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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20. 2022

5월 20일 박성호의 하루

소개팅

코로나가 풀리면서 내 삶에 생긴 작은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소개팅 자리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소개팅을 많이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연애가 필요한 시점에 코로나 때문에 누군가와 만날 자리를 갖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물론 내가 연애를 못 하는 것을 이 망할 바이러스 탓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여하튼 연애를 못 한지도 어느새 4년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가 풀린 덕분에 여기저기서 만남의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만 벌써 3명을 소개받았으니 이제 나에게도 봄이 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따스한 날은 쉽게 오지 않았다. 3명 중 1명은 만남을 가졌지만 서로 취향이 아니었다. 다른 1명과는 만나기 전에 열심히 연락했지만 결국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나 모라나…. 여하튼 이번 달에 소개받은 사람 중 딱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다행히 사전 연락은 평이하게 진행되었고 약속도 순조롭게 잡았다. 

그녀의 이름은 굉장히 평범했다.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이었고 내 주변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만 해도 벌써 5명이 넘었다. 또한 성도 가장 흔한 김 씨였다. 내 이름도 꽤나 흔한 편이긴 한데 그녀의 이름은 그보다 더 많을 것 같았다.

카톡 프로필 상 보이는 외모는 굉장히 수수하고 차분해 보였다. 어쩌면 외모도 굉장히 흔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이건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녀를 소개해준 사람은 내 직장 후배인 민혁이었다. 그녀는 민혁의 대학교 선배였는데 민혁은 나와 그녀가 어울릴 것 같다며 나에게 소개해줬다. 민혁이가 말하길 그녀는 나랑 동갑이었다. 내가 전에 연애를 할 때는 항상 연하만 만났기 때문에 동갑과 만난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어쩌면 나랑 동갑이기 때문에 더 말이 잘 통할 수도 있을 것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혁이에게 그녀의 연락처를 받고 다음 날,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가벼운 인사를 겸한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약속 시간과 약속 장소를 확인했다. 나는 그녀에게 장소와 시간을 편하게 정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자신의 동네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지를 나에게 물어봤다. 동네 근처라고는 하지만 그곳은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였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많이 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 근처였다. 나는 반가워서 그녀에게 내가 근처에 000동에서 살았다고 말했고 그녀는 자신도 그곳에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살던, 같은 나이인 사람이라?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 나는 혹시나 싶어서 내 학창 시절 졸업앨범을 모두 꺼냈다. 혹시 그녀가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것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졸업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얼굴과 지금 얼굴을 한 번 비교해봤다. 얼굴이 약간 달라져있을 것을 감안해도 그녀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그다음으로는 중학교 앨범을 살폈지만 그녀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다. 나는 초등학교 앨범과 고등학교 앨범, 그리고 지금 그녀의 카톡 프사를 비교해봤다. 고등학생 동창인 이 친구는 아무래도 동명이인 같았다.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초등학교 동창의 경우는 워낙 어렸을 때라 함부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지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 내가 소개팅할 상대는 내 동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동창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녀와는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고 아마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도 없을 것이다. 그냥 소개팅 나온 상대가 내 초등학교 동창일지도 모른다는 것 빼고는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신기했다. 동갑이랑 소개팅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 사람이 내 동창이라니…. 소개팅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녀와 소개팅을 하는 날이다. 나는 회사에 가서 민혁이와 밥을 먹으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다. 민혁이는 자신의 선배가 학교 다닐 때 인기가 많았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랑 성격이 잘 어울릴 것 같아 소개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민혁이에게 그 사람이 내 동창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고 민혁이는 놀라워했다. 민혁이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명이라 생각하고 잘 이야기하고 좋은 만남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그렇다면 좋지만 실제로 만나서 서로 마음이 맞아야 계속 만나지….


