에는 큰 차질이 생겼다. 바로 동희의 상사인 정훈 과장이 밥을 먹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정훈 과장은 보통 때는 점심 식사를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배가 고플 경우에는 그도 점심을 먹었는데 혼자 밥을 먹는 경우는 없었다. 여느 직장인처럼 동료들과 밥을 먹으려고 했다. 다만 정훈 과장은 가급적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과 밥 먹는 것을 좋아했다. 본인도 상사와 먹는 것을 싫어하면서 자신은 부하 직원들과 밥을 먹고 싶어 했다. 

직장 상사와 점심을 먹는 것은 회사에서 아주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정훈 과장과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훈 과장은 회사에서 알아주는 꼰대 중 하나였고 밥 먹을 때의 매너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은 정훈 과장과 밥 먹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부서 단위로 같이 먹을 때는 어쩔 수가 없었지만 문제는 1:1로 밥을 먹을 때였다. 동희 역시 정훈 과장과 밥을 같이 먹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업무 상 정훈 과장과 척을 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동희는 동료들에게 오늘 파스타를 못 먹는다고 말한 후, 정훈 과장을 따라갔다. 

동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훈 과장은 동희를 친동생처럼 생각했다. 자신의 부사수이기도 했기 때문에 정훈 과장은 자신 나름대로 동희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동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심하면 화를 내고 윽박지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만 행동하는 정훈 과장을 동희는 최악의 상사라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했기에 동희는 정훈 과장과 밥을 먹으러 갔다. 정훈 과장은 동희의 의사는 확인하지 않고 청국장을 먹으러 갔다. 참고로 동희는 청국장을 정말 싫어했다. 그런 냄새조차 맡는 것을 싫어했다. 동희는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청국장 말고 다른 것을 먹으면 안 되냐고 정훈에게 물어봤다. 정훈은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식의 표정을 짓더니 동희의 말을 무시하고 청국장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청국장 가게 앞에서 정훈 과장은 말했다.


“청국장 말고 다른 음식도 있으니 그거 먹어. 넌 어른이 되어서 반찬 투정이나 하냐. 에이고…. 들어가자.”


동희는 최대한 숨을 참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동희의 코 틈을 파고들어 왔다.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던 동희는 결국 숨을 내뱉었다. 동희에게는 지독한 청국장 냄새가 동희의 온몸의 신경을 자극했다. 정훈 과장은 동희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자리를 잡아 앉았다. 조금 냄새에 익숙해진 동희도 정훈 과장 맞은편에 앉았다. 

정훈 과장은 메뉴판을 슬쩍 보고 이모를 불러 청국장 2개를 시켰다. 동희는 순간 놀래서 이모를 다시 불러 하나는 김치찌개로 바꿔달라고 했다. 겨우 주문이 제대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동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훈 과장을 쳐다봤다. 원망의 눈초리를 살짝 보이려고 했지만 정훈 과장이 그를 뻔히 쳐다보고 있길래 바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에이 새끼. 여기 청국장 맛집이야. 김치찌개는 그냥 그렇던데. 맛있는 것 좀 먹지. 에유…초딩 입맛이냐 넌.”


정훈 과장이 혀를 차며 동희에게 말했다. 동희는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다. 갑자기 점심 먹자는 것도 짜증 나는데 싫다는 청국장 집에, 이제는 자신의 입맛을 비웃는 정훈 과장을 지금 이 자리에서 패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동희가 그럴 수는 없었다. 


“아.. 네. 청국장이 잘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전 딴 거 먹겠습니다. 과장님 맛있게 드세요.”


동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정훈 과장에게 말했다.


“너 그거 약간 나 욕하는 말같다? 내가 모를 줄 알아? 에휴… 됐다. 밥 먹으러 와서 둘이 으르렁 거려서 뭐하냐.”


정훈 과장은 동희의 신경을 더욱 거슬리게 했지만 바로 빠지면서 동희가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 동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윽고 식사가 나왔다.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다시 동희의 코를 자극했다. 동희는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 이상 싫은 티를 냈다가는 정훈 과장이 일주일은 자신을 괴롭힐 것이라는 알고 있었기에 꾹 참았다. 동희의 김치찌개가 나오자 그나마 괜찮아졌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동희는 정훈 과장에게 예의 상 말을 하고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퍼서 공깃밥에 뿌려 먹었다. 정훈 과장이 말한 것처럼 이곳의 김치찌개는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단 맛이 나서 김치찌개라고 하기도 민망한 찌개였다. 


“동희. 네 옆에 콩나물 좀 줘봐.”


