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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15. 2022

5월 15일 김신우의 하루

꿈 이야기 2

오늘 꾼 꿈은 너무 기이했기에 일어나자마자 기록하기로 했다.

오늘 꾼 꿈의 내용은 이랬다.



꿈속에서 나는 죽어있었다. 

나의 가족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꿈속에서 내 영정 사진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나는 나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장례식장 아주 구석진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밥을 먹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분명 조문객 중 한 명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장면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내 영정 사진을 다시 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니?”


목소리는 매우 서늘했다. 남자의 목소리인데 굉장히 차가운 저음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유형이었만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나는 저승사자인가 싶어서 그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는 매우 평범하게 생긴 30대 정도 되는 남자였다. 방송에서 나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지나치게 하얀색 옷을 입고 있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주 떨리는 목소리로.


“……네….”


그러자 그 남자는 미소를 살짝 짓더니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마치 영화처럼 모든 장면이 역순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수없이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어지러워서 토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역순으로 돌아가던 시간은 멈췄고 나는 지하철에 서있었다. 내가 맨날 타고 다니는 2호선 지하철이었다. 내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얼굴 반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 눈을 파먹은 것처럼 눈이 아예 없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기괴하게 웃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뜯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저 편에서 지하철 사이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칼을 들고 나타났다. 아주 긴 레인코트를 입고 후드로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그가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남자는 칼을 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있는 힘껏 도망쳤다. 계속해서 달리며 중간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20번째 문을 열고 있지만 반대편에는 또 다른 문이 보였다. 그리고 지하철 중간문을 열면 열수록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더 기괴해져 갔다.


더욱 이상했던 것은 나를 쫓아오는 남자와의 거리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너무 지쳐 잠시 멈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동안 그 남자는 내쪽으로 오지 않았다. 아마 5보 정도? 그 정도 거리만 유지하고 있었다. 더 앞으로는 오지 않았다. 다만 내가 다시 도망가면 그도 필사적으로 나를 추격했다. 하지만 내가 멈추면 그도 5보 앞에서 멈췄다. 이쯤 되니 나는 그가 당장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나는 다시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을 쳐다봤다. 문을 열면 열수록 그들의 모습은 더욱 기괴해져 사람의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 다만 공통점은 모두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차리고 나니 갑자기 나는  ‘이건 꿈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건 꿈이지.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나오고 기괴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무심결에 나는 내 생각 속의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뭐야 이거 꿈이네….”



그때였다. 지하철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쳐다본 건. 한 번에 50명 이상도 더 되어 보이는 저 사람들… 아니 괴물들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기괴한 비명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너무 기분 나쁘고 소름 돋는 소리였다. 나는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다. 이런…. 분명 5보 이하로는 오지 않던 칼을 든 남자가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젖 먹던 힘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쳐다보긴 했지만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중간 문을 열자 그곳에 앉아있던 사람들 역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칸의 사람들은 더욱 징그러워졌다. 이젠 입에 눈이 달린 사람들이 내 앞에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아무리 봐도 괴물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기가 싫어 눈을 감고 뛰기 시작했다. 뛰어가다가 부딪힐 수 있었지만 이건 꿈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다가 정말 문에 부딪혔는데 별로 아프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문을 열고 다음 칸으로 갔다. 문을 열면 열수록 괴물들의 모습은 더욱 기괴해져 이제 사람의 형태로 보이지도 않았다. 배에 다리가 달린 괴물도 있었고 입에서 손이 나와 기어 다니는 괴물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향해서 기이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찢어지는 목소리, 울부짖는 소리, ‘너를 죽일 거야’라는 작은 소리도 들렸다. 뒤에는 그 남자가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다시 눈을 감고 뛰었다. 나를 쫓아오는 칼을 남자는 점점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꿈 속이지만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칸을 열자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곳에는 세기도 싫을 정도로 수많은 바퀴벌레가 있었다. 아마 바퀴벌레도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이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아까보다는 조금 천천히 바퀴벌레를 피해 가며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너무 징그러웠던 것은 그 바퀴벌레들이 자꾸 단체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몇은 내 발등 위로 올라왔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내 신발이 바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는 분명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지금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맨발로 말이다! 그래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바퀴벌레의 다리의 징그러운 느낌이 그대로 내 피부를 타고 와 뇌까지 전달되었다. 너무 싫었다. 뒤를 돌아보니 칼을 든 남자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바퀴벌레고 뭐고 지금 당장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내 발에 밟혀 죽는 바퀴벌레와 바퀴벌레 안에서 나오는 이상한 액체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다음 칸을 여니 이번엔 물이 나왔다. 수많은 산호초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산호초들이 빛을 내고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관광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숨을 참고 그곳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도 헤엄쳐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죽을힘을 다해 헤엄쳐서 다음 칸으로 갔다. 


이번에는 수많은 뱀이 있었다. 모두 독사 같았다. 뱀들은 당연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내가 지나가자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매우 따가운 느낌이 들었고 고통은 실제 같았다. 나는 뱀에게 둘러싸였지만 겨우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발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었지만 죽을 듯이 아프진 않았다. 나는 절뚝거리며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그 다음칸은 마지막 칸이었다. 이제 더 이상의 문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는데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이대로 죽으나 칼에 찔려 죽으나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도망가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칼을 든 남자는 나와의 거리를 마침내 0으로 만들고 나를 칼로 찔렀다. 이제 죽는 건가?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아직 죽지 않았어.”



그 소리와 함께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눈을 뜨니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곳은 현실이었다. 나는 꿈에서 깬 것이었다. 소리의 행방을 찾아보니 핸드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였다. 나는 내 몸과 발을 확인했다. 상처 하나 없이 아주 깨끗했다. 나는 아직 꿈속에 있는 것 같아 내 뺨을 세게 때렸다.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이 매우 현실적인 것 같아 이제 꿈에서 깬 것이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 길에 나는 꿈속에서 봤던 수많은 존재가 또 있을 것 같아 무서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정말 꿈이었다. 현실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안심하고 세면대에서 세수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노트북을 켜고 오늘 꿈 내용을 기록했다. 보통 꿈 내용은 깨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고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희미해지지만 이번 꿈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오죽하면 아까 “너는 죽지 않았어.”라는 말을 한 의문의 존재가 나를 다시 내 현실에서 살 수 있게 살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이 정말 실재하는 것 같았다. 

꿈을 옮기고 나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개꿈일테지만 꿈이 너무 선명했기에 찝찝했다. 어떤 사악한 존재가 아직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꾼 어떠한 악몽보다도 더 무섭고 섬뜩하며 징그러운 꿈이었다. 잠을 다시 자기 무서울 정도의 기괴한 꿈이었다. 다시는 꾸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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