퇴근하고 나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나 말고도 소개팅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듯한 남자가 굉장히 많이 보여 민망했다. 서로의 약속 상대를 찾기 위해 여성, 혹은 남성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렸고 서로를 잘못 찾아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약속 시간 1분 전,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나는 한 번에 그녀를 알아봤다. 동창인가 해서 그녀의 사진을 굉장히 오랫동안 봤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멀리서 오는 그녀의 모습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사진보다 훨씬 미인이었고 더욱 분위기가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그녀에게 나는 나도 모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인사를 했다. 


서로 간단하게 인사하고 나는 미리 예약해둔 식당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퇴근 후이다 보니 같이 식사라도 하기 위해 미리 알아둔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내 앞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동창이고 뭐고 그런 생각은 그 순간 들지 않았다. 그녀와 잘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순조로웠다. 후배의 말처럼 그녀와 나는 맞는 부분이 많았다. 취미도 비슷하였고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도 일치하는 것이 많았다. 나는 그녀에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행히 그녀도 내 말에 잘 호응해주고 눈웃음도 지었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도 이어졌다. 저녁 식사 자리는 내 생각에는 정말 완벽했다. 


식사 자리를 마치고 그녀를 이대로 보내기는 아쉬워 카페에 갈 것을 제안했다. 그녀도 흔쾌히 허락하였고 우리는 주변에 있는 괜찮은 분위기의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에서의 대화도 잘 이어졌다. 소개팅을 많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느낌이 좋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녀와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모든 것은 완벽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모든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린 바보 같은 질문을 해버렸다.


“근데 혹시 000 초등학교 나오셨어요?”


그녀와의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지자 나는 갑자기 그녀와 동창일지도 모른다는 공통점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그러면 서로의 친밀감이 더욱 깊어질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질문 듣고 놀란 눈치였다. 잠시 간의 적망이 흐른 후 그녀가 말했다.


“어머, 맞아요. 어… 저 혹시 그럼….”


“네. 저도 그 학교 나왔어요. 저 6학년 때 1반이었는데 혹시 어느 반이셨어요?”


나는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이런 말을 했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는 그저 그녀에게 초등학교 시절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같은 학교 아이로 전락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다음 대화를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1반에서 자기가 누구랑 친했는지, 내가 아는 사람을 자신도 알고 있는지, 어릴 적 누구누구가 지금 뭐하는지 알고 있는지, 선생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 우리는 흔한 동창들이 할 수 있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점 나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초등학교 동창회 같은 분위기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 잘못이 컸다. 나 역시 이 이야기에 완전히 푹 빠져있었다. 서로의 신비감은 완전히 없어지고 길가다가 우연히 만난 동창과의 대화 정도의 수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는 어느새 반말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나도 대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시 소개팅 분위기로 돌리기는 이미 너무 많이 돌아간 다음이었다. 이렇게 친구가 되어서 연인이 되는 방법도 있지만 원래 알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소개팅으로 만나서 동창으로 끝나는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1시간이 넘게 쉬지도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분명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는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는 지하철 역까지 걸었다. 조금 전까지 왕성하게 대화를 나누던 두 남녀였지만 이제는 이야기할 거리도 없어 조용히 걸어갔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은 지하철을 안 타고 그냥 버스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를 타러 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오히려 동창이기 때문에 더 좋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건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착잡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한 나는 그녀에게 ‘오늘 즐거웠고 다음에 또 보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약간 형식적으로 보내듯이 했는데 나도 오늘 소개팅이 망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냈다. 

1시간이 지나도 그녀에게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씻고 자기로 했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그녀는 “오늘 즐거웠어 ^^ 동창을 이런 데서 보니 좀 신기하다. 건강 조심하고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랄게. 민혁이에게는 내가 말해둘게. 오늘 고마워!”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 결국 거절이구나.  동창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만나고 나서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후회가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변명이고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동창 여부를 떠나서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안 들어했을 수도 있다. 


그저 허무했다. 오늘은 연인이 아니라 그냥 친구, 아니 그냥 아는 동창 하나 생긴 날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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