정훈 과장이 젓가락을 깔딱대며 동희 옆에 있는 콩나물을 가리켰다. 테이블이 그리 넓지는 않아 충분히 정훈 과장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정훈 과장은 이런 것까지 동희를 시키려고 했다. 동희는 콩나물이 담긴 그릇을 정훈 과장과 가까운 곳으로 스윽 밀었다. 그리고 다시 김치찌개를 퍼서 밥과 먹었다. 


둘의 식사는 한 동안 말없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정훈 과장은 자신이 뜨거운 청국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듯 매우 시끄럽게 먹었다. 반찬을 쩝쩝 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국물을 퍼서 먹을 때도 온갖 소리를 다 내었다. 그리고 트림도 서슴지 않았다. 동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토할 것 같았다. 


‘아니, 나이도 그렇게 많지도 않은 사람이 왜 저리 개저씨 노릇을 하고 있지?’


동희는 정훈 과장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밥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동희에게 메시지가 왔다. 동희는 상 아래로 슬쩍 핸드폰을 꺼내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동희를 빼고 파스타를 먹으러 간 사람들의 메시지였다. 맛있다는 극찬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 왜 지금 보내는 거야.. 하.. 부럽다.’


“상사랑 밥 먹는데 핸드폰은 무슨 매너야? 뭐 급한 일이라도 있어?”


동희가 동료들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훈 과장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동희의 태도를 지적했다. 


“급한 일이 있어도 그렇지. 밥 먹을 때 그러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


정훈 과장은 이젠 동희의 부모님까지 소환해서 핀잔을 주고 있었다. 동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결국 동희는 죄송하다는 말하고 다시 밥 먹는데 집중했다. 


“요새 회사 있잖아.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더라고,. 아 재무팀의 교훈 차장 있지? 그 사람 요새 바람피운다는 소리가 있더라고. 쯧쯧 그럴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와이프만 고생이네. 나도 아는 사람인데…..”


정훈 과장은 이젠 회사 사람 험담을 까며 동희가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를 알려줬다. 동희는 가끔 리액션만 할 뿐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겨우 밥을 다 먹고 동희는 정훈 과장과 회사로 돌아갔다. 동희는 혹시나 정훈 과장이 커피나 다른 것을 먹자고 할까 봐 걱정했지만 정훈 과장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동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직 점심시간이 20분 정도 남은 것을 안 정훈 과장은 의자에 기대면서 자신이 눈을 붙일 테니 1시가 되기 5분 전에 깨워달라고 동희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지 무섭게 정훈 과장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때마침 파스타를 먹으러 간 무리도 돌아왔다. 동희의 동료 중 한 사람인 미정은 동훈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내밀었다. 오늘 같이 가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라고 미정은 말했다. 동희를 커피를 마시며 동료들과 오늘 먹은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후기를 들어보니 정말 맛집이 맞았다. 동희는 괜찮으면 다음 주에 또 갈 수 있냐고 동료들에게 물었다. 동료들은 왜 안 되냐면서 다음 주에는 꼭 정훈 과장 따돌리고 오라고 했다. 

동희는 이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정훈 과장을 보며 ‘저 사람은 누가 안 잡아가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동희의 배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동희는 오늘 체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1시가 되었다. 동희는 빨리 정훈 과장을 깨워야 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밥을 먹고 들어온 성민 차장이 아직 자고 있는 정훈 과장의 이마를 두드리며 그를 깨우고 있었다.


“1시야. 어서 일어나.”


정훈 과장은 의자에서 넘어질 뻔하며 일어났다. 


“아… 차장님. 잠깐 눈 붙이고 있었습니다.”


정훈 과장이 태연하게 말했다. 


“점심은…? 먹었어?”


“아 예. 먹었죠., 청국장 먹었습니다.”


“어제 올린 보고서. 그거 이따 이야기 좀 해.”


성민 차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다가 잠시 무엇이 생각났는지 뒤를 돌아 다시 정훈 과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코는 좀 골지 말자.”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성민 차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자리로 놀아갔고 정훈 과장은 동희를 째려봤다. 왜 자신을 안 깨워서 차장한테 혼나게 만들었냐는 표정이었다. 동희는 속으로 크게 한숨 쉬고 정훈 과장에게 죄송하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정훈 과장의 갈굼이 다시 시작되었다. 동희는 그의 말을 들으며 리액션과 죄송하다는 말만 하며 눈은 컴퓨터 모니터로 향했다. 


‘마음대로 해라. 난 내 일이나 하련다.’


그렇게…. 길었던 정훈 과장과의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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